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나의 일상 여행기. (54)

by Chris
그림: Self-Portrait with Vanitas Symbols, 데이비드 베일리(David Bailly) c. 1651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살다 보면 내가 원치 않은 일 혹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조차 떠맡기도 한다. 누구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며, 전혀 거부할 수 없을 때 숙명이나 천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건 내 의지 바깥의 무언가, 어떤 존재 혹은 환경의 불가사의한 힘을 느낄 때 이런 말을 한다. 그중에서 운명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것이며 그 상황에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즉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에서 진인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운명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에 대한 부분이라면 그 최선의 경계지점이 바로 숙명이다. 한계를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천명은 그 경계를 포함한 내가 어쩌지 못하는 그 경계 밖의 모든 것들이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같다. 진정 사랑하면 그 상대를 알고자 노력하게 된다.

나는 내 운명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내 운명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이 길을 걷는 것도 운명인가? 운명이라는 말은 결국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에 의미를 남기는 최선의 노력인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여기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그렇게 해야 하는가?

운명이라는 말에 담긴 추상성에 현기증을 느낀다. 물이 강에서 바다로,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려 갈 때 그 흐름이 운명이라면 그 안을 헤엄치는 나라는 존재는 내 삶의 목적과 의미에 따라 가장 빠른 길을 택할 수도 혹은 다른 의미를 찾아 지그재그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가장 빠른 길로 가다가 눈앞의 바위를 못 보고 부딪힐 수도 있으며 낭떠러지의 폭포를 지나야만 할 수도 있다. 얕은 물가로 가다가 곰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삶의 여러 선택의 폭 안에 있으며 저마다 생각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고 받아들이느냐 달렸다. 그리고 그 선택한 길 위에서 살아남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언제나 죽을 수 있음을 생각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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