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정도로 날 측정할 수 있다면 영점일 거다. 어두운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어 상담을 받았을 때 상담사는 내게 버티는 힘이 있다고 했다. 지난한 시절을 버티고 버티어 여기까지 왔노라고. 살아있어 주어 고맙다고 말이다. 울먹이던 표정, 떨리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상담실을 찾았던 이유는 살아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죽고 싶다는 말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앞으로 가더라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제 너무 지쳤다. 고작 이십 대 중반이었다. 살고 싶지 않던 밤을 여러 해 지나 여기까지 왔는데 여전히 모르겠어서 상담을 받았다. 누굴 위해 살아있었던 걸까. 죽는 게 무서워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럼에도 없어지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버티는 힘. 한때는, 아직도 이 문장을 꺼내어본다.
그땐 왜 버텼을까. 다 그만두고 포기해버렸다면 지금 덜 버텨도 됐을지 모른다. 너무 버텨버려서, 너무 이를 악물고 숨죽여 울어서 이제는 조금만 눈물이 나와도, 힘이 들면 쉽게 포기해버리는 내가 싫다. 별것도 아닌 일에 원형탈모가 생기고 취업준비를 하기도 전에 공황장애가 오고 마음이 다칠게 염려되어 시작도 망설인다. 전에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았는지, 어떻게 버텨왔는지 모르겠다. 자칫 인생이 꼬이면 죽어버리면 된다며 끝을 예감하는 방법으로 하루를 산다. 내가 사는 방식은 항상 이랬는데 내게 버티는 힘이 어디에 있단 말이에요. 상담사에게 따지고 싶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난 아무런 버틸 힘도 남지 않았어요. 그게 다예요.라고. 그나마 긴 시간 할애한 미술도 하는 내내 기쁨보단 괴로움이 짙었다. 단지 버티기 위해서, 의지가 약한 사람이 되는 게 싫었다. 되돌아보면 인생 자체가 그냥 견디는 일이었다. 죽지 못해 살았던 10대의 나에게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희망이 더 없어진 느낌. 희망을 실현시킬 힘 따위 모으지 못했다.
요새 나는 하던 일을 끝내려 한다. 글쓰기 수업도, 모임도, 들어야 할 강의 때문이지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알바도 곧 끝날 것이다. 오늘은 글쓰기 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을 주제로 썼더니 이런 유의 글이 나왔다. 무엇이든 버티는 마음으로 살고, 지속하는 힘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작가님은 내 글을 읽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를 위해서라도. 회피하고 싶어서인지, 잘하고 싶은 부담 때문인지 알아야 한다고.
집에 돌아가는 길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난 자신이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누군가와 사귀게 되어도 깊어지면 두렵다. 속으로 들어갈수록 멀어지고 싶다. 인정받지 못할게 두렵다. 내가 인정을 특출 나게 못 받고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인정보단 부정을 강하게 받아들였다는 거다. 아님 그냥 회피 성향일 수도 있다.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나 하기 싫은 일을 끝까지 미루는 사람처럼 말이다. 예전엔 단순히 의지가 약하고 게을러서 금방 지치고, 멘탈이 약해 쉽게 상처 받는다 생각했다. 최근 책을 보고 글을 쓰며 얻은 큰 이익은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상처 받는 마음의 이유를 찾기로 결심했다는 거다. 왜 싫고 왜 지치는지, 내가 정말 포기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글을 쓰며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 했던 작가님의 말이 마음에 맴돈다. 끝을 예감하고 죽음을 가까이했던 삶을 놓아주고 현재를 살 수 있을까. 감정의 뒷면을 살펴보려 한다. 왜 죽고 싶은지. 왜 행복이 그토록 어려운 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