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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Dec 25. 2022

꼭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6-(1): 청년기획자 임현진

<우리는 왜 예술을> 인터뷰

청년/공연예술기획자 임현진


공연 창작과 관객 맞이 (c) 장은혜, 임현진 '보편적인 너' 중


*우리는 왜 예술을 경험-만들고, 나누고, 누리려고-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세 번째 청년기획자는 임현진이다. 다양한 공연예술작품의 창작을 기획하고 또 해외에 소개하거나 해외의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등 공연예술분야에서 예술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다 그것이 직업이 되기까지, 또 현장의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또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속한 분야의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까지, 인터뷰는 새삼 예술이 누군가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삶의 방향까지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과 관람객을 매개하는 기획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역시. 좋은 작품을 하나라도 더 소개하려는, 관람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 고군분투하는 그 마음이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거리를 더 다정하게 좁혀왔음을 확인케 한다. 그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웃고 울게 했으리라고 위로가 되었으리라고 앞으로도 그러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제각기 다른 마음들이 작품을 매개로 한데 모여 공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본 인터뷰는 서울문화재단과 청년예술청 그리고 청년기획자플랫폼11111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던 "2020-2021년 청년기획자의 현실을 기록하다"라는 청년기획자 심층 인터뷰를 발췌 정리하고 서면인터뷰를 추가하여 보완한 것이다.




기획자로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임현진: 저는 축제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축제에서 해외 공연들이 왔을 때 컴퍼니 매니저하는 일을 시작해서 축제의 기획까지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축제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이 되게 좋고, 이 사람들이랑 같이 좀 더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서 축제를 그만두고 공연팀하고 같이 이것저것 작품 만드는 일을 하게 되면서 기획자라고 스스로를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축제에서 일할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기획자라고 부르진 않았고요. 그리고 지금 몇 년간 이곳저곳 오고 가는 것을 반복하다가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고, 주로 좀 비정형화된 공간들에서 연극에 가까운 작품들을 창작하고 그 공연들을 기획제작해서 유통하는 일, 국내 예술시장과 해외의 예술시장에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고 공연예술과 관련된 연구사업들이라던지 교류 사업들을 기획하는 일들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독립기획자입니다.


처음으로 스스로 기획자라고 여겼던 작업이 무엇이었는지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작업을 하면서 어떤 걸 느끼셨는지, 혹은 그 작업이 면지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합니다.

임현진: 광주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창작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유랑축제’를 진행했어요.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아티스트 그룹 극단 몸꼴과 프로젝트 잠상을 비롯해서 여러 예술단체들이 함께 광주의 전일빌딩을 중심으로 공동 창작을 하고 공연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이었죠. 광주의 역사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이야기들을 담고 싶다는 첫 기획 회의에서 이전에 문래와 혜화에서 작업을 본 적 있었던 ‘유랑축제’를 광주 버전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어요.

기획과 제작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어떤 아티스트들이 작업하면 좋을지 상상하고, 그 상상이 실제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어요. 창작과 제작의 계획을 아티스트들과 함께 세우고, 공간 협조나 기술 사항을 준비하고, 작품을 전체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개하는 과정의 전반을 맡았습니다. 공연이 시작되는 단계부터 준비와 발표의 과정까지 함께 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방식의 일을 기획, 제작이라고 부르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은 것은 한참 뒤였고요. 공연을 하며 광주에 대한 리서치와 작업의 방식에 대한 토론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제가 해결해나갈 수 있는 이슈들이 있을 때마다 열정을 가지고 방법을 찾았던 것 같고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는 순간에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이 실현되는 데 나도 작은 역할을 했다고요. 기획에 여러 방식이 있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창작자와 플랫폼을 연결하고, 창작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구상하고, 관객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일로서의 기획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관객이 모두 입장하고 난 뒤 (c) 장은혜


기획자로서 일을 하게 된 계기도 말씀해주셨는데 이걸 계속하게 되는 동력이 무얼까요? 시작했어도 계속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임현진: 저는 제가 기획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에 가장 큰 장점은 기억력이 좀 나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막 힘들고 지치고 너무 어렵고 막 죽을 것 같은데 조금 지나면 좋은 것만 기억에 남는 거예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근데 그게 그 좋은 감정들이, 좋은 경험들, 좋은 느낌들이 계속 견인을 시켜주는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걸 보니까 너무 좋았는데 나 혼자만 할 수 없는, 나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 심정이 제 기획의 대부분이었어요. 나 혼자만 할 수 없고 또 이렇게 좋은 일이라는 거를 누군가한테 알리고 싶은 것, 그게 기획의 동력이었던 것 같고 혹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 얘기는 꼭 누군가한테 하소연을 하든 화를 내든 표현을 하던 해야겠어', 그런 마음들.

굉장히 감정적인 것 같아요. 극단적이고. (웃음)

그게 예술이어서 그런 걸까요. (웃음) 어떠세요. 다른 사람들한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막 너무 울컥해서 이걸 꼭 알려야겠어라는 마음이 들 때도 그게 예술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아니면 예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냥 그 감정대로 표현하게 된 건지 궁금하네요.

임현진: 저는 제가 예술 분야에서 기획을 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술이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가장 섬세하고 미적이고 영리한 도구라는 생각을 해요. 교육하거나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생각의 여지를 주거든요. 그래서 뭔가를 발언할 때 그 도구가 예술인 것이 곧 주는 쾌감들이 있고 그 쾌감의 지경에 이르도록 만드는 창작자들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냥 적당히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은 예술가일까 그냥 행위자일까라는 고민이 좀 있어요. 그 감동의 지점을 관객들 혹은 누군가 대중하고 어떤 방식이든 어느 어떤 분량이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경험들이 예술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런 표현의 수단이 예술이어서 음, (생각하며) 그런 거 같아요.


저에게도 느껴졌어요. 예술이랑 기획이라는 두 가지가 면지님한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가지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한 번 더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예술기획을 하려면 좋은 예술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예술에 대한 민감도라고 해야 할까요, 어떠세요.

임현진: 금사빠예요. (웃음) 금세 사랑에 빠지고 좋은 거를 잘 찾아내는 능력이 있어요. '이거 좋다. 너 이거 잘해. 이거 한번 해봐.' 그걸 믿고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객관적으로 남이 봤을 때도 좋은 거여야 해. 나는 기획자로서 안목이 있어야 돼, 안목이 있으려면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 돼, 이거 뭐가 부족한지도 잘 알아야 돼.' 이런 고민들도 있어서 되게 여러 가지 숙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기획자로서 앞으로 계속 혹시 해보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뭐가 있을까요?

임현진: 너무 많은데 저는 도시기획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없던 도시 만드는 그런 거가 아니라 저도 잘 모르기는 하는데 사람들이 어떤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고 그곳을 필요한 공간은 뭐고 그 삶의 모습을 봤을 때 이런 문화예술이 필요하고 이런 것에 대한 연구나 이런 모임이나 이런 자리가 필요해라는 것들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역할을 맡아보고 싶은데 그게 무슨 역할인지 잘 모르겠어요. 누가 하는 건지 잘 모르겠고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도시 공동체를 기획하는 것. 그렇다고 없던걸 만드는 건 아닌 것. 그런 거를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사는 도시. 내가 사는 마을을 위한 기획들. 혹은 기획이 필요한 정말 생뚱맞게 만들어진 예를 들면 세종시 같은 곳이에요. 어떻게 사람 사는 데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계획을 한 번쯤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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