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 시절 감성
"남자친구 바꿔~ 갈아타" 회사에서 듣는 흔한 말이다. 남자친구가 수험생이라고 하면, 30대 후반 이상의 기혼 여성 직원분들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꼭 하는 말이다. 나중에 시험 붙고 떠나면 어쩌려고 힘들게 기다리냐느니, 새 사람 만나라느니. 내가 연인에 대해 말한 건 아직 '로스쿨생'이란 단어 한개밖에 없는데, 갑자기 나를 안쓰럽게 보며 온갖 걱정과 참견의 소리들이 와르르 쏟아져 온다. 달디단 꿀처럼 진득하고 끈끈한 이 관계를 왜 별것 아닐거라 짐작하며 오지랖을 부리는건지 달갑지는 않지만, 그저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하는 우스갯소리라 여기며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도, 엄마도, 오빠도 "나중에 시험붙고 떠나면 어떡하니?"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 참.
왜 사람들은 수험생을 만나는 걸 '기다린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지구 반대편으로 유학을 간 것도 아니고, 국방의 의무를 하러 간 것도 아니고. 그저 평일에 나는 회사에서 애쓰고, 상대는 공부를 하며 애쓰고 있을 뿐. 틈틈히 시간날 때마다 얼굴을 마주보고 쿵짝쿵짝 대화를 주고받으며 마음에 행복을 얻는 것은 어느 연인들과 다르지 않다. 법조인 남자친구를 얻겠다고 내가 무언가 억지로 버티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각자가 어떠한 상태이든 그 시절에 맞는 방식으로 잘 만나오고 있다.
물론 둘다 같은 캠퍼스를 누비는 대학생이었다가, 한명은 직장인 한명은 수험생으로 처음 신분 변화가 일어났을 적엔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첫 봄이 다가왔을 때 어찌할 줄 몰랐다. 꽁꽁 얼어있던 날씨가 따스히 녹고 온갖 봄꽃이 피어나 오감이 설레이는 계절. 상상의 어딘가로 멀리 떠나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원룸의 책상 앞에 앉아 묵묵히 공부하고 있는 S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물론 나 혼자 밖으로 나와 놀러 다니면 되는 거겠지만, 그보단 S와 함께 있고픈 마음이 더욱 컸기에 그 뒤에서 나도 같이 침묵을 지키곤 했다. 대개 그 방식은 이불 위에 쓰러져 넷플릭스를 보는 거였는데, 빤히 화면을 보고만 있는 행위가 내게 휴식이라기보단 지겨움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이 시간을 나도 쓸모있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른이 된 후로 곳곳에 깔린 형형색색의 즐거움에 눈이 돌아 책 한번 펼쳐보지 않던 내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심심해서. 할 게 없어서. 책을 읽다보니 절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심심해서. 할 게 없어서. 마치 옛날 옛적 관직의 핵심에 있던 인물이 땅끝으로 유배를 가 파도 부서지는 소리만을 귓가에 담으며 책 수백권을 쓴 것처럼 말이다. 그런 환경에 있으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와 글쓰기가 어느새 나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대학교 앞 카페에 앉아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글자에 몰입하는 것. 작가들 제각각의 개성이 깃든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음미하고, 생각치 못했던 의견을 곱씹어보고, 나도 내 안에 박혀있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보는 이 시간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온했다. 그러다보니 만약 연인이 비수험생이었더라면 매 주말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라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을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그것이 달갑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평일동안 내 몸 가누지도 못하고 바삐 움직이느라 생각이 멈추어 있는데 이런 주말마저 없다면 영영 사색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말이다.
"주말에 뭐 했어요?"라는 직장동료의 질문에 "친구네 동네서 같이 밥 먹고 저는 혼자 카페에서 책 읽었어요" 라고 하면 별일없이 무난한 주말을 보냈겠구나, 수험생 연인을 두어서 데이트도 못하고 단조롭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이 시간이 내게 참 소중하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겠지.
