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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Dec 12. 2022

언젠가 내가 겪을 이야기구나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5-(2): 청년기획자 이요안나

<우리는 왜 예술을> 

청년기획자/예술가 이요안나






기획자로서 본인이 속한 분야가 있고 그 분야에도 생태계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아 이런 위치에 있다는 감각이 있으신지, 어떻게 느끼시나요.

이요안나: 저는 프리랜서의 생태계 안에서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가 선 디자인 업계에 놓여 있어요. ‘나는 작업뿐만이 아니라 먹고사는 생계도 굉장히 중요해’ 하며 나름의 타협점을 찾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생태계인데도 불구하고 예술과 상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곳이지요. 상업 예술 생태계는 각자도생이에요. 서로한테 칼을 겨누고 있는 느낌일 때가 간혹 있습니다. 내가 후려쳐지면 또 다른 누군가가 후려쳐질 수 있는 예시가 된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은 세계인 것 같아요.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한 프리랜서들이 경력 5년을 전후로 번 아웃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이건 일러스트레이터나 프리랜서라는 직업 조건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살아남으려면 스스로를 태워야 한다.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각자 개인의 역량에 달렸다! 하는 것이요. 물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이 경쟁이 지금 너무 과한 것 같아요. 과도한 경쟁이 결과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프리랜서 플랫폼이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들을 무한 경쟁으로 밀어 넣는 바람에 물가는 오르는데도 시장의 인건비는 오르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2018년도에 비해 내려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내려간 단가에 맞추어진 일을 서로 맡으려 경쟁하다 보니 상황은 악화되었어요. 생태계를 지키려는 자들이 있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자들이 있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진입 문턱이 낮은 이 업계에 들어오면서 생태계를 흐려버리는 자들이 있는 거죠. 코로나 때문에 전반적으로 일러스트 업계 공급이 많아지면서 공급 과잉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국가에서 프리랜서 생태계, 일러스트와 디자인 생태계의 현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안에 있는 구성원들끼리 자구책으로 생태계를 지키자! 노력 중입니다. 하지만 소수인원의 마음가짐으로 나아질 상황은 아니죠. 공급자의 노력 만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정책과 제도로 조율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 말씀하신 크몽 같은 서비스 플랫폼이 계속 단가 후려치기를 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요. 공급을 유통하게 하는 플랫폼들이 프리랜서들을 제 살 깎아 먹기 식 무한경쟁으로 몰면서 프리랜서들이 자생하기가 힘들어진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실은 노동자로서의 권익이 보장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는 배달기사와 같은 플랫폼 노동시장이랑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요안나: 맞아요. 권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느껴요.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단가와 저작권 계약에 있어서 정당한 권리가 보호되지 않고 있어요. 단가 후려치기는 대학생이나 진입하는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많이 일어나요. 대학생 개개인에겐 지금 이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한 줄이 굉장히 소중하거든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소정의 돈도 준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하는 마음으로 진입을 하는데. 이건 생태계에 좋은 마음은 아닌 거죠. 그럼 어떻게 이 시장에 진입하느냐? 포트폴리오가 없으니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물으면 사실할 말이 없어요. 왜냐하면 진입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를 교육하려면, 동시에 고용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그래서 더 목소리를 모아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신 것도 있는 건가요. 

이요안나: 네 맞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단가가 오르지 않는 건 글 쓰는 사람도 그림 그리는 사람도 홀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비슷하게 느끼는 지점인 것 같아요. 단가라는 것 자체가 어쨌든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설정되는데 공급이 너무 많아요. 최저임금이나 노동량에 대한 기준선도 없고요. 수많은 온오프라인 클래스에서 업계 진입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다 보니 진입이 더 쉬워졌어요. 조금 일해보다가 그만두고 하는 일이 반복되는 거예요. ‘퇴근 후 아이패드로 부업하기’, ‘하루 30분 투자로 문구 창업’하기 등등 너무 무책임하게 이 박작박작한 시장 진입에 바람을 넣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쉽지 않거든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말리지 않는 회전문 같아요. 이 상황을 바꾸려면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동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요안나 님의 창작자로서의 그리고 기획자로서의 관점 두 개가 같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창작 현장의 문제를 인식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하고자 하는 건 일종의 매개하는 작업이잖아요. 쉽지 않은 현장의 상황 속에서 계속 기획을 하고 계신데요. 이 활동을 좀 더 도와준 것, 활동을 잘할 수 있게 촉진해준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요안나: 외적인 촉진 동력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프리랜서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를 듣거나 예술인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픽토리움’이 운영하는 카톡방에서 서로의 고민과 경험을 공유한다거나, 청년기획자 플랫폼 ‘11111’에서 청년프리랜서와 예술가들을 만나 서로의 고민에 공감하며 위로받고 으쌰 으쌰 받아요.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위로이자 동력인 것 같아요. 혼자서 하려면 힘 빠지니까요. 

