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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Sep 11. 2024

우리 같이 정신줄 한번 놓아봅시다

유치해야 살아갈 수 있다

"전생에 인어였나봐요!"


물을 무진장 좋아해서 여름휴가를 가면 휴가기간 내내 다른 곳은 일절 안가고 무조건 바닷물 안에만 있는다는 내게 직장 동료는 여러 번 이렇게 말했다. 바다에 사는 해양 생물이 많고도 많은데 동화 속에나 나오는 환상적인 존재 '인어'라고 말해주는 팀원의 사회생활 멘트가 영 낯간지러웠다. 하긴, 전생에 '노무라입깃해파리(올해 동해안에 출몰해 사람들의 골머리를 썩인 놈)였나봐요'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겠다. 


하지만 물놀이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나의 욕구를 올해 여름엔 쉬이 풀지 못했다. 나의 놀이메이트인 S가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었기 때문이다. 반나절이라도 시간을 내 서울근교의 계곡이라도 갈까 했지만, 막상 극성수기에 확 치솟은 렌트카 가격을 보니 떠나고픈 마음이 단번에 쪼그라드는 쪼잔한 나였다. 할 수 있는 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오아시스' 노래 가사를 음미하며 스스로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수평선 하늘닿은 푸른 바다가 너와 날 부르고 있는데.. 난 정말 괜찮아 이 도시라해도. 저 높은 빌딩 아래라도 너만 있다면...' 그러다가 문득 노래 가사처럼 정말 높은 빌딩 아래에 있는 한강수영장의 존재가 떠올랐다.  


회사 근처에 있어서 절대 가지 않으리라 여겼던 여의도 한강수영장. 갔다가는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미역줄기가 된 채로 직장 사람들을 어색하게 마주할지 모르고, 얕은 수심에 어린이들만 바글바글할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했던 그 곳.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곳이 최선이었다. 등줄기에 땀이 뻘뻘 나는 무더운 날씨에 정녕 물에 한번도 안빠지긴 억울하지 않은가. 나는 S를 꼬드겨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올해 첫 물놀이라는 감격을 머금고 수영장 안으로 한발 한발 다리를 집어 넣었다. 설레어하던 우리의 얼굴엔 물음표가 들어섰다.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래도 일단 몸을 다 담가 보았다. 여전히 이상했다. 물 안인데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원래 처음 물에 들어갈 땐 '아추 아추 아추워' 하며 호들갑 떨며 들어가줘야 제맛인데, 들어간 순간 언제 더웠냐는듯이 몸의 열기가 싹 날라가야 하는데. 이곳은...너무나 따뜻했다. 하긴 바로 위에서 태양이 온종일 존재감을 내뿜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곳에서 물이 차갑기를 바란 건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10대 남학생들 무리가 뒤엉킨 채로 서로를 물에 빠뜨리며 노니, 좁은 이곳에 소용돌이가 일어나는듯 했고 발밑으로는 잠수하는 꼬마들이 채였다. 물 아래에 있던 아이는 갑자기 위로 쑥 솟아올라 입안에 가득 머금고 있던 물을 분수대의 사자동상 마냥 내뿜었다. 요란법석한 장면들을 피해 도망 다니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수영장 맨 구석으로 밀려와 있었다. 구석에서 사람들의 휘적임을 관망하며 벙진 채로 둥둥 떠있었다. 그때 우리는 따뜻한 우유 위에 둥둥 떠 있는 시리얼이 된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었나. 어릴 땐 나도 저렇게 놀았을텐데 불편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S는 말했다.




