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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n 10. 2022

2018.3.22/ 비오는 휴양지에서 미술관과 도서관을

케언즈 시티 도서관 & 미술관

하늘에서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자 숙소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날이 개기만을 기다렸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니 별 수없이 하루는 미술관과 도서관에 투자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미술관을 가는 일은 여행지에서 내가 치르는 사소한 의식과도 같은데, 현지에서 보는 기획전이야말로 그 나라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들 중 하나였다. 미술에 깊은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낯선 외국 도시에서 미술관을 갈 때면 마치 방랑객이 된 기분이다. 다 해석할 수도 없는 팸플릿을 손에 쥐고 내 영어 실력의 한계를 체감하며 오로지 전시에만 몰두하는 시간. 그 시간 동안엔 무거운 짐을 내려두고 잠시 쉬었다가는 여행자의 신분을 몸소 체험하곤 한다.

하늘에서 양동이에 그대로 물을 쏟아붓듯이 비가 쏟아졌고, 그 와중에 이번 브런치만큼은 맛있는 곳에서 먹으리란 생각으로 우산을 부여잡은 채 빗속을 헤맸다. 얼마 없는 예산에서 조금이라도 더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찾아 헤매다 퍽 괜찮은 곳을 발견한 나는 그대로 그 식당으로 직행했고, 시드니에서 혼자 해 먹던 맛없는 파스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토마토 파스타로 끼니를 해결했다. 다행히 식사를 다 끝나갈 즈음 빗발은 약해졌고, 케언즈를 떠나기 전 꼭 들러보리라 마음먹은 도서관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방문했던 도서관들처럼 케언즈 시티 도서관 역시 그 외관이 흡사 그리스 신전을 방불케 했는데, 마치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의 축소판과도 같이 보였다. 날씨가 화창했더라면 도서관을 배경으로 더욱 근사한 사진을 건졌을 테지만, 빗발이 약해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서관에 입성하였다.

수줍게 도서관으로 들어간 나는 도서관 로비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케언즈 시티 도서관은 그동안 내가 다녀갔던 도서관들에 비하여 제법 우리나라의 공공 도서관과도 비슷했다. 로비에는 도서관에서 행사 중인 프로그램의 팸플릿을 가져갈 수 있도록 비치되어 있었고, 열람실은 여느 공공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대체로 유아 자료실과 일반 자료실이 분리되어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이곳은 큰 자료실 입구에 아이들이 책을 볼 수 있도록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민원이 바로 '소음'문제이다. 유아 자료실에서 잠시 근무하였을 때에도 종종 보호자가 큰 소리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시 가서 조금만 목소리를 낮추어달라는 부탁을 드리기 일쑤였고, 일반 자료실에서는 심지어 의자 끄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민원을 제기받은 적도 있었다.


유아 자료실과 일반 자료실이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이용자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도서관의 정숙한 분위기에 아이들은 자연스레 도서관을 이용하는 법에 대해 익힐 것이다. 폭우로 인해 도서관을 방문한 당일엔 어린이 이용자를 쉽게 찾을 수 없었지만, 어쩌면 이곳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연스레 도서관에 익숙해지고 정숙할 수 있는 과정을 배우도록 서로 간의 소음을 용인할지도 모른다. 다른 분들의 방문기를 찾고 나니, 도서관 내부가 다소 시끄러우므로 조용히 읽고 싶다면 안쪽으로 들어가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글을 발견하였다. 이 작은 도서관에서는 어쩌면 '정숙'보다는 '소통'을 우선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은 정숙해야 한다는 생각과 소통할 수 있어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나는 사서로서 종종 고민에 빠진다. 1인 체제로 굴러가는 학교도서관은 사서가 무엇에 중점을 둘 지에 따라, 도서관에 방향성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근무할 당시에는 아이들이 과도하게 괴성을 지르며 방해가 될 정도의 상황까지 갔을 때에는 혼을 내어서라도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지만,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나니 그날그날 분위기에 따라 정숙하게 책을 읽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자연스레 그 분위기를 따라갔다. 도서관에 관심 없는 학교일수록 최소한 나와 친해지기라도 해야 도서관에 와서 책 한 권이라도 더 볼 것 같은 마음에 나 역시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어떨 때에는 아이들이 꽤나 영양가 있는 주제로 이야기하다 내 견해를 묻는 일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케언즈 시티 도서관 (Cairns City Library)