이렇게 남들이 볼 땐 마이너스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플러스인 경우가 꽤 있다. 요즘 연애예능 등 여러 콘텐츠들을 보다 보면 연인으로서 차가 없는 사람보단 차가 있는 사람을, 그리고 더 좋은 차가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장면이 비춰진다. 가끔 어떤 이는 차 없는 뚜벅이 연애를 어떻게 하냐고도 한다. 하지만 그 뚜벅이 만남을 7년째 하고 있는 나는 아무렇지 않다. 사실은 지금 이 시절이 오히려 애틋하고 소중할 것을 안다. 내 기억 속 낭만은 다 뚜벅이 경험에서 나왔으니깐.
앙칼지게 추운 어느 겨울날, 가평으로 여행을 갔던 때다. 겨울숲을 보며 스파를 하고 싶어 산턱에 있는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갈 즈음에 수목원에서 하는 야간불빛축제를 보러 밖을 나섰다. 지도상으로는 아마 30~40분 거리로 떴던 것 같다. 이 정도 거리는 가벼운 산책이라 생각하며 나왔는데, 아뿔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지도에 경사 표시는 왜 없는걸까 한탄스러웠다. 급경사 길을 롱패딩을 싸맨 몸으로 끙끙대며 걸어야 했다. 얕게 남아있던 석양빛은 사라진지 오래고, 가로등 하나 없이 눈 앞엔 어둠만 깔렸다. 세상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적막한 길이었다. 무서워진 우리는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 발걸음을 내밀며, 일부러 노래를 크게 틀고 또 일부러 크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 상황이 춥고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둘이 찰싹 달라붙은 채 이 길을 헤쳐나가는 게 웃기기도 했다. 그 어두움을 헤치고 다시 숙소로 무사히 돌아와 따수운 물에 바로 몸을 담구었을 땐, 어찌나 포근한지. 참 아찔하지만 강렬한 낭만이었다. 체력 좋고 강단 좋은 20대 초반에만 걸을 수 있었던 그 길을 우리는 지금까지도 껄껄 웃으며 회상한다.
차는 없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우리는 그런 용감한 추억들이 많다. 배차간격이 한시간인 버스를 기다리며 설마 한시간을 기다릴까 했는데 수다 떨다보니 정말 한시간이 지나있던 적도 있고,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인 바다까지 가기 위해 잡은 손 힘차게 흔들며 숲길을 걷기도 했다. 사람 없는 고요한 길엔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노래를 틀어놓고 마구 달리기도 했다. 그럼 그 가사의 주인공은 우리가 되었다. 해질녘 노을처럼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렇게 길 위에선 언제나 낭만이 피어 올랐다.
수험생이고 뚜벅이이고 남들이 보기엔 불완전해 보이는 상태. 그런데 그 시절만의 좋은 점이 있다. 멋있는 직업, 어디든 놀러다닐 수 있는 여유, 좋은 차를 가지는 나이가 되어서야 우리가 만났다면 이런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을까. 지금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이 시간을, 이 감성을 나는 얼마든지 누리고 싶다. 나중에 돌아보면 더 애틋하게 남아있을 기억.
종종 지난 추억을 말하던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임신해서 네 아빠는 급히 돈 벌어보겠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그 땐 버스 탈 돈도 없어서 긴 길을 걸어다녔는데... 처음엔 우리가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서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그 시절 참 잘 보냈다는 부모님의 이야기. 그 시절의 감성.
나는 오늘도 S네 대학가에서 맛있는 떡볶이를 먹으며 도란도란 수다를 나눈 후 홀로 카페 창가에 앉아, 시험공부로 잔뜩 피로에 찌든 학생들 사이에서 책을 읽고, 사색을 하다, 여유로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이 얼마나 평온하고 완벽한 하루인지. S의 수험생활도 이제 곧 끝나가는데 그때까지 부지런히 읽고 써야겠다. 그러고 또 다음 시절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떻게 또 새로운 만남을 이어갈까. 학생과 학생이던 우리가 직장인과 직장인이 되면, 장기연애가 결혼으로 넘어가면 어떨련지.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