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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Jun 16. 2023

생화와 생화가 아닌 것

코드쿤스트 - 꽃

요즘 부쩍 꽃을 받을 일이 많았다. 내게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한 지 2년도 넘었는데, 친구 A의 졸업식에 갔다가 친구 B 녀석이 A에게 줄 꽃다발을 살 겸 네 것도 샀다며 뒷북의 축하 인사와 함께 오렌지색 장미 꽃들을 내게 건네 주었다. 또 가족이 지인 결혼식에 다녀오면서 소박하게 장미 한송이를 챙겨온 것에 이어, 퇴사하는 직장 동료도 장미꽃을 주고 떠났다. 이렇게 최근 몇일간 갑자기 우리 집에 장미꽃들이 모여 들었다. 


총 일곱 송이. 나는 꽃들을 곱게 감싸고 있는 포장지를 한겹 한겹 벗겨내고, 줄기를 꽉 묶고 있는 철사끈을 풀어낸 후, 입구가 100원짜리 동전만한 생수병에 조심스레 꽃들을 욱여 넣었다. 기껏 꽃들에게 갑갑했을 옷을 벗겨준 후, 좁은 공간에 어떻게든 들어가보라고 밀어 넣는 것이 조금 미안하긴 하다만, 생명이 길지 않은 녀석들의 생기와 향기를 최대한 오래도록 유지시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옆으로 휘어져 있는 꽃들, 뒤로 돌아서있는 꽃들의 자세를 바르게 가다듬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엔 녀석들에게 핸드폰 카메라를 가져다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증명사진 찍듯이 정면에서 꽃의 생김새 그 자체를 정직하게 담았다가, 인생사진 찍듯이 다양한 각도에서 줌아웃도 했다가 줌인도 했다가. 그렇게 사진 수십장을 찍고 결과물을 보니 내 두눈에 보이는 이 생화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은 사진 한 장 없다는 걸 깨닫고. 실물의 아름다움을 그저 내 눈에 온전히 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꽃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꽃들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뒤로 물러나 전체적인 색깔의 조화로움을 감상했다가, 또 현미경으로 보듯 가까이 다가가 꽃잎의 색깔과 결을 오래도록 보았다. 그리고 꽃들에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마쉬며 싱그러운 자연의 향을 희미하게 느꼈다. 그렇게 한참동안 나는 꽃의 모든 것을 음미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내가 생화를 받을 때마다 매번 의식을 치르듯 행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여쁘고 가냘픈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한 데 모여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영 간직하고픈 그 모습이 고작 내게 이틀 정도만 머물다 간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생화보단 오래 두고 간직할 수 있는 비누꽃이나 프리저브드 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날이면 꽃을 선물해주는 연인에게도 그렇게 일러두었다. 미리 언지를 준 덕에, 최근 내 생일에 그는 파란 프리저브드꽃을 준비해 주었다. 


그런데 오늘의 내가 생화 일곱 송이를 최선을 다해 감상하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기껏 요청해서 받았던 프리저브드 꽃다발은 두달전 그 모습 그대로 방 구석에 쳐박혀 있었으며, 나는 지금까지 그 아이를 단 한 번도 음미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어차피 계속 두고 두고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바쁜 일상 속에서 보존화를 실컷 감상할 여유를 굳이 갖지 않았던 것이다. 평일엔 퇴근하고 나면 자기계발에 열중했고, 주말엔 연인과 데이트를 하느라, 긴 연휴엔 본가에 가느라 내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집에 들어오는 그 적은 시간에도 녀석의 존재를 잊은 채 나는 그저 먹고 자고 청소할 뿐이었다. 


생화였다면 그 짧은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어떻게든 꽃에 몰입하는 시간을 가졌을텐데. 정작 고급스럽게 포장된 프리저브드 꽃다발은 한번도 봐주지 않았으면서, 제각각의 루트로 굴러들어온 장미꽃 일곱 송이만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본 나. 프리저브드 녀석은 나를 보며 애절하고 원통하게 <인형의 꿈> 노래 가사를 읊었을지도 모른다. '그댄 먼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날 볼 수 있을 텐데...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대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내 행동의 모순성을 깨닫는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삶이, 내 젊음이 저 프리저브드 꽃처럼 아주 오래오래 두고 볼 수 있을것만 같아서 내 삶에 소홀했던 건 아닐까. 나는 아직 어리니깐, 시간이 많으니깐 좀 헛되게 낭비해도 된다고 자기위안을 하면서. 하지만 우리 모두의 삶엔 분명 끝이 있다. 특히나 젊음은 생화와 같다.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그 순간이 왜이리 빨리 지날까 원통하기만 한 그런 것. 물론 요즘 시대에 청춘이란 단어가 꼭 나이와 직결되는 것도 아니고, 또 도전하는 데 있어서 나이가 무슨 대수냐고들 말한다. 우리는 정말 몇살이 되든 계속 해서 도전하며 반짝이는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의 20대, 건강한 몸을 갖고 책임져야 할 가정도 없는 자유로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한계와 부담이 적을 것이다. 그래서 순식간에 지나갈 소중한 지금을 실컷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되이 보내면 영영 후회할 것만 같은 무서움도 들었다. 


나는 다짐했다. 내가 생화의 짧은 아름다움에 몰입하면서 큰 감동을 얻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 꽃에 대한 예의인 것처럼. 길지 않은 내 삶과 젊음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그렇게 나에 대한 예의를 차려야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의 삶은 영원한 프리저브드꽃이 아닌 짧게 머물다 가는 생화라는 것을. 


ps. 아름다운 것이 짧은 걸까, 짧아서 아름다운 걸까?




오늘의 노래 
- 코드쿤스트 <꽃> - 
https://youtu.be/fMYzJyCNC9E


아름다워 like a flower
Life is like a flower

시작은 함께 flowers
끝도 함께 flowers

이 세상 떠날 때 give me flowers

It's so beautiful but it will fade som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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