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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25. 2022

2018.3.21 / 영화 '아바타' 속으로

케언즈, 쿠란다(KURANDA) 마을

몇 해 전 엄마와 함께 영화 <아바타>를 보았을 때 나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신세계에 걸어 들어간 느낌이었다. 스크린 안에 가득 찬 초록의 나무들은 지구 상 어딘가에 이곳이 실존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0년 동안 준비한 작품답게 영화는 시종 아름다운 그래픽 화면들을 내보였다. 엄마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그 영화를 다시 보셨고, 나는 그 영화를 볼 때마다 그래픽 기술보다도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녹색 행성에 마음이 빼앗겼다. 그로부터 9년 후 케언즈에 가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몇 가지 여행지를 찾아보던 중 영화 속 판도라 행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던 국립공원을 알게 되었다. 영화 제작 당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판도라 행성을 구현하는 데에 꽤 애를 먹었고, 마침 호주 케언즈 쿠란다 국립공원의 모습이 담긴 엽서 한 장을 보고는 바로 로케이션을 결정했다는 풍문을 들은 터였다.


날씨운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모두 몰아 쓴 탓인지,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호스텔에서 인쇄해준 바우처를 손에 들고, 픽업 장소인 호텔 앞에서 그렇게 홀로 한참을 기다리던 와중 때마침 여행 오신 태국인 중년부부와 함께 픽업 버스를 기다렸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꽤나 많은 말들을 나누었는데, 휴양지로 유명한 케언즈를 홀로 여행 왔다는 사실에 제법 놀라셨던 것 같고 아무래도 혼자서 휴양지는 심심한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웃으시며 여행지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답해주셨다. 그렇게 소소한 담소를 나누던 와중 픽업 버스가 도착하였고 드디어 쿠란다 마을로 향하는 스카이 레일 케이블카에 올라타게 되었다.

나는 오전에 함께 버스에 오른 중년부부와 함께 케이블카에 탑승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꽤 재밌게 마을 정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쿠란다 국립공원의 열대우림은 실제로 판도라 행성이 절로 떠오를 만큼 그 위용이 실로 대단하였다. 800만 화소짜리 카메라 렌즈로 담는 것이 아쉬워 도중에는 카메라를 내리고 절경을 감상하게 되었는데, 조금만 더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가는 마치 이 열대우림 속으로 떨어져 버릴 것은 느낌을 들게 했다. 실제로 나는 '만약 이 케이블카가 도중에 떨어진다면?'이라는 말도 안 되는, 다소 꺼림칙한 상상마저 해보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드넓게 펼쳐진 열대 우림을 가만 보고 있자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스카이 레일은 한 번에 쿠란다마을까지 도착하지 않고, 중간에 2개의 정류장을 거치게 되어있는데 그곳에서는 열대우림을 눈앞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정류장이었던 배런역에서는 내려서 폭포를 관찰할 수 있었는데,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아크란을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이 절로 떠올랐다. 이렇게까지 거대한 폭포를 눈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다소 많은 관광객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폭포를 가까이서 촬영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국 제대로 된 사진은 포기해야만 했다.

배런 폭포 (Barron Falls)

며칠간의 강행군 때문이었는지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쿠란다 마을에 들어설 때까지만 하더라도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피곤함을 무릅쓰고 마을을 조금씩 돌아다녀 보니, 피곤은 차츰 가시기 시작했다. 쿠란다 마을은 실제로 원주민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호주의 전통악기 등을 판매하거나 쿠란다 국립공원 관광상품 등을 판매하는 작은 마을이다. 나는 돌아갈 때에는 관광열차를 타고 돌아갈 계획이었으므로 두세 시간 정도 여유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자 한시도 쉬지 않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은 생각보다 꽤 동화 속 마을을 연상시키듯 귀여운 인상을 주었고 관광지답게 곳곳에는 국립공원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쿠란다에서는 주로 오팔 보석을 판매하고 있었고 그중 엄마와 큰엄마 선물을 고르고자 한 주얼리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매우 아름다운 중년의 백인 여성이 혼자 점원으로 있었는데 내가 엄마 선물을 한창 고를 즈음 가족단위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상점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는 매우 유창한 중국어 솜씨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영어권 국가의 사람이 제3의 언어를 구사하는 장면은 내가 가지고 있던,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은 다른 언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엔 지장 없다는 선입견을 산산이 부숴트렸다. 나는 그 장면이 꽤나 인상 깊게 남아 숙소로 돌아와 친구 D에게 앞서 겪은 문화충격(?)에 대해 이야기하였는데 친구는 '내 오지 친구도 요즘 중국어를 배우러 다닌다더라.'라며 답했다. 그 대답은 나를 한 번 더 충격에 빠트렸는데, 아마 중국이라는 나라 세계 곳곳에 뻗치는 영향력이 한편으로는 겁이 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몇 년 후 다른 방향으로 영향력을 떨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채.

