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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Oct 03. 2017

벨로오리존치의 삶들.

여덟 번째 이야기. 벨로오리존치(Belo Horiozonte)

 사실 벨로오리존치는 배낭여행자들의 선택을 받는 도시는 아니다. 브라질의 다른 도시와 다르게 시민들이 편히 쉴 자연공간이 적기 때문에, 시민들 대부분은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에 벨로오리존치는 브라질에서 인구 대비 펍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벨로오리존치를 선택한 것은 해인이 때문이었다. 지난 여행에서 해인이와 인연을 맺은 친구들이 벨로오리존치에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 현지인의 삶을 더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었다.      

벨로오리존치의 폴댄스 공연장. 늦은 시간에도 클럽은 꽉찼다.

1.

 벨로오리존치에서 보낸 열흘 동안 우리의 일과를 책임진 사람은 하파엘이었다. 그는 벨로오리존치의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었는데 철부지 기질이 다분한 장난꾸러기였다. 마침 학기가 끝나 있었기 때문에 하파엘은 자신의 차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벨로오리존치의 구석구석을 구경시켜주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전공인 지리와 관련된 곳에 가면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로 설명해주었는데, 그럴 때면 하파엘이 선생님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펍을 너무 좋아하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자주 정신을 놓았지만, 가는 술집마다 자기가 가르쳤던 학생들과 인사하며 자랑스러워하는 하파엘이었다.       

2.

 코토네츠는 벨로오리존치의 문화공간 NECUP을 꾸려나가고 있는 문화기획자다. 삼바, 재즈, 타악공연을 기획해 다른 도시의 유명 아티스트들을 초청하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센터를 열어 자신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코토네츠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공연 약속을 어기는 아티스트들과 예술가로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해내고 싶은 욕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코토네츠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꿈을 좇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든 모두의 일상은 닮아있다. 때로는 애증이 번지더라도, 일상은 삶의 중심을 잡아주며 스스로를 정돈시켜준다. 잠시 나의 일상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온 나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고 살아야 할 일상이 있다. 막상 그때가 다가와 나를 괴롭히더라도 지금을 기억하면서 버틸 수 있게 된다면 (물론 그렇게 안 되겠지만) 좋겠다고 생각했다.      

NECUP에서 브라질리언 탬버린을 배워봤다.

3. 

 손재주가 좋은 엄친아 로베르토는 집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먹는다. 집에 맥주를 위한 설비를 갖춰놓고 다양한 실험을 하며 자신만의 맛을 찾고 있다. 맥주를 만드는 서적을 읽기 위해 독일어 공부까지 할 정도로 열성적인 그는 언젠가는 자신만의 맥주 브랜드를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로베르토는 주위 친구들도 비교적 여유로웠다. 함께 만난 로베르토의 친구들은 대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었는데 내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자 주말에 있는 친선경기에 나를 초대해주었다. 대학원생들의 소모임 정도라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실력들은 아닐 줄 알았지만, 역시 브라질은 브라질이었다. 해변이든 공원이든 길거리 어디서든 공을 갖고 노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함께 축구를 한 이들도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수긍이 갈 수밖에.

자신이 만든 맥주를 선보이는 로베르토.


 모두를 위아래로 구별하는 버릇을 갖게하는 한국에서 떠나와, 마음 속 일말의 균열없이 서로의 일상을 응원하는 대화를 하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모두가 진심을 다해 우리를 환대해준 벨로오리존치는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편안한 기억을 남겨준 도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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