그렇게 한 타임이 지나고 모두 물밖으로 나가라는 신호로 안전요원들이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평소라면 물밖으로 나가기 싫어 밍기적거렸겠지만, 미련 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나와보니 수영장 말고 다른 물놀이 시설이 눈에 띄었다. 위에서 아래로 물이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떨어지는 곳이었는데 물을 맞으며 해사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 홀려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땐 별 생각없이 뗀 발걸음이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위에선 다양한 방식으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시원한 장대비가 내리듯 연속적으로 물이 촤아악 떨어지는 곳도 있었고, 양동이에 물이 가득 담기면 머리 위로 한방 묵직하게 퍼부어지는 곳도 있었고, 물이 끝없이 발사되는 물총 기계도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양동이에 물이 다 차길 가슴졸이며 기다리다가 쏟아지는 물을 맞는 것이 제일 짜릿했다. 마음 같아선 맨 한가운데서 물을 정통으로 맞고 싶었지만 꼬마아이들이 옹기종기 가운데 모여 있으니, 어른의 체면상 그 옆에 슬쩍 붙어 어깨한쪽이라도 맞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수영장 사용이 가능하다는 신호로 호루라기 소리가 삑 울려퍼지니, 어린이들은 강아지같이 깡그리 수영장으로 달려 갔다. 이제 이곳에 남은 건 나와 S밖에 없었다. 우리는 씨익 웃으며 단독으로 명당을 차지했다. 


얼음을 녹인듯 시원한 물줄기가 정수리를 쿵쿵 치고 등줄기로 싸악 퍼져나갔다. 무더위 속 추위를 바랐던 우리는 '그래 이거지, 이게 물놀이지!' 외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초췌함을 가리려 쓰고 있던 모자도 휙 벗어 살의 머리를 기꺼이 폭포수에 내어주었다. 한두방울의 빗방울만 느껴져도 바로 우산을 쓰는 내게 이 감촉은 꽤나 낯설고 짜릿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나기를 맞으며 뛰어다니면 이런 느낌일까. 물을 좋아하는 개구리가 나뭇잎 아래에서 빗물을 맞으며 개굴개굴 우는 이런 기쁨일까. 물 하나에 주체할 수 없이 마구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인이 되어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얼마만이던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원초적인 흥겨움에 젖으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아까 수영장에서 본 서로를 물에 빠뜨리며 노는 학생들보다도 더 철없고 어린, 일곱살 즈음으로 돌아간 듯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동안 정신을 못차리다, 물이 꺼지고 나서야 물놀이는 이걸로 됐다며 만족스럽게 한강공원을 빠져 나왔다. 한강에서 벌이던 자유로운 몸짓은 멈추고, 저녁식사를 하러 여의도의 빌딩들 틈새로 돌아갔다. 그날 물을 맞을 때의 나는 단순히 시원한 촉감뿐만 아니라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꼈었다. 평일엔 점잖은 옷을 입고 나의 사회적 위치에 맞추어 감히 어른인 척 흉내내는 내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과 하나가 되는 동안엔 자유로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소위 정신줄을 놓은 상태.




나는 어른들에게 가끔 이런 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쓰고 있는 어른의 탈은 잠시 내다 던지고 어린 시절의 영혼으로 돌아간 순간. 가끔은 정신줄을 놓아주어야 팍팍한 세상을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힘든 하루 속에서도 나를 버티게 하는 순간은 어쩌면 그런 때였다. 몇달째 야근이 이어지자 언제부턴가 나는 퇴근 후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미친 짓이라 하겠다. 하루종일 일에 치이다가 밤 11시 넘어 집에 돌아와선 무채색의 슬랙스와 블라우스를 벗어던지고 늘어난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유튜브에 'KPOP 퍼포먼스 비디오'를 검색하고 무작정 따라 추는 것이다. 내가 카리나인 것 마냥 당당한 표정을 짓고, 수많은 팬들이 보고있다 생각하며 박력있게 춤을 춰본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행동이다. 그래서 나는 혹여나 밖에서 누가 볼까 꼭 블라인드를 치고 춤을 춘다. 만약에 내곁에 조상신이 따라다닌다면 '오메야 우리 후손 참말로 별꼴이다' 라고 하실까봐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이렇게 정신줄을 놓고 격렬히 춤을 춰야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지니깐. 조상님께선 잠시 눈 가리고 모른 체 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사실 이건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해오던 일종의 취미인데, 어른이 되고는 거의 안하다가 최근에 삶이 팍팍해지면서 다시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십여년만에 다시 해보니 여전히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였다. 바깥에서의 직장인 캐릭터를 벗어던지고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막춤을 추는 것은 내게 크나큰 해방감을 선사해 주었다. 


