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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01. 2022

2018.3.23~24 / 이 도시가 곧 장난감천국

브리즈번, City Tour (1)

다소 외로웠던 케언즈를 뒤로하고 브리즈번으로 넘어가는 여정은 꽤나 험난했다. 밤늦게 공항에 도착하기는 하지만 다수의 여행 경험을 토대로 큰 난관엔 부딪히지 않으리라 확신하였고, 곧 오만임을 깨달았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버스정류장을 찾기가 꽤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버스정류장을 헤매기를 1시간. 그 1시간 동안 나는 오랜만에 1인 여행객으로써 느낄 수 있는 공포를 몸소 실감하였다. 간신히 정류장을 찾은 뒤에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시내로 향하는 픽업 버스 티켓을 끊는 일이었다. 당시 부족한 영어실력과 당황한 나의 심리적 상황들이 고루 겹쳐 티켓부스 직원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고, 자정이 막차라는 말을 다음 차는 밤을 새워 기다려야 한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함께 버스를 기다렸던 한국인 여행객의 도움으로 무사히 시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묵은 숙소는 벙크 브리즈번이었는데, 새로 지어진 호스텔처럼 시설이 꽤 쾌적하였고 침대마다 커튼이 쳐져 있어서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미 늦은 시각이었던 터라 어두운 방에 조심히 들어와 침대에 간신히 짐을 풀고 앞 침대였던 멜로디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곧이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마주한 브리즈번은 전날 어두워 미처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매력으로 나를 반겼다.

여행 시 대부분의 거리를 걸어가는 나는, 간단히 숙소 옆 차이나타운에서 점심을 먹은 뒤 시청까지 걸어가는 도보 여행을 시작하였다. 전날 도움을 주었던 여행객과 돌아오는 길에 부쩍 친해져, 그 친구의 지인과 함께 식사 자리를 잡았는데 그전까지는 홀로 시청 투어를 할 심산이었다. 브리즈번은 도시 자체가 시드니에 비하여 좁게 느껴졌으나, 다윈과 케언즈를 지나 온 나로서는 그마저도 현대적으로 보였다. 사실 브리즈번에의 여행은 큰 기대는 없었으므로 그저 골드코스트를 가는 길에 위치한 여행지라고만 생각하였는데 건축물을 구경하며 미술관을 보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나 볼만한 관광지가 아닐 수 없었다. 마치 강원도와도 같은 지방에서 돌아와 강남으로 넘어온 기분이었달까. 길을 걷다 마주치는 유럽풍의 건축물들은 꽤나 재미있게 느껴졌고, 고층 빌딩 곳곳에 장난감과도 같은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Anzac Square & Memorial Galleries

시청 쪽으로 한참을 걷다가 근처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사와서는 버스커공원이 한창인 공원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 샌드위치를 다 먹은 뒤에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간의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케언즈에서는 느꼈던 또 다른 행복이 물밀듯 밀려왔다. 외국의 낯선 도시 한가운데에서 적당히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간. 한국에서도 기회가 닿는다면 접해볼 수 있는 경험이겠지만 여행자라는 신분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퍽 자유롭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내가 혼자 왔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그저 공원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는 일이라니. 한 두어 시간을 더 머물고 싶었지만, 홀로 정해둔 계획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이어서 발길을 재촉하였다.

Ann Street Presbyterian Church
Albert Street Uniting Church
Brisbane City Hall

이윽고 시청에 당도한 나는 브리즈번 오기 전부터 이것만은 꼭 경험해보리라 다짐하였던 '브리즈번 시청 시계탑 투어'를 위해 건물 내부로 입성하였다. 외국여행을 하며 시청 안쪽으로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브리즈번의 시청은 흡사 박물관을 방불케 하였다. 내부로 들어가자 온통 대리석으로 뒤덮인 1층의 위용에 잠시 놀라기도 하였는데 마치 고급스러운 대저택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시계탑 투어를 위하여 3층으로 올라갔는데, 티켓을 발권할 수 있는 카운터 쪽에서는 브리즈번 박물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투어는 일정 시간이 정해져있는지라 남은 자투리 시간을 대부분 이 박물관에서 보내는 듯하였는데, 관광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도시의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 역시 그 관광객 중 하나였다


브리즈번과 관련된 역사와 전시물 등을 관람할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이목을 끌었던 것은 '마오의 라스트 댄서' 전시회였다. 멜버른에서부터 그 도시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었던 내가 당시 꽂혀있었던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전시회를 보는 것이었다. 줄곧 내가 골랐던 전시들은 어렵지 않거나 때로는 해설을 전부 이해할 수 없어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위 전시회는 실존 인물과 책, 영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내 구미를 당겼다. 그러나 브리즈번에서의 여행은 최대한 생활자처럼 쉬었다 가는 것이었으므로, 계획하였던 시계탑 투어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이윽고 시계탑 투어가 시작되었고 주변에 흩어져있던 관광객들과 함께 몇 가지 안내사항을 들은 뒤 시계탑으로 향하는 리프트에 올랐다. 시계탑으로 올라가는 과정은 흡사 영화 속 한 장면과도 같았고, 오래된 철근이 내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시계탑에 도착하자 브리즈번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청으로 걸어오며 보았던 귀여운 모습의 교회들은 높게 드리워진 고층 빌딩 속에서 유난히 더욱 앙증맞게 보였고 브리즈번의 스카이라인과 나의 눈높이가 맞아떨어지자 하늘에 올라와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한 바퀴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며 용기를 갖고 밑으로 내려다보는 일들을 두어 차례 반복하자 짧은 투어 시간이 끝이 났다. 뒤이어 앞서 약속 잡았던 친구와 그의 지인과 함께 카페에 들렸다가 로컬들이 자주 간다는 펍에 들려 맥주를 한 잔씩 하고는 다시 시청으로 돌아와 브리즈번 시청의 야경을 감상하였다. 브리즈번 타운홀의 야경은 그 어떤 도시의 것 못지않게 아름다웠지만, 시드니의 타운홀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세인트 존 대성당 (Saint John's Cathedral)

전 날 브리즈번의 시내 대부분을 돌아보고, 시계탑 투어까지 갔다가 저녁 약속을 해치우고 돌아오는 일정에 다음날이 되자 몸이 무거웠다. 개인적으로 브리즈번은 근교 여행을 할 것이 아니라면 며칠 내내 타이트한 일정을 잡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이 날 하루만큼은 생활자처럼 지내보고 싶었다. 사실 오스트리아 이후로 여행지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현지인처럼 극장에 가는 것이었는데, 때마침 브리즈번에서는 개봉 전부터 보고 싶었던 블랙 팬서가 상영 중이었다. 호기롭게 브리즈번 극장 투어를 해보고자 영화를 관람한 나는, 내용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게 극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영화의 비하인드를 찾아보니 배우들은 극 중 배경이 배경인 만큼 아프리카식 영어를 구사하기 위하여 연구하였고, 그 덕에 나 같은 영어 초급자도 큰 무리 없이 대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케언즈에서 고독과 싸우다시피하다, 브리즈번으로 넘어와 낯선 이들과 짧은 인연을 맺고 빌딩 숲속을 걷자 마치 도시 생활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연유로 별것 없는 관광지라 생각했던 이 도시가, 불과 이틀만에 사랑스러워 보였다. 남은 이틀의 여행을 기대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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