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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Jun 30. 2020

저는 예민한 사람입니다.

예민함과 섬세함으로 먹고사는 이야기

"내가 그렇게 예민해?"

한 10년 전쯤 이였나요.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물어봅니다. 열이면 열 다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응. 너 예민해-"

헉... 사실 저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좋은 친구들을 두었나 봅니다. 가감 없이 말해주는 말해주는 친구들 이니까요. 사실 저는 사람들한테 모나게 행동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정말 저의 예민함을 최대한 누르면서 살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생각했죠. 

'바꿔야겠다- 예민한 사람이라는 소리는 듣고 살지 말자고-'.



나는 예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였습니다. 30년을 넘게 타고난 성정이 있고 저는 그냥 타고나게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답답한 마음에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맞아요. A 씨는 예민하지만 굉장히 섬세해요. A 씨 잘못이 아니라 그냥 타고난 게 그런 거예요.

하지만, 직업이나 배우자를 고를 때 이 부분을 조금이라도 존중받을 수 있는 선택을 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서 서른쯔음 이런 생각을 제가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지만, 예민함을 잘 조율해서 섬세함을 잘 길들여보자'라고-그래서 제가 말의 뉘앙스나 어휘에 예민한 언어를 전공했고, 누군가는 귀찮아하고 짜증 낼 일 하나쯤은 저는 제 감각을 살려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9년 전쯤, 가끔 연락하던 친구가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너희 집 근처에 내 친구네 레스토랑이 있는데, 거기 주방 직원들 몇몇이 갑자기 안 나와서 걱정인가 봐. 혹시 주말에 잠깐 일할 생각 있어?"

예전에 주방에서 키친 핸드(설거지 및 밑재료 정리)로 일했던 적이 있었던 터라 친구가 그걸 기억하고는 연락을 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침 주말에 일을 쉬면서 시간이 나는 터이고, 쌈짓돈이 더 들어오는 격이니 무조건 가서 일을 하기로 합니다. 일은 쉽지는 않았지만,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느끼는 뿌듯함과 같이 일하는 직원들 성격이 꽤 좋아서 각 섹션 셰프들이 종종 먹을 것들을 갖다 주면 맛보고 수다 떠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스토랑 오픈 30분 전 밑재료 체크를 한번 더 하는데, 무언가 미묘하게 알 수 없는 냄새가 납니다. 제가 성격만큼이나 코가 아주 예민한 편이거든요.


유자마카롱: 셰프, 이거 새우 냄새 이상해. 체크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셰프: 야, 뭔 소리야. 그거 오늘 아침에 프렙(밑손질) 한 거야. (냄새 맡아보고 한 점을 조리해보더니) 야, 이거 버려야겠다. 다시 손질하자.


아무래도 무더운 여름날이었기 때문에 금방 해산물이 상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늘 무표정한 헤드 셰프의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너 내일부터 한 시간 일찍 나와서 저쪽 섹션 셰프한테 간단히 조리하는 거랑 세팅하는 거 배우자. 설거지하는 애는 너 말고 따로 뽑을 거야. 아, 그리고 나중에 키친에서 제대로 일 할 생각 있으면 생각해봐 "

그 후에 알았습니다. 그날 그 새우 요리로 나오는 매출이 어마어마했고, 만약 그 상한 새우가 나갔으면 가게는 문 닫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셰프의 한 마디가 몇 년 후 제가 이쪽 공부를 하는데 고려해 볼 만한 한마디가 됩니다. 이 쪽 일은 감각이 예민해야 하니까요.


크기, 각도, 모양, 위치 모두 고려해서 수백수천 개를 늘 최대한 일관성 있게 해야 하는 일들.

저는 음악이나 미술 쪽은 좋아하지만 타고난 재능은 없고, 예민한 감각을 살려서 조향사나 미술품 복원 쪽도 생각했지만 너무 오래 걸릴 공부의 기간과 학비가 만만치 않게 느껴질 때쯤 저를 잘 알던 친구의 추천으로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셰프의 한마디도 제가 '예민하고 섬세함이 장점이 되는 직업'이라는 퍼즐을 맞추어 가는 동안 중요한 퍼즐 조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예쁜 것들이 가득하고 손이 많이 가는 디저트 쪽이 저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 저는 '예민해도 괜찮은 직업'으로 일하고 먹고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조리가 잘 되었는지, 무슨 향을 첨가할지, 어떻게 플레이팅 하면 예쁠지. 온종일 예민함을 섬세함에 가깝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플레이팅 전 회의 회의 회의. 1시 방향이냐 2시 방향이냐. 딸기냐 블루베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런데, 사실 저는 성격 자체도 예민하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자처해서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눈칫밥을 참 이곳저곳에서 먹어본 터라 늘 사람들 눈치를 잘 봐서 예민한 성격에 눈치까지 보니 스트레스를 배로 받을 때도 많고, 너무 배려가 없는 사람이나 강한 성격의 사람을 만나면 속이 아파올 정도로 힘들어합니다.


전에는 친하지 않은 사람이랑 술을 먹으면 속이 뒤틀리고 머리가 아플 때도 많아서 직장생활이나 대학생활을 하면서 '술을 아예 못 먹는다'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심지어 명절이나 가족 모임에도 '살쪘다' '취직은 언제 하냐' 같은 말을 잔뜩 듣고 오면 이삼일은 앓어 눕기도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사실 예민한 건 여전합니다. 나이가 드니 날을 세워서 좋을 일이 아니면 웃어넘기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것을 푸는 방법들을 여러 가지로 생기다 보니 조금은 잘 대처하려고 합니다.


고마워-


저희 집 프랑스 남자 고랑이는 저의 예민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걱정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연애 초반에는 천성이 무뚝뚝하고 행동이나 말이 거침이 없는 그와 엄청 부딪칠 일이 많았고, 여전히 서로 맞춰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며칠 전 제가 하는 말에는 크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가 예민한 사람이니까 내가 어제저녁에 차를 마시고 싱크대에 둔 컵을 네가 깨끗하게 닦아둔 것도, 내 아이패드에 펜슬을 잘 꽂아서 정리해준 것 다 느끼고 알고 이렇게 너한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이게 바로 내가 예민한 사람이어서 좋은 점 아닐까?."


그래서 늘 저의 예민한 레이더에 발견된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호의에 더 감사함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이것도 저의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쓸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저의 예민함에도 불구하고 제 곁에 있어주는 그들을 위한 마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늘 나의 예민함을 그럼에도 예쁘게 봐주고, 섬세함이라고 칭찬해주는 너희들에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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