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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ug 06. 2019

나의 독서 모임 가이드 - 2.

모임에 만족감을 주기 위한 원칙, 모임의 형태.

사진: Photo by Sanjeevan SatheesKumar on Unsplash


※ 「나의 독서 모임 가이드」는 7~8년 동안 여러 독서 모임을 만들고 운영해본 토대로 작성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며, 절대적인 원칙이 아닙니다. 좋은 독서 모임을 위하여 고민하고 작성한 것이지만, 모임을 만드실 분은 그저 참고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글은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임이나 오로지 개인 소유물로 여기는 모임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독서 모임의 일반적인 형태를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모임에 만족감을 주기 위한 원칙


첫째, 될 수 있으면 감정이 상할만한 논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논쟁은 사전에 합의되지 않았으며, 토론의 주제에 벗어나 쓸데없이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독서 모임은 그 성격상 때로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상적 신념 등은 논쟁을 통해 탄탄한 힘을 얻기도 한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나오는 세템브리니는 「표현 방식의 순진함보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하는 태도와 악마와 타협하려는 경향이다.」라고 했지만, 모든 사람이 논쟁에 훈련되거나 익숙한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독서 모임은 토론을 위한 공간이지 상대방을 공격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논쟁의 공간은 아니다. 서로의 생각과 견해를 공유하여 더 나은 생각으로 발전시키는 공간이다. 이러한 논쟁이 되어 버리면 승리자는 만족할지 몰라도 모임의 구성원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논쟁이 일어날 것 같다 싶으면 운영자나 혹은 모임을 진행하는 발제자는 화제를 정리하거나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두어서 논쟁을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 혹은 논쟁적 질문이 있다면 사전에 사회자는 논쟁 당사자 간의 견해를 충분히 이해하여 쓸데없는 감정싸움이 나지 않도록 만반을 기해야 한다.

둘째, 단지 몇 사람만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모임에서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혹은 의견을 강하게 보일 때, 단지 몇몇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주도적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러면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전에 묵살당하거나 혹은 현란한 말솜씨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러한 주장을 배우러 온 것이라면 괜찮겠지만,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모임에서 한두 사람이 주도하면, 남아 있는 사람은 들러리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들이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이들은 말주변이 없을 뿐이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사회자는 질문의 형태를 바꾸어 자신이 던진 질문의 의도를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 나는 이런 때에, 자신이 책에 나온 이러한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를 물어본다. 가령,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고 추상적으로 묻지 말고 「당신이 민주주의를 경험하거나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느낀 때는 언제입니까?」 등으로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질문을 받는 답변자는 그 질문에 자신의 경험을 말할 것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왜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는지를 물어본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답변할 수 있게 된다. 모임에서 선정한 책이나 책 안의 구절에 관련된 개인의 경험을 물어보는 것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 개인의 경험이나 느낌을 통해 책이 전하는 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심도 있게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재미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모임은 재미있어야 한다. 물론 이 재미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그러한 재미는 아니다. 모임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을 충족해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이다. 어떤 사람은 지적인 자극을 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대화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를 원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친목 속에서 위안을 얻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지적인 희열이든, 공감대의 형성이든, 혹은 위안이든 간에 이러한 것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다면 그들은 계속 모임에 참여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독서 모임의 기본 목적과 원칙을 지키는 데에 따른 재미여야 한다. 독서 모임은 독서와 토론이라는 목적이 앞서야 하지, 결코 친목이 앞서서는 안 된다.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의 표정에서 만족감을 읽을 수 있다면, 그 모임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모임의 형태가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모임의 형태


첫 번째 독서 모임은 한 권의 책을 선정해서 읽어오고 정해진 날에 모여서 발제를 바탕으로 토론하는 모임이다. 이때 책의 선정은 모임 구성원을 고려해서 내부 토론을 통해 선정하기도 하고 내부나 외부 추천 도서를 바탕으로 선정하기도 한다. 혹은 운영자가 독서에 관하여 충분히 전문가로 인정될 때에는 독단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모임을 진행해오면서 느낀 바는 참여자들이 대체로 책을 지정해서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이다. 물론 자기가 모임을 주도할 때에는 어떤 책을 선정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모임의 운영자가 여러 책을 선정하면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만약 독단으로 책을 선정할 때에는 사람들이 받아들일만한 이유를 들어주면 좋다.

