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바다는 푸르다 못해 검었다. 짙은 먹구름이 두텁게 깔려 있었지만 파도는 잔잔했다. 잊을 만 하면 빗방울이 흩날렸지만 또 금세 멈추곤 했다. 나는 일찌감치 짐을 꾸리고 갑판에 나와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풍광을 담아두고 싶었다. 배는 이미 일찌감치 훈춘항에 들러 중국인들과 한국인 보따리상인들을 내려주고 속초로 향하고 있었다. 검푸른 잔물결이 넘실대는 바다의 모습은 아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시시각각 속초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늘하고 매끄럽게 목덜미를 스치던 바람이 미적지근하고 끈적하게 바뀌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면 마실수록 습하고 더운 공기가 내 안에 들어찼다. 짭쪼름하고 비릿한 바다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익숙한 그 냄새에 속초에, 한국에, 내가 떠나있던 곳에, 돌아왔음을 알았다. 반가우면서도 서운했다. 어서 빨리 도착했으면 싶다가도 항해가 계속되었으면 싶기도 했다. 드디어 여행을 마치는구나 홀가분하다가도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지 막막하기도 했다. 속초에 도착해서 무엇부터 해야할지, 서울로 향하는 경로를 어디로 정해야할지, 서울에 도착해서는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잠깐 사이에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끝없이 펼쳐진 먹구름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를 찬찬히 훑었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그 순간을 놓치느니 충분히 누리고 보내주고 싶었다. 매 순간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끝을 맞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여행을 하며 수없이 확인했듯이. 아무리 충만한 순간도 아무리 괴로운 순간도 끝이 있었다. 끝이 있기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고 또 다른 무엇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도 돌아가 맞닥뜨릴 하루하루도 그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