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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Jun 16. 2023

나도 긴 생머리 그녀가 되고 싶었다만

자이언티 - 컴플렉스

남자들은 긴생머리의 여자에 로망을 갖는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남자들보다도 훨씬 더 긴생머리에 대한 로망을 품어왔을 것이다. 모태 곱슬머리인 나는 학창시절부터 친구들한테서 해리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 머리란 소리를 들었다. 이왕 곱슬인거 헤르미온느 머리라고 해주면 좋을 것을. 짓궃은 아이들한테선 개털이나 청소솔 같은 단어도 들어봤던 것 같다. 겉으론 그저 웃고 넘겼지만 속은 뜨거웠다. 그렇게 곱슬머리는 내 가장 큰 컴플렉스가 됐다. 


주인의 말은 듣지 않고 제멋대로 휘어있는 머리카락들을 혼내주기 위해 6개월에 한번씩 매직을 했다. 그런데 사실 그건 더 큰 문제였다. 이런 머리는 제대로 쫙쫙 펴줘야 한다며 미용사들은 내 머리카락을 고문했다. 그럼 볼륨 따윈 1도 없이 내 두상에 쫙 달라붙은 머리가 됐는데, 그건 머리카락이라기보단 머리털이었다. 그래서 매직한 날이면 꼭 울었다. 기껏 2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미용실에 갔는데 내가 꺼이꺼이 울고만 있으니, 그 모습을 보는 우리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내가 원한 머리는, 중력을 거스르고 붕 떠 있는 고집스러운 곱슬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상을 있는 그대로 훤히 보여주는 투명한 머리도 아니었다. 그 어떤 구김과 꼬임도 없어 햇빛을 굴절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내는 머리, 가벼운 몸짓에도 찬란하게 휘날리는 머리, 시원한 바람결과 같은 머리를 원했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생때부터 매일 밤 그렇게 될 내 모습을 상상하며 잠들었다. 지금 당장은 못그래도, 10년 후 내가 꼬마가 아닌 어엿한 어른이 됐을 땐 분명 머리가 달라져 있을 거라고...기술적인 발전이 있든, 아니면 어느 순간 내 머리가 회개할 거라고 단단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10년이 지났다. 오랜 나의 상상을 비웃듯, 내 머리는...타버렸다. 미용사가 고문의 강도를 조절하지 못한 탓에 내 머리카락은 제대로 타서 결국 귀 밑까지 잘라내야 했다. 매직한 날이면 꼭 울게 된다는 법칙이 어른이 돼서도 성립할 줄이야. 이를 계기로 내 인생에 매직은 더는 없었다. 생머리에 대한 미련으로 가발을 사서 써보기도 했지만, 언제 이 가발이 벗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누가 알아챌 지도 모른다는 수치심이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혹시 가발이 벗겨질까 몇초 안남은 횡단보도를 힘껏 뛰지도 못했고, 버스 의자에 머리를 편히 기대지도 못하는 지경이었다.


한창 꾸미고 싶은 때가 지나가고, 내 꿈에 몰입하는 시기가 오면서 나는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기 시작했다. 머리에 신경쓸 겨를 없이 2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 새 머리가 많이 길러 있었다. 그동안 내 머리는 매직으로 쫙 피고 탄 부분과 꼬부랑하게 새로 돋아나는 부분이 뒤섞여 있었는데, 이렇게 정수리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온전한 곱슬거림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가만 보니 그 특유의 웨이브가 참 오묘하고 신기했다. 30cm 정도 되는 머리카락 안에 일곱 번 정도의 물결이 들어가 있는데, 그 정도가 일률적이지 않고 조화롭게 높낮이가 다른 머리. 딱 서핑하고 싶은 다채로운 파도결 같았다.  



이제 나는 내 곱슬을 무작정 가리기보단, 적당히 관리하며 뽐내는 길을 택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히피펌을 한 것 마냥 자유롭고 힙해보인다는 반응이었다. 직장 동료들로부터 "퇴근하고 나면 홍대 거리에서 가장 젊고 힙하게 입고 다닐 것 같다", "미드에 나오는 깨발랄한 캐릭터 같다" 라는 말들을 들었을때, 그런 이미지는 내 내면과 정반대였기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친한 여자 직원들은 내 머리가 복슬복슬 강아지 털 같다며 만져보고 싶어하기도 했다. 누구를 만나든 내 머리가 얼마나 독특하고 매력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사람들은 멀리서 내 머리를 보고 나를 인지한다고 했다. 어느 새 곱슬머리는 나의 컴플렉스가 아닌 가장 큰 개성이 되어 있었다. 




최근엔 깔끔해보여야 하는 특별한 날이 있어서, 메이크업샵에 가 오랜만에 머리를 쭉 피게 됐다. 원장님은 잘 펴진 머리에 뿌듯해하며 웃고 있었지만, 내 눈엔 예쁘다기보단 무진장 어색하고 낯설었다. 거울 속의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만의 개성이 사라지고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 된것만 같아 마음이 초조했다. 그 날 나를 본 지인들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내 머리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집에 돌아와 후딱 머리를 감고 다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본 후에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오래도록 컴플렉스라고 느끼던 곱슬머리가 어느새 내게 없어선 안될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어떤 것이든 내 약점이라고 느끼는 것을 그저 없애려 하기보단, 이걸 다르게 바라보고, 잘 관리해 뽐내면 오히려 나만의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까무잡잡한 피부도 운동을 통해 건강한 구릿빛 피부가 될 수 있고, 조그만한 눈도 환하게 웃어보이면 소탈한 눈웃음을 보일수 있다. 혼자 있길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이라면 홀로 사색을 하며 고유한 창작의 세계를 펼칠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집착하고 서러워하기보단, 약점을 강점으로, 컴플렉스를 개성으로 만드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  



요즘 대세 걸그룹인 뉴진스를 보면, 춤동작에 청량하게 흩날리는 생머리가 참 예뻐 보인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시원한 바람결같은 머리를 더는 갈망하지 않는다.


서핑타기 좋은 푸르른 파도 같은 내 머리도 참 마음에 드니깐.




오늘의 노래
- 자이언티 <컴플렉스> -
https://youtu.be/-nKDEk104jw 


키 작고 말라도 괜찮아 뭐 나니까

99 complexes but you can't be me 

컴플렉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돼 

I got no complex, that'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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