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 moon song Jul 17. 2024

당신은 일상을 어떻게 견디어 왔나요?

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사빈의 답장을 번역하고 다시 다듬어 블로그에 올린 뒤에야, 사빈에게 답장을 쓸 수 있었다. 사빈이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걱정하던 구절을 떠올리며 번역을 했을 때 명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히 쓰고 다듬다 보니 언어의 장벽 이 오히려 편지에 온 마음을 다하는데 도움이 되는 셈이었다. 혹시라도 번역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 그래도 조금 더 편한 영어로 번역해 보고 문장을 다듬은 뒤 다시 독일어로 번역하고 그걸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보아 내용이 동일하게 전달되는지 확인해 보고 글을 보냈다.


친애하는 Sabine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  오늘 막 당신의 자기소개를 번역하고 블로그에 올릴 준비를 끝냈습니다. 내일 중으로 업로드를 하게 될 거예요. 당신의 답장과 자기소개글을 받고 한참이 지나서야 준비를 다 마치고서야 답장을 보내는 나를 용서해 주길 바랍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의 자기소개를 너무나 즐겁게 읽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삶을 간결하게 적어주었지만 그 간결함 속에서도 나는 당신의 농장에서의 어린 시절을,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던 모습을, 푸르름에 둘러싸여 일하며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성실하게 그리고도 기쁘게 자신의 일과를 가꾸어나가는 모습을 말이죠.  당신이 위대하거나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당신이 이루어온 것에 그리고 당신의 삶의 방식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에 나도 너무나 기뻤다면, 이상하게 들리나요? 당신이 지금까지 축적해 온 것들에 기쁨을 느끼고 만족한다는 사실에 나 역시도 너무나 기쁩니다.
당신에게 이 프로젝트를 청한 나의 제안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과 같은 앞선 여성들의 이야기에 나와 나와 같은 젊은 여성들도 우리의 삶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는 나아가 당신과 같은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낍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줘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해요.

당신의 자기소개와 더불어, 나의 질문들과 나와 같은 젊은 여성들의 질문들도 주제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크게 5가지 주제로, 각 주제에 따라 두세 가지 질문들로, 나뉘더군요. 일상의 구체적이고도 사소한 질문들부터 점차 추상적인 질문들로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넓혀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1) 일상 2) 일 3) 가족, 대인관계 4) 여성으로서의 삶 5) 신념 혹은 가치에 관련된 질문들로 순서를 정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 편지 다음 편지에 한 번에 하나의 주제, 그리고 그 주제에 관련된 질문들을 공유하고, 사빈이 그 주제와 질문들을 읽고 답변을 적어서 답장을 보내면 그것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게 어떨까 합니다. 물론 질문을 받아보고 다른 의견이나 질문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언제든 논의하고 사빈에게 가장 잘 맞는 방향을 찾고 싶습니다.
그리고 글을 블로그에 업로드하면서 한 가지 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대화를 블로그에 한 편씩 올릴 때마다 그 내용에 어울리는 풍경사진을 함께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각자의 삶과 그 삶 속에서 나오는 고민들에 대한 것이지만, 우리가 그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가며 보았던 풍경들을 더해준다면, 그것들을 읽는 독자들이 풍경과 함께 이야기를 관조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도 자연과 예술이 가장 큰 위로를 준다고 느끼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당신이 자연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 반가웠습니다.
제가 찍은 풍경사진들을 우선 고르겠지만 혹시 사빈이 좋아하는 풍경이나 사빈이 가꾸는 정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내준다면 함께 실어보는 게 어떤가요? 물론 원하지 않는다면, 제가 고른 풍경 사진들만 함께 업로드하려고 합니다. 때로 이미지는 글에 표정과 깊이를 더해주고 글의 정서를 전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요. 생각해 보시고 편한 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

지금까지 적은 글이 궁금할 것 같아서, 번역본을 이 편지 아래에 첨부하도록 할게요. 글에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당신의 편지를 받고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편지도요. 이제 이 편지 다음부터, 질문들을 본격적으로 보내보도록 할게요. 저도 최대한 영어, 독일어 번역기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제 질문이 이상하다면, 저에게 언제나 물어보셔도 되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처음부터 당신이 늘 언제나 핵심을 간파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중요한 핵심은 언제나 언어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다음 편지부터는 저에게 보내는 답장과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을 동일하게 생각해 주셔도 됩니다. 질문에 대해서 저와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답을 주시면 됩니다.

사랑을 담아, Moon.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정리한 질문들 역시 번역기의 도움을 빌어 영어로 다시 독일어로 여러 번의 테스트와 다듬기를 거쳐가며 번역해 두고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사빈에게서는 아직 답이 없었다. 나의 제안에 동의하기에 이어서 보낼 질문들을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나의 제안을 생각해 보느라 미처 답을 하지 못한 건지 혹은 긍정의 답을 주기가 어려워 주저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일상을 돌보느라 미처 답을 할 수 없는 건지 궁금했지만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 더 기다려볼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질문들을 먼저 보내기로 했다. 질문들에 대한 사빈의 대답을 하루라도 빨리 듣고 싶을 정도로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질문을 하루라도 빨리 전해주어 사빈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길목에서 ©김문성, 2024.
친애하는 Sabine에게
한국은 이제 낮기온이 30도를 넘었습니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신호죠. 매년 더욱 더워지는 여름을 맞을 때마다 걱정을 하지만, 여전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경이로운 자연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하곤 합니다. 당신은 시간을, 반복되는 계절을 지나는 일상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듣고 싶어요.   

일상에 대한 질문들: 저의, 그리고 저와 같은 젊은 여성들의 질문을 정리해서 보내드립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하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어느 순간부터 봄이 눈부시게 찬란하다고 하나의 계절이 지날 때마다 아쉽다고 느낍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매년 새롭게 계절을 맞이하는 당신은 어떤 걸 느끼는지, 그 계절을 어떻게 누리는지 궁급합니다.

* 지나는 시간 속에서, 세끼를 준비하고 또 설거지하고 옷을 세탁하고 침대시트를 빨고 집안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등의 일상을 챙기는 일은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끊임없이 손이 가지만 잘해도 티가 나지 않고 조금만 게을러지면 굉장히 잘 못한 것처럼 느껴져서 괴롭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당신은 의, 식, 주를 건사하는 일이 힘들진 않았나요? 익숙해져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가요 아니면 여전히 힘든가요? 어떤 마음으로 해나가는지,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 의식주를 챙기고, 일을 하고, 또 가족들을 비롯해 사람들과의 관계에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나요? 자신을 위한 시간은 충분했나요? 시간이 있었다면 여가를 어떻게 보냈는지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가를 보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당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이 있다면 저에게도 힌트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잘하려고 하다 보면, 너무 애를 쓰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너무 애를 쓰지 않고도 잘 지내는 방법이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노력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과연 사빈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질문을 보내고도 하루빨리 사빈의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위대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 삶에 자부심을 느끼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