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사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문제 설정을 다르게 할 수 있다. 프레임이 이따금 무서운 까닭은 사실 관계의 총체적 인식보다는 어떤 목적이나 이익 등을 위해 사실을 가공한다는 데에 있다. 그렇게 가공되고 재단된 사실은 조리된 음식처럼 섭취하기 쉬우며 때로는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진실은 사실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므로 복잡하고 어렵다. 일어난 사건에 관하여 대개 완벽한 진실이란 없으며 삼자로서는 최대한의 사실로서의 단서를 모아 전체를 재구성할 수만 있을 뿐이다.
진실과 날것으로의 사실, 가공되고 해석된 사실 속에서 많은 경우 독자는 목적에 따라 요리사인 저자에 의해 가공되고 해석된 사실을 접한다. 그리고 그 요리가 잘 만들어졌다고 느끼면 그 요리를 다른 비슷한 요리보다 높게 평가하며 때로는 그 요리사와 요리법을 지지하기도 한다.
하나의 가공된 사실만 접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그 사실이 전체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총체적 인식을 위해서 독자는 다른 사실의 존재가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같은 사실에 여러 가공된 사실이 있음을 인지하고 사실 사이의 관계와 가공 목적을 추적해나감에 따라 진실이 드러난다.
자신이 받아들인 것만이 사실이며 진실이라고 믿는 까닭 중 하나는 그 언어들이 가진 추상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체가 존재하는 돼지 - 돼지고기 - 소시지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요리사나 요리방법처럼 '사실과 진실'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이 직접 만져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실체가 된다면, 소시지로 가공된 사실만을 보고 그것만이 돼지고기 전체로서의 사실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소시지 가공에 필요한 날것의 돼지고기로서의 사실이 결코 돼지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도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요리에도 다양한 요리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여 하나의 맛이 아닌 다양한 요리사와 요리법으로부터 돼지고기의 다양한 맛을 느껴보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뭉뚱그려 말하는 "사실"이라는 단어는 '가공된 사실'과 '날것의 사실' 구분을 흐리게 하고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는 말인 진실도 사실과 그 언어의 유사성 때문에 그 구분을 돼지고기보다 혼란스럽게 한다.
다른 까닭은 진실을 알아보고자 노력하지 않는 데에 있다. 마치 하나의 요리만을 섭취하고는 배가 차면 더는 섭취하지 않는 것처럼 피곤함과 귀찮음은 더는 '생각하기'를 중단하도록 종용한다. 우리 사회에 토론이 필요한 까닭은 하나의 사실에 따른 여러 가공된 사실과 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교류함으로써 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 총체적 인식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2명 이상의 토론을 한다는 것은 혼자서 사실 파악을 할 때 느낄 수 있는 피곤함과 귀찮음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며 이를 통해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방법이다.
지난 날, 새벽에 겪었던 일이 떠올라 그들이 어떻게 처리를 했을지 궁금했다. 사건은 축제 기간에 독서 모임이 끝난 뒤, 동아리방에서 술을 마신 한 여성이 비교적 멀쩡하게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상태로 잠들면서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동료는 문이 잠긴 화장실에서 만취 상태로 잠든 그녀를 발견했고 잠겨 있는 문을 그들 힘으로는 열 수 없겠다 싶어 119에 신고했다. 그러나 오기 전에 이미 화장실 문을 열었고 119에 다시 연락하여 신고를 취소하려 했지만 이미 해당 장소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리고 뒤이어 만취 상태의 인사불성인 그녀에 대한 후속 조치로 보호자인 부모님의 요구에 따라 병원까지 이송한 것이 사건의 경위였다.
여기에서 문제가 있다면 동아리방에서 음주한 건데, 축제 기간이라는 점과 암묵적이며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상참작 내지는 규정에 따른 경고 조치를 하면 그만이었다. 과거의 문제로 말미암아 방범 장치를 설치한 이후 발생한 최초의 사건이기에 (나와 통화했던 교직원의 말처럼,) 시범으로 강하게 처벌하는 건 어불성설이고 그 처벌에 관한 마땅한 근거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하여 신고를 한 것은 잘한 일일 수도 있는데, 이 상황에서 분별에 맞지 않는 과도한 처벌이 이루어지면 여러 동아리방에서 암묵적으로 음주가 행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의 무마를 위해 은폐할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이에 관한 처벌 규정이 엄연히 있는 상황에서 그 이상을 처벌을 고려하는 것은 관리자로서 정당한 판단은 아니다. 특히나 동아리를 대표하는 연합회는 학교를 대변하는 기구가 아닌 동아리를 대변하는 기구이며 사건의 정황에 대해 정당하게 파악하여 자치기구로서 관련 규정에 맞게 정당한 판단을 내리면 되는 일이었다. 사건의 경중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아리 연합회의 회장과 임원진의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나아가 조직 전체를 불신하게 된다.
이들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파악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고려하고 있는 처벌의 수위에 대해 전해 들었을 때에는 결코 온당하지 못한 생각이 들었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까지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관리자 급의 입에서 한 동아리를 폐부나 가등록의 상태로까지 강등을 고려한다는 것은 어디를 찾아봐도 관련 규정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불법적인 모임이 아니며 사회적 물의에 따르지도 않은 일이기에 그런 말을 꺼낸다는 것은 대표자나 관리자로서도 불성실하며 다른 조직에 위협을 줄 수 있는 행위이다. 물론 이들이 잘못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사건을 보고받은 대표는 판단 이전에 사건을 바로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해프닝에 관하여 한편으로는 이번을 계기로 지금의 모임이 어떻게든 변화하기를 바라며 원칙을 세워 지켜나가길 바랐다. 이 사건이 원칙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단순히 동아리 방을 몇몇 이들의 쉼터로 여기는 것의 반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당 공간은 엄연히 독서를 목적으로 존재하며 회원 간의 토론과 교류를 위한 것이 제1의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여 친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원칙에 대한 인지와 믿음은 지금과 같은 범위까지의 일을 만들지 않는 암묵적인 규약이 된다.
이들에게 서글픈 것은 모임을 만들고서 혹은 이후 새롭게 시작하고 나서 우리가 정성스럽게 만든 수많은 원칙을 너무도 쉽게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귀찮으니까, 안 지켜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으니까, 눈앞에 이익 때문에 사소한 원칙들을 그것을 가장 앞장서서 지켜야 할 관리자들이 무너뜨린다. 이러한 상황이 악화되면 더 심각한 것은 그 원칙들을 만든 배경이나 가치가 이어지지 않게 되며 그다음 세대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조차 모르게 된다. 물론 짧게라도 시대가 변하면 원칙이나 그에 따른 행동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바뀐 원칙과 행동에는 그에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그 집단 전체를 대표하는 가치관에 들어맞는 것이라야 한다. 그 과정 중에 구성원 전체의 합의를 위한 숙의와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
원칙들은 하나의 집단이 이룩할 가치를 위해 존재하며 위기를 맞이하거나 급격한 전환을 맞을 때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본질서가 된다. 그래서 원칙을 세우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대체로 전통이라 한다. 모임과 토론을 위한 원칙, 공간을 위한 원칙, 회비나 회원 등의 관리를 위한 원칙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회원들이 이를 숙지하고 계승할 때 모임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지금의 이 일이 이들이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모임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매 순간, 모임에 관련된 모든 것에서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명분이며 원칙이다. 그게 없거나 스스로 무너뜨리는 집단은 결국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