가끔은 우리가 형체가 없는 무언가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클레임을 걸 수 있는데 ‘클레임을 걸면 자칫 내가 블랙리스트가 될 수 있다’, ‘클레임을 거는 것보다 걸지 않는 것이 손해가 적다’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과거의 피해 사례들을 멀찍이서 보고 들으며 갖게 된 옷장 속의 괴물 같은 그런 두려움이요. 지금은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생겼어요. 그 사실이 저에게 동력이 됩니다. 


그럼 혹시 발목을 잡는 것도 있나요? 

이요안나: 창작하고 싶은 욕구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패턴 디자이너로서 제 작업에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싶은 마음이요. 사실 저에게 기획은 창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편거든요. 창작을 하는 것이 나에게 당연한 삶이었는데 그 창작 시간을 쪼개어 기획을 하거나, 누군가의 기획에 참여해야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창작하는 데에 시간을 더 쓰고 싶은 욕구! 그 욕구가 나를 세상에 던지려 할 때에 발목을 잡아요.

창작할 시간을 쪼개서 기획을 하실 만큼 기획자로서 갖고 계신 관심이슈라던가 아니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얼까요?

이요안나: 창작자 안에서도 공유되지 못하는 기준들이 있어요. 상업예술분야, 순수예술분야 안에서도 단가와 저작권에 관한 기준이 너무나 달라요. 작업의 형태가 다르니 저작권의 형태나 범위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예술가도 노동자라는 인식을 자주 잊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노동자가 아닌가요? 우리가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해야 될까요? 예술 노동하는 사람들은 누가 지켜주지? 우리가 정말 스스로 지킬 수 있나? 이 질문들이 저한테는 가장 큰 이슈인 것 같아요. 

그걸 확인할 수 있었던 게 “N개의 공론장 - 일러스트레이터의 목소리” 기획이었던 것 같아요. “N개의 공론장” 준비를 위해 선배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하고 또래 동료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어요. 같은 필드에서 일하는 50명의 일러스트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구나, 내가 겪지 않았던 일들이 언젠가 내가 겪을 이야기일 수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프리랜서 시장에서 여성으로서 가지는 어려움, 일러스트레이터 업계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점점 처우가 안 좋아지고 있는 상황 등을 알게 되었어요. 그 통계와 사례가 너무 강력하게 와닿아서 ‘내가 프리랜서를 선택하게 된 계기도 회사에서 여성들에게 너무 안 좋은 처우를 주기 때문에 선택한 삶이었는데 여기도 이렇다고? ’ 싶었어요. 예술 생태계 그리고 여성 프리랜서로의 삶에 자꾸만 관심이 기우는 것 같아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자리를 마련한 N개의 목소리 공론장 작업

https://brunch.co.kr/@n-talk-with/100 링크를 통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읽어볼 수 있다.


그럼 그걸 위해서 뭔가 활동을 할 계획이 있으신지 혹은 벌써 시작을 하셨나요? 

이요안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하소연은 많이 하는데 기록은 안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휘발되는 이야기를 기록 하자! 다짐하고 있어요. 부당한 처우나 계약을 제시하는 업체를 기록한다거나 대금 지급이 불량한 업체들을 모아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등의 활동이요. 

누군가 한 사람이 총대를 메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그런 활동이 지속되어야 할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지만 가끔씩 이야기 나오는 기획으로는 ‘대신 전화해드립니다.’ 내지는 ‘일러스트레이터 버전 떼인 돈 갚아드립니다.’가 있습니다. 

아! 픽토리움을 통해서 ‘깝니다’ 시리즈 글도 쓰고 있네요. : ) 


기획자로서 앞으로 계속 혹시 해보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요안나: 일러스트레이터 모임, 예술인들의 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협동조합이나 공동 포트폴리오사이트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자들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너무나 체감하고 있어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청년기획자 이요안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패턴디자이너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면서 더불어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다대중이 선호하는 혹은 유행에 따라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결과물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창작이 보여줄  있는 새로운 관점다양한 목소리를 전하는 그걸 통해서 더욱 나은 창작환경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  인터뷰는 서울문화재단과 청년예술청 그리고 청년기획자플랫폼11111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던 "2020-2021 청년기획자의 현실을 기록하다"라는 청년기획자 심층 인터뷰를 발췌 정리하고 서면인터뷰를 추가하여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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