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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Jun 16. 2023

하루에 17시간 공부하면 행복했다

소란 - 행복

최근 유튜브에서 초등학생이 의대에 가고 싶다며 17시간을 공부한다는 사연을 접했다. 처음엔 그 아이가 너무 이른 나이부터 과하게 한다는 생각에, 안쓰러운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사실은 나도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었던 입장으로서, 아마 그 아이도 그렇게 해야만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할 거라 짐작했다. 대개 그 나이 때는 특유의 호르몬이 분출되는 건지, 자신이 얼마나 멋있는 어른이 될지 무제한으로 꿈꾸고, 또 그걸 향해 혜성처럼 돌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 본인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울렁거리는 열정이라든가 짜릿한 성취감은 10대 때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 중 가장 센 자극인듯 하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그 성취감이란 뻐근한 감정이 곧 행복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시험에서 1등이란 목표를 세우고, 밤새워가며 공부해 1등을 거머쥐면 행복했으니깐. 그러면 1년에 최소 4번의 행복을 채울 수 있는 셈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온갖 시험들이 많아지니, 그만큼 성취감을 느낄 기회도 빈번했다. 그리고 내 책상 위에 네임펜으로 적어두며 간절히 꿈꿔왔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내 성취감은, 즉 내 행복도는 인생 최고치에에 도달했다. 마치 마음 속 수백개의 풍선이 부풀어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학창시절 동안 품었던 거대한 미션을 달성하니, 갑자기 크나큰 공백감이 찾아왔다. 마음 속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풍선들이 일제히 터져 밑으로 훅 떨어진 느낌. 나는 이제 어떤 색의, 어떤 모양의 풍선을 새롭게 띄워야 할까... 한동안 일상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없게 되자, 나는 또 다른 강한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무작정 해외로 나가곤 했다. 남미나 중앙아시아 등 낯선 나라 위주로 오랫동안 머무르며, 새로운 자극을 찾아 다녔다. 돌아다니면서 단 한번도 동양인을 마주친 적 없을 정도로 낯선 곳들. 그 곳에서 나는 숨막힐 만큼 아름다운 풍경,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을까 의심하게 되는 신비로운 광경을 보며 엄청난 짜릿함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20대의 나는 해외여행에서 오는 이 벅찬 감정이 바로 행복임을 깨달았다며 유레카를 외쳤다. 


코스타리카의 Jesusita 섬에서 본 밤하늘


이렇게 나는 행복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잘 찾아가고 있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었다. 




취업을 하게 되면서 나의 세계에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내가 그동안 행복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직장인의 삶 속에선 단 한순간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10대의 행복이었던 성취감... 피라미드 조직 속에서 수직적으로 떨어지는 업무를 급하게 해치우기 바빴으니 성취감을 느낄 틈은 없었다. 20대의 행복이었던 해외여행의 두근거림... 퇴사하고 여행유튜버가 되지 않는 한, 몇년에 한번이나 가능한 거였다. 하루하루가 불확실하고 다이나믹한 직장생활이었으니, 국내여행 갈 정도의 연차도 내기 쉽지 않았다.


직장인의 삶엔 정녕 내가 생각한 행복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건지, 나는 깊은 상심에 풍덩 빠져들었고 한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질 못했다. 간신히 잠수할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바닥 끝까지 가라앉진 않았는데, 그건 바로 내게 변함 없이 남아준 행복이 딱 한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오래 만난 연인의 존재였다. 퇴근 후 동네 백반집에서 연인과 고등어를 발라 먹으며, 오늘 하루 무엇이 그리 날 힘들게 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허한 마음이 충만해졌다. 식사 후엔 우리가 좋아하는 발라드를 틀어놓고 따라부르며 밤산책을 하면, 깜깜한 밤길도 참 온화했다. 


한강 밤산책


그의 존재 덕에, 내가 이렇게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밀도 높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단 걸 처음 깨달았다. 그후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차츰 발견해가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습관들로 일상을 하나둘 채워가기 시작했다. 유토피아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은 노래를 들으며 요가에 몰입하기, 옥상달빛의 라디오를 들으며 샤워하기, 노란 조명등을 켜고 재즈 음악을 틀어둔 채 오늘 하루를 기록하기, 책읽어주는남자의 오디오북을 들으며 잠들기...이렇게 일상 속 반복되는 루틴에서 행복이 물씬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이전에 행복이라고 여겼던 것들은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강한 뇌의 자극이었을 뿐, 행복이란 이렇게 매일 잔잔하게 찾아오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성취감이나 여행의 즐거움과 같은 강한 자극들은 한 순간임에도 평생의 기록으로 남을 정도로 참 값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좇으며 살 순 없는 법이고, 설령 그렇게 살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행복이진 않을 것이다. 오로라도 처음 본 찰나의 순간이 제일 아름답지, 한달 내내 본다면 그 감동은 점점 줄어들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상 속의 행복은 내가 매일 반복한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모두가 일상 속 루틴만으로 완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든가, 제각각의 다양한 이유로 마음 속 한 구석에 큰 공백을 갖고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든,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이 방법은 분명 행복으로 나아가는 한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한 일상을 탈출했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 건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누리는 건 모두가 해내는 게 아닌만큼 더 가치 있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러니 머나먼 곳의 행복을 찾겠다며 한참을 억눌린 채로 참지 말고, 

1년에 한두번 큰 각오를 하고 떠나지 말고. 


그저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습관처럼 수집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노래
- 소란 <행복> - 
https://youtu.be/XwKP2K8l4lY


널 생각하면 아무리 바빠도 웃게 돼 
어딘가에 네가 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 

행복이 어떤건지 가끔 생각해 

아마도 이렇게 우리 같이 있는 거 
밥 먹었는지 챙겨주는 거 
이렇게 너를 생각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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