이런 이상행동을 하는 것, 나만 그런 건 아닐것이다. 친구 S는 곧 변호사가 될 건장한 남자인데 오랜만에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 학교 운동장에 가서 '경찰과 도둑'(경찰은 도둑을 잡고 도둑은 경찰을 피해 도망다니는 술래잡기의 일종)을 하고 논단다. 나는 처음 그걸 듣고 꽤나 문화충격이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자유롭게 풀어헤쳐지는 걸 나는 혼자서만 하는데, S는 친구들과 다같이 그리 논다니. 옛 노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서 서른은 청춘시절 다 보내고 고된 짐을 잔뜩 떠앉은 나이로 그려지는데, 여기 서른은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노래에 어울리게 놀고 있었다. S는 그래서 그 친구들을 만나는 게 좋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 당연하게 술만 마실텐데, 이렇게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 놀 수 있는 건 그 모임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얼마나 절박하게 뛰었는지, 어떻게 간신히 도둑친구를 잡아냈는지 본인의 활약상을 장황하게 자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껄껄 웃음이 났다. 우리 나이에 진짜 경찰과 도둑만 있지,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겠느냐고. 




그런 철없는 면모를 가진 S와 내가 만나서 그럴까. 우리는 함께 있으면 어린아이로 돌아간듯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유치하게 놀곤 한다. 둘이서 파도풀 없는 수영장에 가서도 몇 시간이고 놀 수 있는 건 별 짓을 다하기 때문이다. 8자 모양의 튜브를 얼마나 다양한 포즈로 활용할 수 있는지 창의성 대결을 하고. 물에 손가락을 넣고 빠르게 원을 그려서 누가 더 포세이돈마냥 소용돌이를 잘 일으키는지 대결하기도 했다. 해수욕장에 가면 파도를 맞을 때마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한 명이 소리를 제대로 못질렀다면 'NG! 거 소리 좀 생생하게 지릅시다. 자 다시 컷 들어갈게요. 스탭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제대로 할게요' 라며 급 상황극을 진행하기도 했다.


만약 AI에게 '멋있는 어른 커플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그려줘'라고 지시를 한다면, 한껏 차려입고 고층 빌딩의 야외 바에 가서 칵테일 한 잔 하는 그림이 생성될 것 같지만, 그런 데이트도 좋지만, 나는 이렇게 풀어진채로 투박하게 노는 우리의 모습이 더 좋다. 그리고 S를 만나면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가벼워지는 내 모습이 좋다. 사회생활을 위해 짓는 가식적인 미소와는 다르게 팡파레처럼 터지는 웃음.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말과 행동들. 그런 시간을 가져야, 나는 비로소 다시 사회로 돌아갔을 때 어른의 가면을 쓰고 1인분의 역할을 해낼 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우리 매일 마음껏 미끄러져 보자.

너와 함께면 한없이 단순해져. 한없이 유치해져.

왠지 난 그게 좋아. 

너와 평생을 흐트러지며 살고 싶어. 

조심할 것도 없이. 걱정할 것도 없이"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유로이 놀았던 시간이 머리에 그려진다. 남들 모르게 우리끼리만 보이는 해맑은 모습들. 그들과 오래도록 유치하게 놀며, 철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로 늙어가고 싶다. 


정신줄은 잠시 저 멀리 내다 던져도 괜찮다고, 내가 대신 던져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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