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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Mar 01. 2024

83세 할무니의 첫 강원도 여행

양희은, 악동뮤지션 - 나무

"할머니, 한번도 강원도 가보신 적이 없대"


강원도 가족여행을 앞두고 부모님에게 들은 말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중국, 베트남 등 가족들과 해외여행도 몇번 가보셨던 할머니가 정작 우리나라 윗쪽은 가보신 적이 없다니.

서울에 사는 내게 강원도는 KTX로 두시간이면 가는 가성비 여행지인데, 

한평생 전라남도에 사셨던 할머니에게 강원도는 외국보다도 더 먼 곳이었던 것이다. 


"할머니네 동네 사람들이 강원도 다녀오면 그렇게 자랑을 했대. 그래서 할머니도 이번에 꼭 한번 같이 가보고 싶으시다네"


원래는 부모님과 가기로 계획된 여행이었는데, 여행 전주에 할머니께서 수술을 받으신 후 재활 목적으로 우리집으로 올라와 한동안 같이 계시게 됐다.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가 여행 다녀오는 동안은 근처 삼촌네 집에 계셔도 된다고 권유도 드려봤으나, 이번 기회에 멀디 먼 강원도 꼭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단다. 집 앞 마트를 다녀오는 것도 벅차서 중간 중간 접이식 의자에 앉아 쉬면서 가실 정도로 체력이 안좋으신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엄마는 여행 전날 할머니를 병원으로 데려가 수액도 맞히셨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 끝에 강원도로 향하는 날, 할머니는 창밖을 보며 계속 물어보셨다.


"여기는 어디냐, 여기가 강원도냐?"

"아뇨 아직 남양주, 경기도에요. 막내 00이가 사는 동네가 여기에요"


강원도에 진입하고 도로 양쪽에 산들로 빼곡한 길이 나오니 

"남쪽은 논밭이라도 있지. 여기 사람들은 도대체 뭐해먹고 산다냐" 하시며 신기해하셨다. 


이후로도 할머니는 차에서 종일 물어보셨다. "여기가 어디냐, 여기도 강원도냐?"

부모님께서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지금 여긴 강원도 고성이고요~ 내일은 속초를 갈거예요"라고 답하셔도 

계속해서 물으셨다. "여기가 지금 강원도냐?" 


인생 강원도인만큼 본인이 이곳에 와계신게 신기해서 계속 확인받고 싶어하시는듯 했다. 




부모님만 모시고 가려 해도 큰 책임감이 들었는데, 할머니를 처음 모시고 가려니 나는 더욱 큰 책임감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 여행이 어쩌면 할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강원도 방문이 될 수도 있으니, 최고의 여행을 선사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의 특색을 몽땅 즐기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째날엔 동해바다를, 둘째날엔 설악산을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좌) 화진포해수욕장 (우) 백섬해상전망대


동해를 구경한 첫째 날은 하늘이 구름으로 빼곡히 차 있어 햇살 한 점 바다로 닿지 못하는 날씨였다. 그렇지만 강원도 바다의 매력은 센 바람만큼이나 강하게 몰아치는 파도와 광활한 풍경이었으니, 해가 들지 않아도 멋있었다. 


평생을 아기자기하고 고요한 남쪽 바다만 봐오셨던 할머니는 카리스마 넘치는 동해가 참 멋있다고 좋아하시면서도, 무서워하셨다. 특히 바다 위로 설치된 데크, 백섬해상전망대는 멀찍이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아예 다가가지도 못하셨다. 한편 그날 저녁 숙소에서 TV를 보는데 강원도 사람이 남해는 처음 본다며 동해와 달리 아기자기한 다도해가 참 예쁘다고 감탄하는 장면이 나왔으니, 할머니와 거꾸로인 사람이 딱 나왔다며 우리는 빵 터졌다.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와 같이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점들이 있다.


첫 번째, 할머니께선 나이 들어 사진 찍기 싫다고 하셔도, 뭐 그리 많이 찍냐 여기선 또 뭣허러 찍냐고 하셔도 막상 카메라를 키면 자연스럽게 잘 웃으신다는 거였다. 처음엔 영 어색하셨는지 표정이 굳어 있었지만 점점 부드럽게 풀어졌고 독사진도 잘 찍으셨다. 특히 수줍게 웃으시며 V 포즈를 취하시는 모습이 소녀 마냥 귀여우셨으니 손하트도 알려드릴 걸 싶었다. 


