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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Mar 10. 2024

마라, 마라, 마라. 별음식 다 있지만 이것만은 꼭.

음식의 글로벌화에 감사하며

몇일 전 오랜만에 만난 대학친구들과 통닭집을 갔다가 그곳의 대표 메뉴라는 '마라통닭'을 먹게 됐다. 마라 소스와 마늘후레이크가 곁들여진 통닭으로, 알싸한 맛과 바삭한 식감의 조합이 완벽했다. 역시 '마라'맛은 실패할 수가 없나보다.


마라의 열풍이 이어진지 벌써 7년째다. 내가 마라를 처음 먹어본 건, 2018년의 봄이었다. 캠퍼스 앞에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생겼다는데, 고 메뉴가 한 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맛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오픈한지 얼마 안됐는데도 대기 줄이 실타래마냥 길게 늘여져 있어 방문하기 두려웠지만, 당시 선배들이 이건 꼭 먹어봐야 한다며 데려간 덕에 맛볼 수 있었다.


소문은 정말 틀리지 않았고, 그날 나는 이 식당을 캠퍼스 주변 1등 맛집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땐 마라 맛이 독특하고 강렬하니 이 열풍이 아주 오래 가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또 한창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만 흥행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은 빗나갔고, 오히려 마라맛으로 변신한 각종 음식(마라떡볶이, 찜닭, 부대찌개 등)들이 탄생하고 있는 시대다. 또 그런 음식을 2030뿐만 아니라 어린이들마저 열광하니 이제 마라는 대한민국에 평생 정착할 듯 하다.  


어느날엔 초등학생 아이들이 손잡고 마라샹궈 식당에 떼지어 들어가는 걸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 마라는 내게 있어 성인이 돼서 처음 목격한 음식인데, 요즘 아이들은 이걸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먹겠구나. 나는 날때부터 온갖 피자들을 당연스레 먹으며 컸는데 우리나라에 피자가 알려지기 시작한게 70년대 후반이라 하니, 그 당시 어른들이 받은 느낌도 이랬을까? 아마 그때 어른들은 피자를 두눈 동그랗게 바라보며 '살다살다 이런 음식은 처음 보네' '허벌나게 큰 이 동그란 빵은 뭘까'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네' '서양음식이라 쪼매 느끼하네, 얼큰한 찌개나 먹어브러야겄어' 하며 첫 입을 댔겠지 상상이 되었다. 


피자 뿐일까. 쌀국수, 타코, 인도 커리 등 이제 주변에 널리고 널린 외국 음식들이 사실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니 새삼 신기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나에게 큰 행복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데,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음식이 퍼진다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핸드폰을 열어 최근 내가 먹어온 음식 사진들을 쭉 내려보니 짧은 기간동안 지구한바퀴를 여행한 듯 했다. 우선 아시아부터 들렀다. 소고기 국물에 쫄깃한 면발인 중국 우육면, 뜨끈하고 진한 국물이 일품인 삿포로 스프카레, 부드러운 코코넛커리에 게 튀김이 들어간 태국 푸팟퐁커리. 유럽으로 이동해서는, 얇게 썬 고기를 튀긴 독일 슈니첼, 이름은 모르지만 프랑스 가정식이라는 온갖 양식들을 먹어주었다. 세계일주가 슬슬 지칠 때 휴양차 하와이로 가서는 참치회를 각종 야채, 견과류와 곁들인 포케를 먹고. 남미에도 들러선 또띠야에 다양한 고기와 야채를 싸먹는 파히타를 먹어주었다. 아, 이게 끝이 아니다. 지구 한 바퀴 더 돌아야지. 밥배랑 디저트배는 다르니깐. 대만 밀크티나 포르투갈 에그타르트는 최근 자주 먹었으니, 누네띠네가 케잌으로 변신한듯한 러시아 나폴레옹케이크와 우유에서 지방만을 굳혀 만든 천상의 맛이라는 터키 카이막을 먹어보았다. 이렇게 음식으로 지구 한바퀴 끝! 


(위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중국 우육면, 러시안 나폴레옹케이크, 터키 카이막,  태국 푸팟퐁커리, 독일 슈니첼,  프랑스 가정식, 일본 가정식, 일본 스프카레,  남미 파히타


살면서 이를 인지한적 한 번 없었는데, 그동안 찍어놓은 음식 사진들을 보면서 나의 일상에 외국 음식이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이게 아직 끝이 아니라는 거다. 글로벌 교류가 왕성한 21세기, 아직도 우리나라에 발을 들이지 않은 음식들은 여전히 수없이 남아있다. 나는 남미에서 한달간 홈스테이를 하며 집주인이셨던 노부부가 해준 수많은 집밥들을 잊을 수 없다. 나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갖 남미 가정식들을 다시 맛보고 싶다. 또 작년 필리핀을 여행하면서 먹었던 음식 중 달짝지근한 소스에 재운 돼지고기구이였던 '리엠포'의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 찰떡이었으니, 당시 같이 먹었던 친구와 '이거 홍대에 차리면 대박이겠는데?' 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21세기에 살아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참 복받은 일이다.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대표 먹거리-김밥, 떡볶이, 불고기, 삼겹살, 호떡 등-의 은혜를 받고 있다하니 상호적으로 은혜를 주고받는 맛좋은 시대다. 


특히 '마라통닭'이라는 새로운 은혜를 맛본 날은, 그저 그로써 행복한 하루였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단순하다. 

마라통닭이 너무 맛있었다는 것. 먹을 수 있어 감사했다는 것. 소박하지만 정말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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