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 moon song Dec 31. 2022

미묘하고 신기한 그 순간

<우리는 왜 예술을> 인터뷰 6-(2): 청년기획자 임현진

<

<우리는 왜 예술을> 인터뷰

청년/공연예술기획자 임현진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단체 사진 (c) Daiyoon Lim




기획자로서 본인이 속한 분야가 있고 그 분야에도 생태계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아 이런 위치에 있지라는 감각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임현진: 네,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한국거리예술협회라는 데서 운영위원으로 있기도 하거든요. 그거는 원래 처음에는 연구소로 시작을 해서 같이 네트워크 하고 이익 대변하고 이런 역할들을 하다가 문제 생기면 지금은 문제 해결사 같은 역할들을 하고 있어요. 


그럼 코로나 때 굉장히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것 같은데요. 

임현진: 코로나 때 정말 바빴어요. 일단 거리예술분야의 피해 실태조사도 했고 권고안을 만들어서 거리예술 축제나 행사 취소 시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지 그런 것들 배포하고 그리고 어떤 영향력 있는 기관에서 거리 예술과 관련된 잘못된 입장들을 볼 때 성명서 발표하고 일인 시위 피켓 시위하고 그럴 때 보면 생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위기의 순간에 보면 생태계가 있는 것 같고 근데 막 잘 되고 풍성해지고 다들 바쁘고 먹고살 걱정보다는 일 쳐낼 걱정이 더 앞서는 때가 되면 생태계가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고 경쟁의 그런 시스템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제가 재미있어하는 생태계 중의 하나가 축제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종종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좀 조언도 해주고 같이 공부도 하고 하는 그런 모임들이 있는데 그 모임은 되게 특이해요. 예술가도 아니고 행정과도 아니고 오직 고용된 사람도 아닌데 독립기획자들도 아니에요. 아직 그러기에는 경력이 좀 부족하고. 그런데 분명 축제에서 열심히 노동을 하고 혹사를 당한 것은 맞는데 축제가 너무 좋아서 계속 혹사를 당하기를 자처하는 이들. 주로 젊은. 그런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거의 이제 다 동생들이긴 한데. 근데 저만 그런 모임이 있는 게 아니라 무슨 전주 세계 소리 축제 의정부 국제 음악 축제, 고향 무슨 축제 곳곳에 그런 젊은 친구들의 모임이 있는데 다 성격이 비슷하더라고요. 스태프 출신이고, 오갈 곳 없지만 문화예술이 여전히 좋은데 아직 전문성은 없는. 요런 생태계에도 살짝 걸쳐져 있어요.


그럼 그런 분들이랑 주로 무얼 하세요. 일단 대화? 

임현진: 일단 상담을 하고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있구나. 그리고 뭐가 필요할 때 이력서, 자기소개서 괜찮은지 봐주고. 어디 가서 험한 일을 당하고 왔을 때 좀 같이 화 내주고. 그리고 같이 공부하고. 책 읽기를 한다든지, 토론 같은 걸 한다든지, 그 친구들이랑 같이 했던 게 티셔츠 전시도 있었고.


멘토시네요. 얘기를 듣다 보니까 제가 여러 가지 현장들이 생각이 났어요. 예를 들면 영화나 드라마의 현장에 있는 스텝들도 되게 그렇게 많이 혹사당하면서 그런대로 그게 좋아서 그 필드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버티고 그런 친구도 되게 많고, 음악계에서도 역시나 있죠. 미술에도 그렇죠.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많은 와중에도 계속 기획을 하시잖아요. 새롭게 기획하시는 것도 있고요. 기획 활동을 좀 더 도와준 것, 활동을 잘할 수 있게 촉진해준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임현진: 외적인 동력은 명확하고 단순해요. 저는 누가 저한테 잘했다. 고맙다 멋지다 해주면 그냥 게임이 끝나요. 아 진짜 잘했어. 진짜 잘했나 봐 이러면서 다 모든 고뇌다 잊고 아 그걸 먹이 삼아서 앞으로 달려갈 수 있는 그런 명예욕 같은 게 있는 것 같고. 그런데 내적인 동력이라고 하면은 제가 외국어 배우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막 언어학적으로 외운다기보다 그냥 그 알아듣게 되는 그 순간이 너무 미묘하고 신기해요. 모르던 말인데 언젠가 들리게 되는 걸 경험하고 그 이상 더 늘어나지는 않지만, 그런 거처럼 기획을 하는 것 같아요. 


아 이거 모르는데 이거 한번 해보면 이거 할 것 같아 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획들이 되게 많고.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일들이 되게 많았던 것 같고. 그래서 하던 걸 반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하던 걸 반복할 거면 지난번보다 더 잘한다든지 다르게 한다든지 뭐 그런 장치들이 충분히 있어줘야 스스로도 좀 만족을 하는 것 같고. 

방해요소는 성장하고 싶은데 성장이 안 되게끔 하는 것들. 이상은 여기까지 올라와있는데 행정이 뒷받침이 안 되는 거예요. 근데 나는 그 행정이 어떻게 해야지 뒷받침해줄 수 있는지도 알아요. 그러니까 이거를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은 이렇게 하면 바뀔 수 있어를 막 말하고 싶은데 그게 또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1부터 10까지를 다 해버리면 안 되고 그러니까 그 그리고 있는 그림을 다 완성을 못하게 되는 거예요. 그럴 때 좀 갈등이 있고 많이 지치죠. 

