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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Jul 05. 2023

아름다운 것들은 꼭 우연히 찾아온다

원모어찬스 - 그댈 만나기 위해

나는 라디오를 좋아한다. 특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7080 시대처럼 라디오를 통해서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 각종 음원서비스 어플이 내가 좋아할만한 노래를 잔뜩 추천해줌에도, 내 귀를 차지하는 점유율 1등은 라디오다. 유튜브 뮤직을 이용하고 있긴 하다만, 화면에 온통 내가 최근 들었던 노래와 그와 비슷한 노래들만 떠있는 것이 달갑지 않다. 평소엔 듣지 않던 색다른 노래들을 찾아듣고 싶어도 철저히 내 알고리즘에 맞춘 노래들만 뜰 뿐이다. 그러다보니 마음에 드는 노래가 생겨도 함부로 좋아요를 누르면 안될 것만 같다. 그럼 그것과 유사한 노래들이 갑자기 무리지어 찾아와 내 귓문을 두드릴 테니깐. 


그런데 라디오는 달랐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내가 10년 만에 마주하게 된 추억이기도 했고, 아니면 생전 처음 접하는 것이기도 했다. 노래의 국적이 브라질,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우크라이나 등 다양하기도 했고, 노래의 나이가 부모님보다 지긋하기도 했다. 영화 ET의 웅장한 OST, 관중석들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90년대 콘서트 라이브, 가사 없는 재즈음악 등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엔 제한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게 우연히 닿은 노래들이 그 시간의 분위기, 그 순간 나의 감정과 정확히 맞아 떨어질 때 나는 벙쪘다가 이내 황홀감을 느꼈다. 


빅데이터 시대 속에서 나를 정확히 꿰뚫으려는 알고리즘에 따른 노래, 내가 설정한 조건들에 따라 걸러진 노래들이 흘러나올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음악이 흘러와 귀에 꽂히는 순간은 참 아름다웠다. 우연함이란 그렇게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매일밤 다양한 노래로 황홀함을 선사해주는 나의 최애 라디오, <푸른 밤 옥상달빛입니다>




노래 뿐일까. 사람이든 장소든 우리와 인연을 맺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우연함이란 참 아름답게 작동하는 듯 하다. 예를 들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해 내가 원하는 이성의 조건 옵션들을 쭉 체크하고 그것에 부합한 사람을 대면했을 때보단, 수많은 사람들 속 한 사람이 눈에 띄었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다가가 알아보니 나와 잘 맞을 때, 이게 바로 '운명'이라고 생각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여자주인공이 김종욱을 잊지 못하고 그토록 찾으려 한것도 인도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남자였기 때문이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났더라면 별 감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운좋게도 지금의 연인을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지인들이 소개팅을 통해 외모, 성격, 학벌, 직장 등 조건에 부합한 이성을 만나도 제짝을 쉽사리 찾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내게 우연히 찾아온 그의 존재가 크나큰 기적임을 실감했다.


그리고 여행길에도 어쩌다 발견한 장소에서 큰 감동을 느낄 때가 많았다. 운전하는 길에 잠깐 바라본 창밖 풍경이 그 어떤 '뷰' 명소보다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우들이 있었다. 비오는 날 제주도를 여행할때, 먹구름만이 잔뜩 껴있어 어둡던 하늘에 구름이 조금씩 걷히더니, 내리막길 아래로 푸르른 바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길 옆으로는 억새 잎이 다같이 바람에 흔들리며 시원한 소리를 내고 있었으니, 나는 차에서 내려 그곳의 분위기를 오랫동안 만끽했다. 또 베트남을 여행하던 때엔, 한국인 한 명 없이 현지인들만이 신나게 물놀이하고있는 바닷가를 우연히 발견하곤, 망설임 없이 그 바다로 뛰어가 몇시간동안 풍덩 빠져 놀았던 적도 있다. 계획에 없었던 그곳에서의 물놀이는 베트남에서 했던 것들 중 제일 아련하고 소중하게 남아있는 추억이다. 


이외에도 길을 걷다 더위에 못이겨 우연히 들어간 카페가 인생카페가 되는 일도, 피곤에 찌든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본 시 한편이 작정하고 시집을 찾아 읽었을 때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줄때도 있었다.  




물론 이런 우연의 감동을 기다린다는 건 바쁜 현대사회에서 비효율적인 일일 것이다. 첫 귀에 반할 음악을 찾기 위해 라디오를 듣고, 첫 눈에 반할 사랑과 장소가 나타나길 그저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노래 들을 시간이 적은 상황에선, 빅데이터에 맞춰 내가 그럭저럭 좋아할만한 평균적인 노래를 추천받는 것이 최선일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여유가 없을 땐 몇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그에 부합한 사람을 속전속결로 소개받는 것이 나을테다. 낯선 곳을 다닐 땐 타인의 후기가 없는 장소에 시간을 쓰기보단, 미리 찾고 계획한 곳만 서둘러 발도장을 찍는 게 안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에서 황홀한 감정을 느끼기란, 운명적 만남을 하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나는 우연처럼 다가올 랜덤박스들을 기다리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 비록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림 끝 황홀한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니깐. 그렇게 바쁘고 바쁜 현대사회를 가끔은 역주행하고 싶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올 좋은 것들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 어디든, 늘 가까이 있는 듯 하다.

그러니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눈과 귀를 열고 주변을 슥 둘러봐야겠다.  

그럼 나도 모르는 사이 좋은 노래가 들려오고,  소중한 인연이 찾아오고,  

그렇게 우연히 찾아오는 모든 것들이 캄캄한 길 위의 한줄기 빛이 되어줄테니 말이다.




오늘의 노래
- 원모어찬스 <그댈 만나기 위해> - 
https://youtu.be/2nke87wbAvA



내가 왜 그 학교에 갔을까
그곳에 살았을까
그때 왜 그 버스를 놓쳤을까
왜 비가 내렸을까
그 많은 우연이 내게 왔었던 이유

그댈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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