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산파 역할을 하는 것 / 에티켓의 문화 차이

나의 일상 여행기. (52)

by Chris
그림: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데칼코마니〉, 캔버스에 유채, 81×100cm, 1966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어김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맞이한다. 그 어느 때보다 단조로운 삶이지만 평온함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나마 제일 바쁜 거라곤 아침에 제시간에 스터디룸에 도착하려고 종종 걸음을 하는 것뿐이며 그 외에 뛸 일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삶이다. 행복해지려면 타인과 지나치게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카뮈의 말처럼 많은 관계들에 목을 매지 않으니 그로 말미암은 스트레스는 찾아볼 수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며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그럼에도, 나태해지지 않고 성취하고 싶은 일들은 시간을 정해 꾸준히 한다. 그러한 일들 가운데 제일은 지금 쓰는 바로 이 글이다. 매일 빠지지 않고 쓰는 이 글들은 내게 반복되는 삶이 그 의미조차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관계로부터 분산되던 시간과 그에 따른 에너지를 중요한 것들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도 좋은 일이다. 인생에 중요한 것들만이 남고 빈 시간마저도 나를 위해 쓰는 느낌이다. 아직은 공기 중에 소란스러움보다 정적이 더 많은 아침 7시이다. 이 순간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무슨 책을 볼까 하다가 전자책 리스트에서 오래전에 구매해둔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열었다. 책의 첫 표지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닮아 초현실주의적이다. 하긴 아내를 모자로 인식한다는 말 자체도 초현실적이지. 그림과 제목을 보며 전날에 들었던 상윤의 꿈 이야기가 떠오른다. 꿈은 현실의 것들을 초현실적인 것들로 바꾸기도 한다. 아내는 모자로 바뀌며 사물이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꿈, 현실에서는 있을 법한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그것이 두뇌의 문제로 잘못 인식하게 되는 실제 사례를 뇌과학, 신경심리학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실제 존재하는 것을 두뇌의 이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모자처럼 잘못 인식하게 되는 사례들이 나온다. 이들은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니다. 하물며 그러한 인지에 문제가 있음에도 비교적 사회생활을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고작 한 챕터 정도 보고 내린 결론이지만, 이 책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과연 실체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을 문학적으로 전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사물이 두뇌에서 추상화작용을 거쳐 사물로 인식하게 되는데 두뇌가 오류를 일으켜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는 게 흥미로웠다. 눈이나 코와 같은 감각기관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아내가 모자로 둔갑하고 커피잔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녀의 특징을 인식할 때나 커피의 냄새를 맡고 나서야 그것들은 본연의 실체로 인식된다.

이러한 과정을 읽고 있노라면 고흐나 클로드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에 대한 이야기와 환각제를 복용한 예술가의 일화가 떠오른다. 언급한 바의 공통점은 대상의 인식에 따른 오류를 예술로 승화한 경우이며 차이점은 위에서 언급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시각기관의 이상이 그림에 반영되었고 후자는 시각기관은 이상이 없었으나 마약으로 두뇌의 인지 기능이 추상화된 경우이다. 고흐가 노란색을 주로 쓰게 된 까닭은 색맹이었기 때문이며 모네는 백내장 때문에 사물을 흐리게 보게 됨에 따라 화풍에도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한다.

후자는 초현실주의나 추상화적 이미지를 얻으려고 환각제를 복용했다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것은 시각기관의 이상보다 두뇌의 인식 오류를 활용한 경우이다. 물론 감각기관의 오류이든 인식의 오류이든 그것으로 그 예술의 가치를 헐뜯기에는 그 자체가 가진 예술적 의미가 크므로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또한, 해당 그림의 사조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장애나 약물을 이용한 것 또한 아니다. 물론 이들이 자신만의 장애나 결핍 혹은 시각적 오류를 바탕으로 하여 남다른 스타일을 완성하게 된 것은 예술가를 지망하는 이들이나 예술로 명성을 쌓고자 하는 이에게는 부러운 일일 것이다. 또한, 이를 예술가적 기질이나 천재성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이후에도 부단히 노력해야 경지에 오른 것을 이들은 이미 아무런 노력 없이 얻게 된 것이라면 자괴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영역이 그렇듯 사람마다 출발선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이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까닭은 그들의 천재성에 더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력 없이 천재성만으로 얻은 것은 아니며 자신의 영역에서는 그 누구보다 부단히 노력한 자이다. 그래서 이들이 타고난 재능이나 결핍으로 그러한 예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 이들의 결핍과 행동은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케 하는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리고 스타일이 있다고 해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문득 오래전에 푸코의 '감시와 처벌'로 매일 아침 독서 모임을 하던 때에 한 친구가 그의 남다른 통찰과 시각이 그의 동성애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여기고 그의 결핍이 부럽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의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서 자신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를 연구하면서 광인에 대한 사회사적 인식과 비정상에 대한 폭력을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책이 그의 논문이기도 한 '광기의 역사'이다. 그는 아마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태생적 비정상 혹은 결핍이 부럽다고 했을 것이다. 더구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 없이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으니 오죽했겠는가? 동성애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친구는 사실 은폐된 모든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그의 광기를 부러워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수십만 명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동성애자 중에서 광기의 역사를 쓴 천재(?) 작가는 오로지 푸코뿐이다. 그러한 결핍이 커다란 그런 책을 쓰게 되는 큰 변수가 될 수 있음은 인정하나 마찬가지로 필요조건일 수는 없다. 세상에는 푸코와 같은 존재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은 인식의 영역을 개척하거나 그의 책만큼이나 세상의 인식을 바꾼 책들은 수없이 많다.

