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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Dec 19. 2022

기획은
창작의 재료비를 만드는 일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5-(3): 청년기획자 이요안나

<우리는 왜 예술을> 

청년기획자/예술가 이요안나





행동하는 기획자신 것 같아요. 그런데 일러스트레이터나 디자이너로서 창작을 하는데 시간을 많이 뺏어서 스트레스받는다고도 하셨어요. 기획자로서 본인의 작업도 창작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요안나: 기획일은 저한테는 재료비를 만드는 일이에요. 지금의 기획 활동이 나중 그림의 물감 값이 될 것이고 훗날 정신적인 타격을 줄일 수 있는 방패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창작 작업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저는 마음이 불안하면 작업이 잘 안 돼요.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안정감이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나의 시간이 확보되어야 마음이 편해요. 그래야 작업도 잘 나옵니다. 전 그러한 환경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결국 기획은 재료비를 만드는 일, 나의 창작 환경을 더 좋은 방향으로 조성하는 일입니다. 창작 작업의 연장선이겠네요. 


요안나님에게는 기획은 개인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랑 마주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네요. 어째서 사람들하고 마주하고 또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이요안나: 저 혼자서는 환경을 바꿀 수 없어서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다 같이 목소리를 모아서 우리 이렇게 많아! 여기 봐! 우리 얘기 좀 들어봐! 하기 위해서 서로 마주해야 해요.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창작자 개개인의 탓이 되니까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그와 같은 작업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요안나: 휘발되지 않고 남아서 예술 노동자들의 권익이 조금이라도 향상되었으면 좋겠어요. 


일러스트레이터 협회를 하나 만드셔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이요안나: 협회 누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전 사람을 모으는 데에는 매력이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의 생각에도 항상 의심이 많은 편이라 확신을 가지고 협회를 만들고 앞장설 용기가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어요. 기록자 역할은 자신 있는데 말이죠. : ) 프리랜서 협회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고,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프리랜서 협회 안에서 파도를 잘 타고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컨대 결국 기획도 창작 작업의 연장선이고 이걸 통해서 기획자의 처우를 나아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창작 생태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거잖아요. 그걸 통해서 본인의 창작을 더 잘하고자 하는 일종에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싶다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요안나: 맞아요. 근데 선순환의 고리에 포함할 대상은 누구까지 할 것인가가 지금 굉장히 큰 이슈인 것 같아요. 선순환에 고리에 포함할 대상을 현재 기성 일러스트레이터로 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시장 진입을 위해 준비하는 예비 일러스트레이터까지 포함할 것이냐? 가 고민입니다. 후자가 맞겠지요. 후자를 위해서는 결국 교육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 범위가 너무나 멀고도 막연하네요. (먼산 보기)


대화를 하면서 창작 혹은 예술 자체에 가치를 두고 있고 이것을 위해 기획자로서도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기획자로서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무언가요? 

이요안나: 배려요. 우리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어~는 결국 배려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클라이언트가 창작자들에게 가졌으면 하는 배려. 창작자가 창작집단 속에서 가졌으면 하는 배려. 대중이 창작자에게 가졌으면 하는 배려. 배려와 존중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저에게 있어 예술 활동과 기획은 모두 일종의 사회 면역력을 높이는 활동이에요. 서로 존중받으며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일을 하는 창작자들을 배려해줘야 해요. 창작자들만 위해달라 이런 게 아니라 서로가 마음 상하지 않게 아무도 다치지 않게 정도를 말하는 거거든요. 적어도 상대방의 정당한 권리를 뺏어서 내 곳간에 채우지는 말자! 이런 거요.  


배려라는 단어를 쓰시는 걸 들으며 굉장히 부드러운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는 최소한의 존중을 해달라는 절박한 말로 들렸는데 그걸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해주셨네요.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하는 시장, 클라이언트든 정부 정책이든 여러 가지 것들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부족한 부분을 요구를 해야 되는 억울한 상황이라고 여겨졌거든요. (웃음)

이요안나: 우리 서로 할퀴지 말아요. 딱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창작을 지속하기 위해서, 그리고 질 좋은 창작품들을 누리기 위해서.


대답을 해주시는 거 보니까 느껴져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화두였고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가 라는. 그럼 기획자로서 사람들과 함께해보니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이요안나: 저는 그림 그리면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요. 절 가둬놓고 한 달 동안 그림만 그리라고 하면 신나서 한 달 생활계획표를 짤 걸요. 그렇다 보니 기획이나 모임에 들이는 시간이 아까울 때도 있어요. 창작자들은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요. 개인작업이 최우선인 거죠. 그렇다 보니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저작권 등에 대해서 온라인상에서는 이야기가 오가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모이지 않아요. 일러스트레이터가 모이는 것! 이것부터 너무나 어려운 일이에요. 




 @yoannalee_



모두 누군가 잔 다르크처럼 움직여주길 바라는 마음, 그 혜택을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 잔다르크는 없다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잔 다르크처럼 스스로를 태워 일어난 사람이 뒤 따르는 인원이 충분하지 않아 결국 깃발을 놓는 일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그만큼 모이기가, 함께 외치기가 어려운 성향의 직군인 것 같아요. 이 부분이 너무나 큰 고민입니다.


그런 그분들이랑 이 생태계를 개선한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시 혼자만의 방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아니면 그들이랑 뭔가를 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이요안나: 모두가 서로 할퀴지 않는 상황이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작업을 맘 편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업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다면 사람들과 함께할 때 필요한 거 있으세요? 

이요안나: 모임에 대한 지원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는 금전적인 지원이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친목부터 도모할 수 있는, 집과 작업실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는 금전적인 지원이요.  


기획자로 사회에 바라는 게 있다면?

이요안나: 직장인이 아닌 사람들 그리고 애초에 직장인 되기를 자기 삶에서 염두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사회가 관심을 갖고 그러한 삶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사대보험 되는 직장인의 삶을 정상적인 삶으로 기준 짓는 사회에서 예술인, 창작자들은 완성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아요. 정책과 제도가 직장인 기준으로 짜여 있어요. 프리랜서들은 대출도 세금납부도 절차가 복잡하고 어려워요.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뉴딜 일자리에서도 자꾸만 취업을 독려합니다. 예술인 대상 뉴딜일자리인데도 말이죠.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 등등 예술가들은 애초에 직장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 삶을 계획했던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삶도 사회에서 인정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대학 졸업학기 즈음 학교가 큰 기업에 인수되면서 연극 영화학부가 통폐합될 위기가 있었어요. 그 통폐합의 기준은 취업률이었어요. 예술 쪽 취업률은 거의 0%에 가까우니까요. 그때 느꼈어요. 아 이게 사회가 우리(예술가)를 바라보는 시선이구나. 우리는 이렇게 숫자로 표현되고 그냥 통폐합당해도 상관없는 존재구나. 예술가로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제가 사회에게 원하는 것이에요. 




*청년기획자 이요안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패턴디자이너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면서 더불어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다대중이 선호하는 혹은 유행에 따라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결과물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창작이 보여줄  있는 새로운 관점다양한 목소리를 전하는 그걸 통해서 더욱 나은 창작환경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  인터뷰는 서울문화재단과 청년예술청 그리고 청년기획자플랫폼11111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던 "2020-2021 청년기획자의 현실을 기록하다"라는 청년기획자 심층 인터뷰를 발췌 정리하고 서면인터뷰를 추가하여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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