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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Oct 15. 2023

사람도 '분갈이'가 필요합니다.

100세 시대, 식물 키우기로 배우는 "지속가능한 성장 문법" 

미루고 미뤘던 분갈이를 했다. 


분갈이를 위해 꺼낸 방울토마토는 바닥까지 뿌리가 닿아있었다. 뻗어나갈 구멍을 찾아 헤매는 손길 같았다. 노란 화분에 꾸깃꾸깃 자라고 있던 셈이다. 4배쯤 더 커다란 화분으로 옮겨줬다. 보금자리를 옮기니 녀석은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맥을 못 추던 노란 잎사귀까지 탱탱한 초록빛으로 돌아왔다. 식물이 이렇게 괄몰할 만한 성장 속도를 보인다니 내심 미안함이 커졌다. 


우스운 사실 하나는, 끙끙대며 힘겨워 하는 방울토마토에 들어간 식물영양제만 여러 개라는 점이다. 물 주는 사이클을 바꿔보기도 하고, 온갖 영양제를 주면서 어떻게든 살려보려 했지만 방울토마토는 시름시름 앓았다. '나는 식물 타노스다(!)' '강하게 키우는 것치곤 많이 신경쓰고 있다'고 자위했지만, 사실 방울토마토의 지금 단계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은 조치였을 뿐이다. 작은 그릇에서 녀석은 더 이상 클 수 없어 죽어갔다.


노란 동그라미 속 분갈이 비포 방울토마토 & 애프터 방울토마토.


비단 식물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람도 때로는 과감하게 보금자리를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 클 수 있다. 아니, 성장은 고사하고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 그릇을 깨트려야 한다. 그 타이밍을 알아채지 못하고, 혹은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새 누렇게 기력이 쇠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스스로 영양제를 맞춰도, 물을 주고 햇빛을 쬐도 소용이 없다. 내 뿌리가 온전히 뻗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야 비로소 썩지 않을 수 있다.


식물은 뿌리가 깊고 단단한 만큼 강인하게 자랄 수 있다고 한다. 당장 뭍에서 보기에 정체해 있는 상태 같아도 사실 뿌리가 자라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이는 반대로 뿌리가 강화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내실 있게 클 수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줄기를 숨가쁘게 뽑아내도, 이파리를 커다랗게 확장해도 뿌리가 지탱하지 못 하면 유명무실해진다. 결국 잎을 떨구고 앙상하게 '생존하기 모드'로 돌입할 따름이다.


해바라기를 보며 또 다른 분갈이의 깨달음을 얻었다. 흩뿌려뒀던 해바라기씨는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싹을 틔웠다. 무서운 속도로 길어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너무나 신났다. 이대로만 커라, 쑥쑥 커라, 겉으로 보이는 성장세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방울토마토와 함께 분갈이를 해주면서 알게 됐다. 이 녀석들의 뿌리는 줄기의 10분의 1도 크지 못 했다. 그러니 힘 없이 목만 길어진, 지구력 없는 허깨비가 되고 만 것이다.


분갈이를 하고서야 곧게 뻗어 꽃봉오리를 만드는 해바라기들.


분갈이는 뿌리만을 위한 의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자신만의 바운더리가 필요하다.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을 때 여백을 채우고 남기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빽빽하게 들어차 자기 경계가 없을 때는 위태롭다. 식물도 마찬가지. 다른 것들과 다닥다닥 붙어있을 때는 (당장 보기에 무성하게 자라는 것 같아도) 이내 서로 압력을 못 견뎌, 혹은 역병에 순식간에 휩쓸리고 만다.


결국 깻잎밭은 일장춘몽으로 그쳤다(...)

처음으로 재배에 성공했던 작물은 깻잎이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 화분에 루꼴라와 깻잎을, 심지어 그리 깊지 않은 화분에 빼곡하게 심었다. 다 알아서 자라겠거니 착각했다. 오판이었다. 루꼴라는 해를 못 보고 시들어버렸고, 깻잎만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화분을 가득 채웠다. 깻잎향이 솔솔 나는 게 뿌듯했다. 거기서 그쳐선 안 됐다. 제때 분갈이를 하지 않고 내버려둔 깻잎 화분에는 이내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너무 밀집해 있던 깻잎들은 손쓸 겨를도 없이 스러졌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이만큼 크기 전에 분리해내야 했다. 따로 옮겨 심어줘야 했다. 그래야 크기도 더 크거니와 건강하게 오래 자랄 수 있었다. 설령 하나가 병해충에 고전을 면치 못 하더라도 다른 녀석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단순한 진리를 간과한 채 내버려둔 화분은 며칠 내로 초토화했다. 내 게으름과 무지함이 분갈이 타이밍을 놓쳐 일을 그르쳤다. 제때 보금자리를 갈아 스테이지를 마련해줬다면 충분히 더 오래,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분갈이가 만능일 순 없다. 도리어 성급하게 분갈이를 했다가 식물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분갈이를 적절한 시점에, 신중하고 섬세하게 해야만 한다. 모든 흙을 다 바꿔서도 안 된다. 기존 흙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새로운 흙을 주변에 채우는, 그러면서 그릇의 크기를 바꾸는 방식으로 분갈이가 이뤄진다. 이를 간과하고 무작정 분갈이를 했다간 뿌리가 손상돼 본체가 더 빠르게 '생존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너무 물을 자주 줘도 안 돼"


식집사가 됐다고 하니 선배 식집사가 된 친구가 조언을 해줬다. 관심을 기울인다는 명목으로 너무 물을 줬다가는 오히려 뿌리가 썩고 곰팡이/세균 감염이 일어나 식물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식물을 제 손으로 보낸(?!) 후에야 터득했다고 한다. 잊어버릴 때쯤 물을 주고, 물을 주기로 정해둔 날이라도 화분이 촉촉하면 건너뛰어야 밸런스를 맞춘다. 무조건 분 갈고 물 주며 애태운다 해서 식물이 더 잘 자라진 않는다는 뜻이었다.



약 1년간 식집사 초보로 좌충우돌을 겪으며 식물만 키운 줄 알았는데, 식물 키우기를 통해 인내와 균형과 느긋함, 과감함까지 배울 수 있었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며 성장하는 데도 식물이 성장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나 생각한다.


1. 잘 크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스트레스 받아봐야 실제로 크는 데 역효과만 얻는다.
2. 무턱대고 여기저기 옮겨다니기보다는 나름의 기준을 두고 차차 변화를 도모해야 무사히 큰다.
3. 이미 화분 가득 뿌리가 들어찼을 때는 분갈이를 늦춰선 안 된다. 안주하지 말자.
4. 나의 바운더리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뿌리 키우기'의 지난한 과정을 인내해야 오래 간다.


100세 시대. 이제는 내가 나를 키워야 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동안 사회에서 정해놓은 타임라인으로는 남아있는 30~40년을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채우기 어렵다. 기나긴 인생을 알차고 의미있게 보내려면 내가 '나 자신을 양육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쳐 연습하고 터득해야 한다. 식물 키우기는 그것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분갈이한 식물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나는 나를 잘 키우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마지막으로 사과 나무(?) 자랑... 이 녀석도 분갈이를 해줬는데 뿌리를 힘겹게 키우는 중. 인고의 세월이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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