이게, 비전을 충분히 공유하는 것은 어떤 걸까, 이 조직이 굴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사람들과 같은 그림을 혹은 저 사람이 지금 요구까지 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내가 그 그림을 바꿔낼 수도 있어야 되는데, 그런 걸 아직 너끈하게 조율하는 능력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아 저기가 고지야 하고 깃발 꽂으면 냅다 달려야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깃발까지 못 가면은 좀 서운하고 지치고. 


서울아트마켓 라운드테이블 (c) KOFICE


요즘 기획자로서 갖고 있는 관심 이슈라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건가요? 

임현진: 저는 요새 관심 있는 거는 공부하고 있는 단계인데, EDI 정책에 관심 있어요. (equality, diversity, inclusive). 접근가능성부터 다양성, 평등한 가치들이 나의 작업에 나의 창작에 내가 하고 있는 행사에 적용이 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을 권장하는 영국 정부의 정책기조 같은 건데 그것들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느끼고 특히 코로나를 겪고 나니까 굉장히 우리가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들이었다는 게 너무 여실히 드러났고 우리의 작업도 별반 다르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주제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창작자들하고 많이 대화를 하고 있고 그런 작업들을 올해 조금조금씩 소개했는데 내년에는 그냥 소개하는 것만 말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축제들에서도 EDI의 관점에서 연구사업이라든지 혹은 작품들의 음성해설을 넣는다거나 접근성이 안전한 지를 점검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든다거나, 혹은 최소 내가 하고 있는 것 10개 중에 한 개는 대상 군을 좀 더 확장해보도록 노력을 하겠다. 프로그램 중에 하나는 다양성을 고려해서 구성하겠다. 그걸 하는 방법들을 계속 찾아서 공유하고 주변에 같이 일하는 창작자들이나 다른 기획자들하고도 공유하고 싶어요. 그걸 하면 만족도도 높고 행복하고 일단 되게 기쁘고 게다가 창작 작업도 굉장히 또 다양한 모습이 되는 거예요. 색다른 모습이 되더라고요. 만날 수 있는 관객의 층도 엄청 넓어지고.

언젠가 한번 얘기했던 것 같은데 제가 요새 흥미롭게 보고 있는 창작자 중에 한 명이 아이를 둘 낳고 엄마가 됐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아기를 키우다 보니까 저녁 여덟 시에 대학로에서 하는 연극 공연을 보러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인 거예요. 그때 생각이 들었대요. 왜 연극은 저녁 여덟 시에 혜화동에서 만해. 왜 우리 동네엔 그게 없지.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혹은 이 연극 공연장은 왜 없어. 왜 엄마들은 다 브런치 콘서트 커피 마시면서 클래식 만들어야 돼? 왜 나에게는 그것들이 주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서 오후 2시에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공연이라든지 혹은 공연장에 원래 갈 수 없었던 분들만 개인적으로 찾아다니면서 보여주는 공연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제작을 하고 있는 분이 있어요. 

그런데 그러한 접근들이 다양하게 존재해야 생태계가 어떤, 코로나나 혹은 어떤 다른 위기들이 닥쳤을 때 다 같이 무너지지 않고 또 다른 지탱할 힘이 이쪽에도 있고 서로 좀 이렇게 조직이 촘촘해져야 더 다양해지고 촘촘해져야 버틸 힘 들이 여러 곳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지금은 한 군데만 탁 치면 조직이 무너지는 그런 생태계인 것 같거든요. 그런 것에서 느낀 문제의식과도 연관이 있어요. 

영국에 제가 좋아하는 축제 중에 하나는, 프로그램 북에 보면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카탈로그 같은 게 나오잖아요. 이렇게 쭉 넘기면은 몇 시에 어디서 무슨 공연 이런 게 나오는데 거기에 뭐 그런 표시들이 있어요. 휠체어 타고 접근 가능한 공연, 몸짓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공연, 그런 아이콘으로 다 표시를 해주고. 다양성을 상징하는 공연, 젠더에 대해서 평등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공연은 무지개 표시, 이런 여러 가지 분류 기준을 둬서 공연을 볼 수 있는 사람군을 확장을 하거든요. 그리고 거리에서 보는 거리극, 장소특정형 공연인데도 휠체어석을 따로 마련해두고 그 휠체어석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모든 공연에 다 배치가 돼 있다든지. 그런 거는 공연하나 창작자 하나가 바뀐다고 되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실은 여러 군데서 막 시도를 해봐야 이거 할 수 있는 건가 봐, 해볼 만한 것 같은데, 우리도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덧) 이야기를 나눈 뒤 일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그 창작자는 매일 오후 1시에 하는 공연을 만들었다. ‘대극장짓기’라는 이름의 그 공연은 공연장에서 환대받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극장이 무엇인지, 우리가 극장을 만든다면 진짜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물으며 공연을 통해 메타 극장의 담론을 무대 위에 올렸다. 

* 제너럴쿤스트 <대극장짓기> 2022.12.1-9. 신촌극장 (링크)




*임현진은 다양한 공연예술작품의 창작을 기획하고 또 해외에 소개하거나 해외의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등 공연예술분야에서 예술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다 그것이 직업이 되기까지, 또 현장의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또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속한 분야의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까지, 인터뷰는 새삼 예술이 누군가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삶의 방향까지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본 인터뷰는 서울문화재단과 청년예술청 그리고 청년기획자플랫폼11111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던 "2020-2021년 청년기획자의 현실을 기록하다"라는 청년기획자 심층 인터뷰를 발췌 정리하고 서면인터뷰를 추가하여 보완한 것이다.

청년기획자 임현진

이전 17화 꼭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