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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Mar 13. 2024

새벽 2시 넘어 퇴근하다가 받은 뜻밖의 선물

먹을 거 주는 사람, 착한 사람

최근 2주 동안 매일 밤 12시를 넘어 퇴근하던 때가 있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1분 1초가 빠듯했다. 15시간 넘는 긴 시간동안 그저 다다닥 다다닥 타자를 치고 있으니 내가 마치 피아노를 치고 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없이 쫓기는 시기를 보내며 '매일 행복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는 나의 가치관은 거센 소나기를 부어 맞은 거미줄처럼 쉽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오래도록 촘촘히 정성스레 짜놓은 거미줄이 소나기 한방에 이리 쉽게 끊어질 줄이야.


그렇지, 그렇다. 사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려면 시간에 최소한의 여백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하루종일 강제로 무언가에 쫓기다보면 마음 속 피어오르는 감정들을 쓸데없는 것이라 치부하며 억누르고, 그렇게 감정이 메말라지니깐. 


마음이 여유로울땐 구름한점 없이 푸른 하늘만 봐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싶지만, 정말 바쁘면 하늘을 시간조차 없다. 음식의 맛과 향을 한가하게 음미하기보단,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빠르게 씹어 넘겨야 한다. 그런 시기를 지나며 나는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는 나의 글들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쳐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지극히 이상적인 말을 건네는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을 갖기도 했다.


그런 하루들을 간신히 견뎌내던 어느 날, 그날도 나는 하얗게 불태우다 새벽 2시를 넘어 회사를 나왔다. 뜨거운 샤브샤브 국물에 오래도록 담궈진 야채마냥 기진맥진한 상태로 택시를 탔다. 이 시간대에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은 자식뻘의 손님을 걱정해주는 마음으로 '도대체 회사 놈들이 무슨 일을 시키길래 이 시간에 퇴근하냐, 나쁜 놈들이다' 욕을 대신 해주신다. 그 정도에 멈춰서면 괜찮은데, 간혹 그 멘트가 기나긴 수다로 이어지면 사실 좀 골치 아프다. 끝난 줄 알았던 사회생활이 갑작스레 연장전으로 가니 말이다. 그런데 그날 기사님은 묵묵히 운전하시다가 내가 내리려고 할때 갑자기 웬 선물을 하나 건네주셨다.


지쳐 감겨있던 나의 눈은 절로 크게 떠졌다. 지퍼백에 바나나와 견과류, 과자 등이 담겨 있었다. 일하면서 먹으라고 이 챙겨준건데, 손님이 너무 지쳐보인다며 이거라도 먹고 힘내라며 손에 쥐어주셨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받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 지퍼백을 한참 바라보다, 우선 상할 우려가 있는 바나나만 먹고 다른 과자는 고이 보관해놓았다. 힘들 때마다 하나씩 꺼내 먹으며 기사님의 따뜻한 위로를 아껴서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나는 정신이 흐리멍텅한 상황에서도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짐을 느꼈다. '오늘의 틈새 행복은 여기 있었구나, 없을 줄 알았는데' 하면서.


문득 그동안 내게 먹을 것들을 챙겨주던 이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무심코 '감사합니다'란 짧은 인사말로 가볍게 받았던 호의들. 


최근엔 아침 일찍 화물차를 타고 출장갈 일이 있었는데, 아버지 뻘로 보이는 기사님은 내게 아침을 먹었는지 물어보시곤 뭐라도 먹어야 한다며 에너지바를 건네주셨다. 목 막힐라 물도 마셔라, 잠 깨울겸 사탕도 먹어라 본인의 잠바를 열심히 뒤적이며 이것저것 주려 하셨다. 처음 보는 기사님으로부터 부모님의 마음을 느낄 줄이야. 그덕에 평소보다 든든한 아침이 되었다. 


그동안 직장 동료들로부터 받았던 것들도 참 많았다. 누구는 "요즘 이 빵집이 그렇게 유명하대요"라면서 먼 동네에 있는 가게에서 사온 빵을 나누어줬고. 또 누구는 부모님이 직접 키우신 배인데 참 달다며 집에서 과도까지 챙겨와 손수 깎아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거 한번 먹어봐요', '이게 그렇게 맛있어요'라며 서로에게 건네는 말과 행동들은 사무실의 차갑게 언 공기를 한순간에 녹여주었었다. 


특히 한 후배가 기억나는데, 그는 자꾸 사무실 탕비실에 있는 과자를 가져다주곤 했다. 선배님은 사무실에 있는 과자 중 무엇을 제일 좋아하냐고 묻기에, 딱히 좋아하는 게 없어서 '후레쉬베리'라고 대충 얼버무렸는데 그 후로 자꾸 내 책상에 후레쉬베리를 배달해주는 것이다. 또 가끔은 '먹어보니깐 이것도 맛있더라'며 다른 과자도 가져다주기도 했다. 처음엔 탕비실에 있는 흔한 간식을 왜 굳이 가져다줄까 갸우뚱했는데, 그 후배로부터 과자를 건네받으며 우리가 말 한번 더 붙이고, 눈한번 더 마주치고, 한번 더 웃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부서를 이동한 후에도 요즘 좋아하는 과자는 뭐냐고 묻길래 초코맛이 땡긴다고 대답하니, 그 후배는 곧바로 천원짜리 초코송이 한개를 사들고는 쫄래쫄래 날 찾아왔다. 새 부서에서 잔뜩 긴장한 상태였는데, 그 해맑은 후배의 존재 덕에 웃음이 빵 터졌었다.


이래서 먹을 거 주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가 보다. 고생한 상대를 말없이 토닥여주고 싶어서, 본인이 먹어본 맛을 주변에도 나누고 싶어서, 괜스레 한번 건네고 안부를 묻고 싶어서 내게 먹을 걸 건네사람들. 그때는 무심코 받았던 마음이 참 소중하다는 걸, 온종일 지친 하루 속에서도 잠깐이나마 나를 웃게 해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도 동료들에게 슬쩍 사탕 한번 건네봐야겠다. 그 사탕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사실 안중요하니깐. 그냥 우리 같이 힘내보자고, 이럴 때 한번 웃어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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