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마카롱 Jul 16. 2020

'셰프'라는 직업의 무게

Back of House. 뒤에서 든든한 서포트를 해주는 직업.


호주는 2018년쯤, 딸기로 시작하여, 바나나 , 망고 등등 과일에 바늘이 들어간 소동으로 꽤나 시끄러웠습니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어느 가족들은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고 있다는 기사는 그저 지나치기에는 

마음이 쓰이면서도, 그 좋아하던 과일코너에서는 선뜻 과일을 사기가 망설여졌습니다. 또한 제가 키친에서 일하는 디저트 섹션은 특히 과일을 늘 쓰기 때문에 이 소동으로 플레이팅 방식이나 메뉴 디테일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소동 당시, 진행되던 몇몇 결혼식의 경우에는 구아바와 라임, 베리를 이용한 디저트가 나갈 예정였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프렙 리스트( 요리를 위한 밑준비 리스트)를 확인하는데,  딸기 소동에도 불구하고 총괄 셰프가 생딸기를 포함한 베리를 꽤 많은 양을 주문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소동에 민감한 손님들도 많은데 왜 굳이 주문하셨나 싶어서 물었습니다.


"셰프, 왜 굳이 딸기를 주문하셨어요? 딸기 소동 때문에 혹시나 컴플레인이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라도 딸기 농장을 돕고 싶어서. 이 업체들은 우리가 오랫동안 거래해온 곳이고,

딸기야 잘게 썰면 바늘을 굳이 염려할 필요도 없고. 

살사 스타일로 만들어서 서빙하기 바로 직전에 손님들에게 나갈 거야."


"아..."


셰프라는 직업이 그저 음식만을 만드는 직업이 아닌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플레이트에는 공급자와 농장 또한 공생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구나. 

좋은 재료에 대한 예의와 사람들과의 약속,  또한 내 요리에는 나의 노력이나 내가 얼마나 잘나고 기술이 있는지 만을 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한 번 더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Massimo Bottura의 레스토랑 시그니처 디쉬. 숙성 정도가 다른 파르마산 치즈를 5가지 텍스쳐, 온도로 표현 한 메뉴.(출처:위키피디아(Osteria Francescan


 

Netflix에서 방영하는 Chef's table을 보면 Massimo Bottura라는 이탈리아 셰프의 'Risotto Cacio e Pepe' 라는 디쉬가 소개됩니다. 이 메뉴는 2012년 이탈리아 Emilia-Romagna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1000개가량의 parmesan Reggiano(우리가 흔히 피자나 파스타에 뿌려먹는 그 파르마산 치즈의 본체라고 보시면 됩니다)의 Wheel이 손상되어 치즈 농장에 큰 손해를 입게 되자 이 셰프가 개발한 메뉴입니다. 그는 이 레시피를 전 세계적으로 공유함으로써 한 번 더 농가를 살리고, 쉽게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있는 기회 또한 만듭니다. 


또한, 그의 레스토랑의 대표 애피타이저인, 숙성 정도가 다른 파르마산 치즈를 5가지 텍스쳐로 표현한 애피타이저 (Five ages of Parmigiano Reggiano)는 그가 사랑하는 재료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손님들에게 보임과 동시에 좋은 재료를 공급하는 농가에서 깃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대한 존경을 담은 대표적인 그의 음식 철학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늘 음식에 담긴 그의 선택은 업계는 물론 지역사회에 큰 보탬을 하기에 그는 오래도록 존경을 받는 셰프로 여전히 굳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책을 한 번씩 사들입니다. 수십만 원이 사라졌네요...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셰프인 저는 매일 매 순간 좌절과 보람과 궁금증을 갖고 하루를 보내면서 많은 셰프들을 보게 됩니다. 다행히 좋은 기술뿐만 아니라 좋은 방향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고 있기에 감사하고 또 그들이 저에게 주는 영향과 제가 그들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인터넷, 소셜미디어, 방송 등을 통해 셰프는 멋지고, 말을 잘하고, 요리를 잘하고 멋짐을 뽐내는 사람 이상이 되었지만 역시나 셰프는 Back of House, 즉 뒤에서 든든한 서포트를 해주는 직업임을 말입니다.


몇 주전 주급을 다 털어서 산 책들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주변 셰프들에게 물어물어 디저트 외에 다른 분야의 책들도 샀는데 통장 잔고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지만, 이 책들을 오래도록 곁에 두며 보고 배우다 보면 아주 조금은 더 나은 셰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좋은 셰프가 되고 싶습니다. 제 직업이 주는 무게를 잘 견디면서 그리고 제가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이전 01화 저는 예민한 사람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