Kuranda Koala Gardens
오스트레일리아 나비 보호지 (Australian Butterfly Sanctuary)

그렇게 여러 상점을 둘러보다가 날이 갤 즈음에, 본격적으로 관광을 해보고자 코알라가든과 나비농장 티켓을 구입하였다. 쿠란다 코알라 마을은 실제 코알라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마을 내 동물원이었는데, 별안간 비가 다시 쏟아지는 바람에 사진 속에서 기대하던 동물들은 쉽게 관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우산을 들고 구경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고, 시야를 가려서 제대로 된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나마 코알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고, 조금 더 날씨가 좋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뒤로한 채 나비농장으로 향했다.


살면서 나비를 실제로 볼 일이 많이 없던지라, 나비농장에서 시종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카메라에 담고자 애를 써댔지만 결과물들이 영 형편없어 할 수 없이 눈으로 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나도 모르게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눈으로 좇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전시관에서는 다양한 나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아바타에서 등장 파란 나비였는데, 나비족이 'Butterfly'가 아닌 고유명사 'Na'vi'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영감을 받은 것 비단 열대우림뿐만 아라 확신했을 것이다. 사실 나비농장과 코알라 가든보다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은 열대 우림 한복판으로 들어가 어쩌면 악어를 관찰할지도 모르는 '아미덕 투어'였는데, 관광 시간도 빠듯한 데다가 무리하게 투어에 참여하다간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놓칠 수 있으므로 할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 연유로 코알라 가든과 나비농장은 보고 싶어서 본 다기보다는 '케언즈까지 왔으니 하나라도 더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아서' 본 관광지에 불과하였지만 생각보다 꽤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된 것이다.

쿠란다 관광 열차 (Ride the Kuranda Scenic Railway)

그렇게 열차 탑승 전까지 알짜배기로 관광을 마친 나는 점심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터라 열차에 오르기 전 매점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를 사들고 열차에 올라타게 되었다. 쿠란다 관광열차의 내부는 멜버른 퍼핑 빌리를 연상케 하였는데, 총 4명이서 마주 보는 좌석이었으므로 바깥의 절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창가 자리에 배정돼야만 했다. 다행히 내 좌석은 창가 쪽이었는데 함께 탄 일본인 관광객들과 함께 기차가 숲을 가로질러가는 장관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사실 앞서 여행으로 꽤나 지쳐있던 터라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는 풍경을 제대로 구경할 새 없이 거의 곯아떨어져 자는 수준이었지만 주위에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어 쿠란다 여행 전 숱하게 보았던 열차 운행 사진을 놓치지 않고 촬영할 수 있었다.


열차는 그 이후로 달리고 달려, 마치 시골마을과도 같은 곳들을 지나 드디어 목적지인 케언즈 센트럴 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인적이 드문 역을 빠져나오자 하늘에서는 다시 변덕을 부리듯 비를 뿌려대고 있었고, 나는 별 수없이 비를 피해 쇼핑센터로 들어가 잠시 구경을 하다 비가 그친 뒤 숙소까지 걸어가 보자며 호기를 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날이 제법 어두웠던데다가, 익숙한 시드니도 아닌 낯선 도시에서 한밤중에 숙소를 찾아가는 일은 제법 위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이 도시가 익숙해진 탓인지 밤거리가 더 이상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게 낯설지만 익숙한 도시에서 허기를 달래려 식당을 두리번거리다 다소 한산한 일식당에 들어갔고, 쌀쌀한 날씨에 움츠려버린 몸을 따뜻한 국물로 녹이며 쿠란다 투어를 마무리 지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우연찮게 영화 <아바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습게도 당시에는 그저 멋있다고만 생각했던 영화 속 판도라 행성이 허구의 곳임을 알고 있음에도 제법 친근하게 다가왔다. 투어를 할 적에는 몸이 지친 나머지 제대로 눈을 뜨고 돌아다니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니 그 모든 것들 역시 추억이 되었다. 비가 내린 열대 우림도, 혼자 있을 내가 심심해 보이셨는지 마주치는 종종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던 중년부부도, 몸을 녹여준 따뜻한 일본식 라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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