할머니의 독사진


두 번째, 나는 그날 할머니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이 많은 사람들이 듣는다면 이해를 못하겠지만. 나 스스로도 이걸 모른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이었지만, 정말 몰랐다. 고성통일전망대를 가려면 출입국사무소에 들러 대표자 한명이 출입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할머니의 이름을 몰라 머뭇거리고 말았다. 그순간 옆에 아빠만 계셨어서 다행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할머니'라고만 불러봤고, 부모님이 할머니를 부를 때도 '엄마', '장모님' 호칭만 들어봤으니 그 이름 석자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할머니의 성함을 처음 알고 종이에 적어보니, 순간 내게는 단순히 '할머니'였던 존재가 제3자인 한 여자로서 느껴졌다. 할머니의 사적인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지만, 할머니가 걸어오신 그 삶을 괜스레 존중하고 존경해드리고픈 마음이랄까. 최근에 알게 된 김신지 작가도 책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계속 '000씨'라고 호칭하던데, 그 이유도 아마 이런 맥락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여행은 '함께'한 것만으로 의미가 넘친다는 것. 평소 여행갈때 나는 그곳의 날씨가 얼마나 좋을지, 그래서 그곳의 풍경을 얼마나 제대로 볼 수 있을지 등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친구와 여행계획을 잡았다가도 흐림 예보가 있으면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에 떠나고 싶어서 일정을 미룰 정도였다. 이번에도 나는 여행전날 날씨가 흐릴 거라는 걸 미리 확인하곤 '날씨만 좋으면 딱일텐데'라며 아쉬운 기색을 비추었다. 이에 아빠는 '할머니랑 추억을 쌓는 게 중요한 거니깐 날씨는 상관없다'고 강조하셨다. 그 말을 들어서일까, 이번 여행은 좀 다르게 다가왔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어깨동무도 해보고. 할머니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보고. 그런 소소한 경험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장면도 지극히 소소한 것이었다. 설악산 케이블카를 대기하며 근처 카페에 들어가 엄마와 할머니와 일렬로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으니깐. 따스한 햇살이 카페 안으로 스윽 들어오고, 유리창 밖으로는 나뭇잎이 햇볕에 반짝이며 산들산들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요하게 나뭇잎 멍을 때리며, 할머니와 엄마의 나긋나긋한 대화를 들으며 평화로움을 느꼈다. 이 순간은 강원도 여행하며 본 온갖 절경들을 제치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접이식의자에 앉아계신 할머니


네 번째, 할머니는 겉으론 싫다고 막 거부하셔도 사실은 좋아하신다.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걷는 것을 힘들어하셨던 할머니를 위해, 여행 내내 캠핑용 접이식 의자를 들고다니셨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계속 앉히셨다. 주차장에서 해수욕장에 도착해 한번, 해수욕장에서 낮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한번. 뷰 좋은 꼭대기에서도 한번. 내리막길에도 한번. 버스정류장에서 한번. 할머니는 괜찮다고, 뭐하러 귀찮게 그러냐고 괜한 고생하지 말라고 강하게 손사래를 치셨지만, 단체관광버스를 타고 놀러온 아주머니들이 시끌벅적하게 지나가면서 '효자를 두셨다'고 칭찬을 건네니 씨익 웃으셨다.  




짧았던 이틀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로에 차들이 낑긴 채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상황이 세네시간 이어졌다. 차가 막히는 만큼 마음도 막혔던 나는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어 나만 들리게 아주 조그맣게 노래를 틀었다. 아빠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인 이미자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한번 틀어달라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그 제목을 검색해보았다. 그러고 조그맣게 줄였던 볼륨을 최대한 크게 키웠다. 그래도 할머니는 잘 안들리셨는지, 별 반응이 없으셨다. 아빠가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르시자 그제야 할머니도 알아챈 듯 했다. 다같이 하하하 웃으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차 안은 곧 노래방이 되었다. 그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싶었던 나는 내가 아는 유일한 트롯들(미스터트롯에서 들어봤던 노래들)을 급하게 틀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마음이 뻥 뚫릴 때쯤에 꽉 막혔던 도로도 슬슬 뚫렸다. 우리의 노랫소리는 더욱 커졌고, 나는 이 순간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임을 직감했다.


차가 잔뜩 막혀 편도 8시간씩 운전하시면서 단 한번도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은 아빠, 할머니와 종알종알 대화를 나누며 밝게 계셨던 엄마, 그리고 평소와 다른 활동량에 분명 지치셨을 텐데도 좋아하시며 따라와준 할머니. 모두의 덕으로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동네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하실까? 우리나라 최북단인 고성에 가서 북한 바다도 봤다, 너희는 설악산 케이블카 타본 적 있냐고 자랑하실까, 동해 바다가 얼마나 무섭고 거친지 아냐고 하실까, 아니면 너무 자랑만 하기엔 머쓱하니 징허게 고생했다고 다시는 안 간다고 하실까? 어떻든 우리의 추억이 할머니의 기억 속에 부디 오래도록 남기를 바라본다. 




오늘의 노래 
- 양희은, 악동뮤지션 <나무> -
https://bit.ly/48ExPge



난 그의 손을 만질 때
그의 날들을 꽤 오래 엿보았지 
깊게 패인 손금에 
모른척해 온 외로움이 숨어 있었고
이렇게 거칠었는 줄 다시금 알았네

그의 얼굴을 마주할 때 
그의 어린 날들을 비춰보았지
떨어뜨린 입가에 한가득 
지나간 시절을 머금고 있었고 
낡고 오래된 기억을 여전히 견디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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