어느 지역의 지역도서관들이 너무 광범위하게 문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 것과 그것이 현재 임기 중인 시장의 실적 채우기로 인해 움직였다는 사실에 다소 불만이 있었던 나는, 외국 도서관은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주로 도서관의 역할과 동시에 박물관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던 주립 도서관과는 다르게 시티 도서관에서는 우리나라의 여느 공공도서관처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또한 다양한 인종이 사는 호주에선 언어분야에 각국의 원서가 배가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료실에 나와서는 카운터로 가서 다른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처럼 사서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한눈에 보아도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이 도서관을 이곳저곳 그것도 꽤 오랜 시간 구경하는 것이 못내 신기하셨던지, 그곳의 사서선생님들은 나를 이미 주의 깊게 보시는듯하였다. 내가 용기를 가지고 말을 붙이자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분들은 나를 살갑게 반겨주셨다. 그 덕에 다른 주립 도서관에서 묻지 못한 것들을 이곳에서 물어볼 수 있었고, 호주 도서관 사서의 채용 방식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사서 어시스턴트로 시작하여 그 경력이 있을 경우에만 정식 사서로까지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내게는 꽤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만 구성되어있는 우리나라의 도서관 채용 구조와는 몹시 상이하기 때문이었다. 승진의 기회가 있는 곳에서의 근무자의 태도와 그 시작점부터 철저히 분리되어있는 곳에서의 근무 환경은 다르기 마련이다. 열심히 일해서 도서관 전체를 담당하는 리더 격의 사서로 올라갈 수 있는 사서 보조와 매년 11개월 단위로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 사서 보조의 기본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도서관에선 미소지자를 지역 거주민이라는 이유로 우선 채용하고 있으며, 실무 경험이 없는 일부 사서 공무원과 비정규직 사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리감은 좁히기 힘들다. 이러한 고용형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나 역시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서자격증 소지자만을 채용하며 실무 경험이 전무한 담당자를 무턱대고 사무실에 앉히는 일만이라도 줄어든다면, 몇 년간 사서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기안문조차 작성해보지 못했다는 후배의 하소연 같은 일은 적어지지 않을까. 

시티 도서관 사서선생님들과의 뜻깊은 대화를 뒤로하고, 빗속을 뚫고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케언즈는 내게 별안간 길을 가다가 여중생(부정하고 싶지만 초등학생일지도 모르는)에게 인종차별을 겪었던 도시이기도 하지만 그와 반대로 친절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호감을 보이며 친근하게 마을 거는 분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도시이기도 하였다. 구경 차 들어갔던 악기 전문점에서 원주민들의 전통악기를 체험해볼 수도 있었고, 신호등을 기다리며 말을 거는 분과 이 도시를 방문한 소감이 어떠한지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다 보니 어느새 미술관에 도착하였다.


내가 관람한 것은 행복한 왕자로 유명한 동화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나이팅게일과 장미'를 호주의 유명 예술가인 델 캐슬린 바튼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회였다. 원작의 동화 내용을 얼추 알고 있었어도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하는 덕에 작가의 설명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2차 창작물이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그녀의 작품이 실로 놀라웠다. 원작 동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철학을 공부하는 어떤 학생이 교수의 딸에게 연정을 품고 무도회에 동행할 것을 제안하자, 그녀는 붉은 장미꽃을 구해오면 같이 가겠다고 한다. 붉은 장미를 구할 방법이 없어 슬퍼하는 학생의 눈물을 본 나이팅게일은 학생의 순수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우려고 밤새 붉은 장미를 구하러 다닌다. 결국 학생 집의 정원에서 붉은 장미꽃을 피우는 장미나무를 찾아냈지만, 그 장미나무는 나이팅게일의 붉은 피가 있어야만 붉은 장미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순수한 사랑을 위해서 보잘것없는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나이팅게일은 밤새 피 흘리고 노래하여 붉은 장미를 피워 낸 후 숨을 거둔다.


다음날 학생은 창밖에서 기적의 붉은 장미를 찾아내고는 들뜬 마음으로 교수의 딸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미 고관대작의 조카로부터 보석을 선물 받은 그녀는 가난한 학생의 구애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학생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한탄하며 구석방으로 돌아와 먼지 쌓인 두꺼운 철학 책을 꺼내 읽는다.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아일랜드 문학, 2013. 11., 최지연, 이동일, 위키미디어 커먼즈



원작 동화와는 다르게 델 캐슬린 바튼의 나이팅게일은 작은 새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인격체로 표현되었다. 그녀의 작품에서 나이팅게일의 가슴이 사람의 유방으로 묘사된 것과 나이팅게일이 붉은 장미를 얻고자 흰 장미에게 희생당할 시 마치 남녀 간의 성관계가 연상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렇기에 원작의 허무한 결말이 더욱이 처연하게 느껴지는데, 마치 물거품이 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보는 듯하였다. 사랑을 위해서 희생한 나이팅게일과 그런 그녀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못한 철학도의 사랑은 마치 물거품으로 사라진 인어공주의 결말과도 같다. 서정적인 그림체와는 다르게, 델 캐슬린 바튼의 그림들은 다소 현실적이면서 기괴하다고까지 느껴지는데, 그러한 그녀의 그림들로 하여금 나이팅게일의 희생이 더욱이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마치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본떠 만든 스위스 영화 '인어와 함께 춤을' 이 기괴하고도 아름다우며 잔혹하게 슬픈 것처럼.


휴양의 도시인 케언즈에서 그럴싸한 일행도 없는 채로 빗속에서 시티 투어를 마친 나는, 분명 이 도시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행객이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는 는 유러피안들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도 어울릴지 못했고 호스텔 안에서 줄곧 혼자 지내며, 어떤 무리에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나 혼자 하는 여행이 이토록 외로운 것인가를 절감하던 이 도시에서 나만의 관광을 마치며 카페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니, 매번 내가 여행을 혼자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떨어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가만히 쉴 수 있는 편안함이, 내가 가고 싶은 장소만 골라가며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과감하게 생략할 수 있는 자유는 오로지 홀로 여행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소중한 특권이므로.

이전 11화 2018.3.21 / 영화 '아바타'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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