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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Jun 16. 2023

우리 엄마 밥은 맛없었다

다이나믹듀오 - 어머니의 된장국

지난 주말 오후, 동네 북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만 있던 그 공간에 곧이어 젊은 엄마와 네살쯤 되어보이는 아기가 들어왔다. 간단한 취식이 가능한 곳으로, 엄마는 주섬주섬 먹을만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무얼 꺼내나 궁금했지만 고개를 돌려보진 못하고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으악, 야채 뭐야! 야채가 왜 들어가있어!" 


당황한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며 소곤소곤 말했다. "원래 김밥엔 야채 들어가있어" 

이에 아기는 자신의 입을 막은 엄마의 손틈 사이로 또다시 외쳤다. 


"우리집 김밥엔 야채 없는 걸로 해!" 


피식 웃음이 났다. 야채가 기본 재료인 음식인데 야채를 넣지말라니, 미운네살이란 게 저런걸까. 그런데 사실은 나도 어릴 때 야채를 싫어했던지라,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니 나도 엄마가 싸주던 김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다. 무척이나 싱겁고 삼삼해서였는데 그건 엄마의 요리실력 탓은 아니었다. 당시 내가 몸이 안좋았었기에, 소금간이 돼있는 일반식은 아예 먹지 못하던 탓이었다. 철없던 나는 그 이유를 알면서도 엄마 김밥은 그저 '맛없다'는 단어 하나로 단정 지었었다. 학교에서 소풍을 갔을 때,  간혹 부모님이 싸준 것이 아닌 사온 김밥을 머쓱해하며 꺼내드는 친구가 있으면, 나는 오히려 그를 부러워하며 짭짤한 김밥을 몰래 한두개 주워먹곤 했다.




식단조절을 필수로 해야했던 나 때문에 우리집 밥은 삼삼함 그 자체였다. 밖에서 파는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다고 졸라도, 엄마는 무엇이든지 건강한 자연식으로 변형해주었다. 피자를 먹고싶다 하면, 라이스페이퍼 위에 직접 갈아낸 토마토 소스, 파프리카, 감자, 버섯, 다진 소고기 등이 얹어져 있는 것이 식탁 위로 도착했다. 참으로 조화로운 영양소들의 조합이었다. 엄마표 음식이란 그런 것들이었다. 건강한 변주가 꼭 곁들여 있는 것.   


그후 성인이 되면서 건강을 되찾고, 또 독립하면서 바깥음식을 실컷 먹게 되니, 매 끼니가 축제였다. 집밖 세상엔 맛있는 음식이 어쩜 이리 많은지 감탄하곤 했다. 그런데 불과 몇년이 지났을까. 세상엔 왜이리 음식 종류가 적은지 한탄하며 메뉴를 간신히 고르게 됐다. 특히 코로나 시대엔 더욱 심했다. 배달음식의 선택범위는 더욱 좁아서, 몇 안되는 메뉴들을 두고 머릿속에서 룰렛돌리기를 해야했다. 무얼 먹든 혀끝에 자극적인 조미료 맛이 진하게 남는 건 다 똑같았다. 집밥의 부재에 몸도 제각각으로 반항해댔는데, 다음 날 아침까지 속이 더부룩하기도, 영양 부족으로 눈밑이 떨리기도 했다.


그제서야 간절히 그리워졌다. 담백하고 삼삼한 우리 엄마 밥. 그 어떤 메뉴든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변주된 요리. 온갖 영양이 듬뿍 있어 먹기만 해도 든든해지던 음식들. 봄이면 냉이된장국, 여름이면 콩국수, 가을엔 밤이 들어간 밥, 겨울엔 홍합탕같이 계절별로 다양한 건강식이 꼬박꼬박 올라오던 우리집 식탁. 그리고 그것들은 어쩐지, 종일 나를 감싸고 있는 공기가 무거웠을 때나, 내 방을 어지럽히는 것들을 정리하며 엄마의 부재를 느낄 때 더욱 떠오르곤 했다. 




허나 지금 부모님은 외국에 살고 계시기에, 집밥은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오랜만에 본가에 가니, 요리를 꽤나 잘하는 오빠가 손수 내게 음식을 만들어다 주었다. 파스타는 파스타인데 시금치와 마늘, 그리고 커다란 토마토 조각들이 꽤나 많이 들어가있는 낯선 파스타였다. 오빠는 나의 건강을 위해 영양소를 고루 넣었다며 흐뭇하게 웃어댔다. 철 없던 때라면 누가 파스타를 이렇게 만드냐고 핀잔을 줬겠지만, 그게 엄마가 해준 것만 같아서 그저 고맙게 느껴졌다. 고급 양식집의 파스타만큼 맛있진 않더라도, 나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요리였으니 참 귀했다.



그리고 나는 오빠와 나란히 앉아, 그 특이한 시금치 파스타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엄마가 꼭 뭘 만들든 이렇게 야채 많이 넣잖아" 

"엄마 없으니깐 제대로 된 밥 먹기 힘들다"  

"엄마아빠 얼른 와서 네 명이서 다같이 밥먹으면서 수다떨고 싶다"

"그러게, 우리가족 말 많아서 밤새도록 수다 떨텐데"


우리는 집밥을, 그리고 엄마를, 그리고 네 가족 둘러앉아 식사하다가 밤새도록 수다가 끊이지 않던 날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20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 이런 나의 마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깊어질 마음.

엄마가 만든 김밥을 먹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저 아이에게 이 마음을 전해주고 싶지만 전달될 린 없었다. 

2, 30년은 흘러야 알게 되겠지. 

나는 그저 저 젊은 엄마가 아기에게 편하게 밥을 먹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흐뭇하게 둘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피해줄 뿐이었다. 




오늘의 노래 
- 다이나믹듀오 <어머니의 된장국> -
https://youtu.be/Z615GozIocg


냉장고엔 인스턴트 식품 
혀끝에 남은 조미료 맛이 너무 지겨워 
외로움을 반찬으로 혼자 먹는 밥은 지겨워

그가 간절하게 생각나는 건 바로 
어머니의 된장국 

담백하고 맛있는 그 음식이 그리워 
그때 그 식탁으로 돌아가고픈 

서른이 돼가도 아니 그 후로도 
더더욱 그립기만 하겠죠 
하나뿐인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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