대체로 독서 모임에 오는 구성원들은 대학생이거나 혹은 직장인, 주부 등일 것이다. 그래서 전문서가 아닌 이상에 사실 어떤 책을 선정하든 책 자체의 수준에 대해서는 크게 무리 없이 선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직장인이 많을 때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없을 수 있고, 대학생은 시험 기간이 겹치면 틈틈이 책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주부도 어린아이를 키우면서는 두꺼운 책을 보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금 어려운 고전이나 철학만을 대상으로 읽는 모임이나 인문학을 깊게 학습하고자 하는 등의 특별한 목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다면, 책을 고를 때에는 구성원들이 제한된 기간 내에 충분히 읽을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 모임의 형태로는 묵독 모임이 있다. '묵독'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특정 시간을 잡아서 자신이 읽기 원하는 책을 가져와서 책을 읽고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각자 다른 취향의 독서 욕구를 만족하게 할 방안이나 묵독 이후 심도 있는 토론을 위해서는 운영자의 능력이나 자질이 중요하다.

세 번째 모임은 낭독 모임이다. 여기서 말하는 낭독 모임은 단순히 '읽는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책을 돌아가면서 읽고 단락별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혹은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강독의 형식과는 달리 자유로운 토론에 가까우며 첫 번째 모임의 심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책이 두께가 있으면 이렇게 토론을 진행할 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그래서 매일 또는 격일로 할 수 있는 모임으로 적합하다.

낭독 모임은 어떤 책을 선정하느냐 혹은 진행자의 스타일이 어떠냐에 따라 모임이 전혀 달라질 수 있는데, 경험을 토대로 말하면, 하나의 단락을 읽고 그 안에서 질문을 생각해 내어 던지는 식으로 했다. 이런 방식은 진행자의 능력과 순발력이 중요하다. 이 방식은 인문이나 사회학 서적 등을 진행하면서 해왔던 방식이며, 시 낭독 모임과 같이 그저 천천히 소리 내 다 읽고 그 느낌이나 감상만을 이야기하는 방법도 있다.

네 번째 모임은 강독 모임이다. 이 모임은 고전이나 혹은 특정 책에 대하여 강독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풀이하는 일종의 수업에 가까운 모임이다. 동아리에서는 인문 고전 강의를 진행하면서 관련 강의를 함께 듣거나 혹은 해당 강의로 훈련을 받은 선배 또는 관련 계통의 지식인이 강독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다섯 번째 모임은 요약 발표 모임이다. 특정한 분야의 두꺼운 도서를 하기에 적합한 모임으로 여러 챕터를 분할하여 모임의 발표 준비를 해오는 것이다. 이 자체로도 좋지만, 세 번째 모임의 형태에서 두꺼운 책을 특정 기간 안에 끝내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부족하면 시도할 수 있는 모임이기도 하다. 진행자의 스타일에 따라 진행자가 모두 요약을 하여 모임을 진행할 수도 있고 각자에게 요청하고 발표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구성원들에게 모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려면 두 번째 방식이 좋다.

여섯 번째 모임은 연구 모임이다. 다섯 번째 모임과 비슷한 형태이나 단순히 요약하고 그것을 토대로 모임을 진행하는 방식보다 심화한 방식이다. 각자 책에 주제를 바탕으로 그와 관련된 것을 조사해오거나 소개하는 모임이다. 가령, 미술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그래피티를 주제로 발표한다든지, 함께 특정 사조의 미술 작품을 만들어본다든지 하는 모임이다.

일곱 번째 모임은 시청각 중심의 모임이다. 낭독 모임처럼 특정 책을 바탕으로 하거나 요약된 것을 빠르게 읽고 시청각 자료를 보는 모임으로 미술이나 영화 모임 등에 적합하다.

여덟 번째 모임은 원서를 읽는 모임이다. 이 방식은 참여자들의 능력에 따라 그저 원서를 낭독하거나 토론을 진행할 수도 있다.

아홉 번째 모임은 무작위 토론 모임이다. 각자 자신이 읽은 책을 가지고 와서 소개하고 그에 대해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자의 지적 능력이 크게 요구된다. 두 번째 모임인 묵독 모임과 함께 엮어서 진행할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여러 모임의 독서 모임의 형태가 있을 수 있으나 아마도 다음과 같은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 시기적으로 본다면 특정일에만 하는 모임과 매일 진행하는 모임, 여러 날 중에 선택할 수 있는 모임.
ⓑ 한 권의 책으로 모임을 진행하느냐, 서로 다른 책으로 모임을 진행하느냐에 따른 모임.
ⓒ 한 권의 책으로 긴 기간에 진행되는 모임, 1회 1권으로 규정되는 모임.
ⓓ 토론 방식의 모임과 수업 방식의 모임, 연구-발표 모임.
ⓔ 독서를 기준으로 본다면, 전체 혹은 특정 챕터를 읽고 와서 토론하는 모임과 한자리에서 같이 읽고 토론하는 모임.
ⓕ 모임의 진행자가 전부 다 진행을 도맡는 모임, 구성원들끼리 나누어서 모임의 진행을 맡는 모임.
ⓖ 발췌나 발제 등의 준비된 자료가 있는 모임,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임.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모임의 아홉 가지 형태에 따라 실제로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지를 알아보겠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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