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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Jul 23. 2024

계절마다 나에게 좋은 점을 찾으려 노력해 왔단다

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일상에 대한 네 가지 질문에 사빈의 장문의 답변을 읽으며 질문과 답을 하나씩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꺼번에 올려버리면 신중하고도 솔직한 각각의 답변을 충분히 음미하며 읽을 수 없으리라는 조바심이 일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그녀의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 속에서 상상하고 자신의 삶을 대입해 보며 위로를 얻을 수 있었으면 했다. 내가 그녀의 글을 읽으며 그랬듯.

일상에 대한 질문 중에서도 첫 번째로 건넸던 질문은 일상을 보내는 시간들을, 그중에서도 사계절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반복되는 매일을 정신없이 보내다 훌쩍 흘러가버린 시간을 뒤늦게 깨달았던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다 결국은 노년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날부터 좀 더 매 순간에 충실히 살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매일의 변화에도 자연스럽게 계절의 순환에도 관심이 이어졌다. 그 무수한 반복을 몇 년 아니 몇십 년 이어온 사빈에게 그 순간들을 어떻게 누리는지 묻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하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어느 순간부터 봄이 눈부시게 찬란하다고 하나의 계절이 지날 때마다 아쉽다고 느낍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매년 새롭게 계절을 맞이하는 당신은 어떤 걸 느끼는지, 그 계절을 어떻게 누리는지 궁급합니다.


계절 다루기

나는 농장에서 자랐고 나중에 하게 된 일도 자연 속에서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계절을 편안히 접해왔단다. 거의 35년 동안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했지. 비가 오든, 서리가 내리든, 눈이 오든, 뜨거운 태양 아래든 상관없이 말이야. 그래서 날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여유를 그리고 계절에 대해 더욱 민감한 인식을 갖게 되었지.
솔직히, 나도 욕을 한 적이 있어. 자전거 앞뒤에 아이 둘을 태우고, 좌우로 쇼핑 가방을 매달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는 정말 재미있을 수 없었어. 하지만 그것도 지나가고 나면 상대적으로 나아지더라고. 지금은 그런 순간들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되고, 계절을 나만의 방식대로 즐기게 되었지. 나는 각 계절마다 나에게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단다.

8월과 9월, 독일에서는 'Altweibersommer'라고 부르는 특정한 시기가 있어. 작은 거미들이 따뜻한 대기 속에 거의 보이지 않는 가는 거미줄로 옮겨 다니는 그때, 태양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번지는 빛을 발하지. 나에게, 그 시간은 대기가 비단처럼 나의 살결을 어루만지는 특별한 시간이란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아름다운 장소로 가서 자연을 만끽하지.
가을과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 독일에서는 이 시기에 자주 비가 오고 안개가 짙어 우울해질 수 있어. 나는 그때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했어. 어두운 계절은 평온을 가져다줄 수 있고, 나는 속도를 늦추고 고요히 시간을 보내며 취미를 즐기고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거든. 시간이 걸리는 작은 일들은 일부러 겨울에 남겨둔단다. 그리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준비로 한 달을 보내지. 그때 우리는 베이킹을 많이 하고 집을 꾸민단다.
나는 항상 말하곤 해: 겨울은 "곰의 시간"이고, 사람들도 자신들의 동굴로 돌아가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라고.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야, 매일의 삶은 충분히 미쳐 돌아가니까.
그리고 봄은, 당연히 생기 넘치는 시기라서, 나도 내 나이가 든 몸의 통증도 덜 느끼고, 일과 움직이고자 하는 활동에 대한 욕구가 커지지. 그때가 되면 나는 정원에서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지. 자연이 하는 모든 일을 다만 듣고 관찰하는 거지. 이것은 나에게 작은 사치란다.

지금의 나는 독일에서 4계절을 경험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하곤 한다. 모든 나라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4계절은 흥미진진하지, 기대감과 이별, 그리고 항상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준단다.
극심한 기후 변화 때문에, 계절에 대한 나의 인식도 바뀌고 있단다. 가면 갈수록 강력한 변동이 잦아지고 늘고 있다. 각 계절이 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이건 좋지 않은 신호야. 하지만 나는 다만 이 세계의 한 명의 소시민으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확인하고 검토할 수 있을 뿐이지.
  ©Sabine, 2024.


나는 사빈의 사계절을 그려보았다. 한여름의 더위를 견뎌내고 아름다운 숲 속에 앉아 해 질 녘 부드러운 대기 속에 번지는 노을을 기쁘게 음미하는, 단풍이 든 나무들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창밖에 눈이 내리는 가운데 집안에서 쿠키를 굽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며 분주히 움직이는, 정원에 피는 꽃들에게 정성스레 물을 주는 그녀의 모습을. 그렇게 사계절 그녀의 모습을 그려보며 폭우와 폭염을 오가는 올해에도 그녀의 작은 사치들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라면, 각 계절마다 어떤 것을 나의 작은 사치라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그녀처럼 각 계절마다 사랑해마지 않는 것들을 정리해 보기로 그리고 그것들을 매 계절이 올 때마다 잊지 않고 즐기며 돌아온 계절을 감사히 맞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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