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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선실에서

by 문성 moon song

동춘호 3등선실에서 여행의 마지막 이틀을 보냈다. 자루비노항에서 속초로 향하는 뱃길은 17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즐을 서서 선실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리를 잡았다. 칸막이로 나뉜 마룻바닥에 자리를 잡고 모여 앉아 떠드는 이들도 짐을 풀고 정리하는 이들도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매트리스와 담요, 베개를 들고 와 자리를 마련했다. 타원형의 창밖으로 아스라한 수평선이 보였다. 그날따라 날이 흐려 어디까지가 바다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여행 내내 달려온 끝없는 대지를 떠나 이제는 끝없는 바다 속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시베리아를 달리던 그 순간이 다시금 이어지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쓴 돈을 계산하고 일기를 쓰는 사이 사람들은 열을 올리며 떠들다 하나둘씩 각자의 잠자리로 흩어지고 날은 이미 어두워진지 오래였다.
전체소등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선실을 밝히던 형광등도 꺼지고 나자 나도 담요를 덮고 누웠다. 어둠 속에 눈을 감고 있어도 느낄 수 있었다. 코고는 소리 너머 육중한 엔진소리가 들렸다. 선체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커졌다 작아지며 거대한 선체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따금 몸이 둥실 떠오르듯 흔들렸다. 누워있는 내 몸뚱이만이 아니라 선체 전체가 기우뚱하며 파도를 따라 흔들리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도 않았다. 꼭 거대한 고래 뱃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나를 뱃속에 넣은 고래가 파도 치는 어두운 바다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순간 나는 3등선실의 새카만 어둠 속에서도, 거대한 고래에 집어삼켜졌다고 상상하면서도, 그 고래가 파도치는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지금은 거친 파도에 흔들리고 있어도, 내일이면 파도가 가라앉고 잔잔한 바닷가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화창한 그곳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선실에 있었을 그때의 나보다도 어린 친구들을 생각한다. 선체가 기우뚱하며 흔들리는 그 순간 그 친구들도 나처럼 그래도 배가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 나를 데려다줄 것이라 믿고 있었으리라.
너무나도 당연한 그 믿음이 무너지고 2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그 믿음을 복원하지 못하는 지금 그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10여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죄책감을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그들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배를 탈 수 있을까. 다시 3등 선실에 누워 어둠 속에 배가 흔들리는 것을 견딜 수 있을까. 불안과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 보이는 각각의 경험들은 사실은 이렇게 이어져있다. 우리에게 반문한다. 그것이 과연 그들만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앞으로도 역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적어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당연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은가.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기를 바란다. 피해자들 그들의 가족들 모두가 제대로 사과를 받고 제대로 보상받기를 바란다. 정부는 제대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기업은 제대로 배를 운행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누구든 거센 파도 속에서도 배를 타고 새로운 어딘가로 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연히 그 배가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 어디론가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을 믿으며. 그 당연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다시 반문한다. 믿음을 복원해나가는 과정을 기업에게, 기관에게, 국가에게만 맡길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지켜봐야하는 게 아닐까. 그것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그 결과가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아닐까.

오래전 당연했던 믿음이 다시금 당연한 미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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