문득 얼마 전에 잠시 읽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법'에서 그가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이 떠올랐다. 그는 푸코와 같은 동성애자도 아니었고 자신의 직접적이고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당시 우연히 헌책 손수레 가게에서 발견한, 1887년에 발레Vallet 수사라는 사람이 쓴 별로 독창적이지 않은 소책자에서 자신의 까다로운 이론적 문제를 해결해 줄 결정적인 생각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20년 후에 다시 찾아본 그 <마법의 열쇠>에는 자신의 생각을 열어준 이론적 아이디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론은 움베르토 에코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책에 고마움을 표한다. 바로 그 책은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주지 않았더라도 그 생각의 산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책은 그의 정신을 훈련시켰으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생각을 자극했다.

사실 많은 예술가들, 어쩌면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진보를 꿈꾸는 이들은 개인의 결핍이나 장애, 혹은 태생적 능력 등이 자신의 생각을 창조하는 산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발레 수사와 같은 존재를 통하여 아이디어와 통찰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디어는 그 원천이 결핍이든 책이든 혹은 어떤 경험이든 무엇이 되었건 문제를 인식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달렸다. 우리의 사고는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에 탄생하며 그 과정 중에 결핍이나 재능 혹은 우리의 직, 간접 경험 등이 모두 산파의 역할을 할 것이다.




허리가 아직 아파 점심 운동을 거르고 가격 파괴 식당에 갔다. 설거짓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들어가자마자 설거지를 했다. 이모는 처음에는 하지 말라고 하는가 싶더니 내가 막무가내로 하니, 한번 웃더니 다른 손님들의 음식을 만든다. 꽤 많은 설거지를 다 끝낼 무렵 이모가 뭐 먹고 싶으냐고 물어본다. 나는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말하고 이어서 많이 주지 말라는 말을 꼭 뒤에 덧붙인다. 이렇게 말해도 나처럼 막무가내로 많이 줄 게 뻔하므로 한 번 더 신신당부한다.

이런 장면, 서로 간에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마치 인사말처럼 되는 장면을 매번 경험 하노라면, 대학 시절 영어 수업에서 보았던 '조이럭 클럽'이라는 소설의 한 지문이 떠오른다. 얼핏 기억나는 건, 초대받은 손님에게 정성을 다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선 엄마가 "음식 솜씨가 별로라…." 라며 자신을 낮추더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중국인뿐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며 이럴 때 상대방이 "음식이 대단하신데요!" 또는 "아니에요. 정말 맛있겠네요." 등의 답변을 기대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만약 누군가, "정말 그렇네요.", "제 입맛에는 말씀대로 별로네요." 같은 말을 한다면 실제 음식이 그렇더라도 대단히 실례가 되는 말이 된다. 질문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이 기대하는 말을 인사말처럼 해주는 것이다.

"차린 게 없는데….", "누추하지만…." "음식 솜씨가 서툴러서…." 이런 의례 하는 말들 역시 상대에게 솔직한 답변을 구하는 게 아니라, 예의상 하는 말에 가깝다.

서양인들이 볼 땐 지나친 겸손처럼 보이는 말이 우리 문화에 두루 퍼져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 우리를 중시하는 공동체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나의 행동은 언제나 타인의 눈에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 대한 평가와 평판이 되어 기준에 못 미치면 비난마저 받게 된다. 집단적 인식 안에서는 자신이 충분히 잘해도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은 상대적 기준 속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자신을 낮추게 된다.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 "잘은 못하지만…."으로 운을 띄우는 까닭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상대에게 잘한다는 인정을 받기를 원하며 그렇지 못하면 무례하다 여기거나 결투를 신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동체 문화가 그런 일종의 대화의 에티켓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물론 밥집 이모의 경우처럼 말려도 밥을 산더미처럼 주는 것이나 내가 설거지를 하는 것은 이모로서는 정의 표현이고 나는 감사함의 표현이다. 내가 말리는 까닭은 실제로 배가 부르기도 하거니와 미안함의 표현이며 이모도 역시 미안함의 표현일 것이다. 겉으로 표현되는 말과 행동과 실제 의미하는 바가 다른 것이다. 마치 조이럭 클럽에서 "차린 것은 없지만," 혹은 "솜씨가 서툴러서"의 말 뒤에는 실제로 그러하다는 의미가 아닌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예의로서 하는 말을 듣기를 원한다는 의미를 담는 것처럼. 그래서 내가 진짜 배부를 때에는 온 표정과 얼굴마저도 이용해서 당신의 정은 알고 있으며 조금만 달라고 신신당부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 가득 주면 매번 난, 음식에 따른 내 가치관에 의해 배불러도 다 먹게 된다. 이러한 내 사후 행동이 내 사전 표현의 오류를 만들고 또한 강화한다.

언어와 행동에 담긴 진의를 이해하는 것, 언어나 문화의 기호학적 접근법은 상당히 재미있다. 이는 그 자체의 의미나 기원을 추적해 나감에 따라 그 사회의 구조나 문화가 가지는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김치찌개를 배부르게 먹고 집에 들어가 빨래를 돌리고 침대에 잠시 누웠다. 육신의 포만감과 침대의 포근함, 그리고 정신의 피곤함이 잠을 솔솔 불렀다. 그 잠의 덫에 어김없이 걸리고 1시간 이상을 내리, 자고 말았다. 마치 수음을 한 직후 어김없이 밀려오는 후회감처럼 두 시간을 기약 없이 잠든 자신에게 후회감이 밀려왔다. 아직 빨래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으나 이곳에 계속 있으면 저 세탁기 소리는 세이렌의 소리가 되어 나를 괴롭힐 게 분명했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두드리고 짐을 가지고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그 어디라도 여기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으며 그 일을 마치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러려면 반드시 깨어 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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