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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Sep 19. 2022

2018.3.24~26 / 마오의 마지막 댄서

브리즈번, City Tour (2)

브리즈번에서 보내는 마지막 이틀만큼은 여기 사는 사람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 점심과 다를 바 없는 아침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는 생활인과도 같은 여행이었다. 브리즈번은  꽤나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시티를 둘러보는 일은 고작 하루면 충분했고, 10일이면 볼 것이 충분했던 멜버른과는 다르게 이 도시는 잠시 나에게 쉬어가는 곳과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어디를 가보면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한적한 공원을 따라 걸었다. 날씨는 생각보다 많이 흐리다가 다행히 오후가 돼서 개었는데 어느 한적한 벤치에 앉아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호주의 여유로움이 절로 실감이 났다. 이날은 브리즈번을 떠나는 마지막 날이었기에,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하루를 보낼 수 없어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마오의 라스트댄스' 전시회를 관람하러 발길을 서둘렀다. 이제 막 외국에서 보는 전시회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캉가루 포인트 클리프스 공원 (Kangaroo Point Cliffs Park)

지난번엔 꼭대기 층에 올라가 시계탑을 보았던 브리즈번 시청을 다시 찾았다. 시청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문이 잠겨있는 곳들이 눈에 띄었는데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을 들어가 보고자 하는 어린아이들의 심정이 제법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조금 더 시청을 누비다가 이내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을 보고는 3층 전시관으로 향했다. 외국에서 전시장을 다시 마주하니 뿌듯함이 들었고, 이왕 다시 보는 전시회가 내게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호주 여행기를 적으며 몇 번이고 언급했던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외국에서 전시회를 찾아가는 즐거움이었다. 사실 전시회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흥미 있는 사람이나 찾아가는 것 중 하나인 데다가 SNS 업로드용 포토부스와도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 주제가 분명한 전시회라면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찾아가던 전시회들은 대체로 디즈니나 아드만 스튜디오와 같은 접근성이 낮은 전시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예술에 큰 조예가 없어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한 경험들을 모아 외국여행 중에도 가볼 만한 전시회들을 찾아가 보는 재미를 새롭게 발견했다. 그렇게 최대한 언어를 알지 못해도 이해할 수 있는 전시에 눈독을 들이다 실존 인물인 '리춘신'에 대한 전시를 발견했다. 포스터가 궁금해 검색을 해보니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있었고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운 발레리노의 이야기가 제법 구미가 당겼다.


전시회를 보며 나보다는 문법적으로나 어휘력이 뛰어났던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내가 미처 해석하지 못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만나온 대학생 친구들은 비록 회화적인 능력은 뛰어나지 못해도, 시험 영어를 준비한 그 경력은 무시 못 해 이렇게 전시회나 박물관을 올 때면 그런 면을 톡톡히 빛냈다. 호주에서 머무는 내내 네다서살 이상 차이나는 동생들을 보며 나는 묘하게 세대 차이 같은 것을 실감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미 직장인의 삶에 익숙했던 나와 대학생인 그 친구들의 생활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 숙소로 돌아와 애써 남는 시간이 아쉬워 라라랜드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산책 겸 다리를 건넜다. 서서히 노을이 지면서 발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퍽 여유로워 보였고, 다리 끝까지 가볼까 싶었지만 이내 해가 지고 있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꽤 작은 해프닝이 있었는데, 골드코스트로 향하는 기차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던 나는 가까스로 근처에 계시던 다른 시민분께 도움을 받아 기차에 간신히 탑승할 수 있었다. 골드코스트로 향하며 함께 시드니에서 생활했던 도연이와 통화를 하며 서로 안부를 물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윽고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했다. 우여곡절에 도착한 호스텔의 첫인상은 흡사 흥이 많은 여행객들의 소굴과도 같았다. 그들은 다른 호스텔보다도 유독 자유로와 보였고, 손에는 맥주병을 손에 쥔 채 다들 자유스럽게 건물 안을 활보했다. 나는 괜스레 그들의 흥에 기가 죽어 간단히 짐을 푼 뒤 케언즈에서 만난 S오빠와 잠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우연찮게 우리는 골드코스트에 묵는 일정이 며칠 가량 겹쳤고, 당시만 해도 홀로 놀이동산을 갈 자신이 없던 삼촌과도 같았던 S오빠와 함께 테마파크를 갈 계획을 짠 뒤 서로 그 호스텔 속에서 잘 지내보자며 응원의 말을 남겼다. 어느덧 나의 호주여행도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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