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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Jul 20. 2020

결혼하기 참 좋은 날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는 마음을 담아 일하는 날들.


한국과 계절이 반대인 호주에서는,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9월부터 초여름인 11월 말 까지의 시간은 가장 큰 결혼식 시즌 입니다. 디저트를 만드는 저의 직업 상 가장 바쁜 시기이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는 주말 주일에 쉬는 일은 거의 없이 일을 계속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막상 남의 결혼식에 나가는 음식 만드느라 한국에 있는 제일 친한 친구 결혼식들은 영상 통화는커녕 카톡 하나도 제대로 못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이 바쁜 기간에 제일 재미있는 것은 역시나 다양한 나라의 결혼식을 볼 수 있다는 점 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디저트를 신부 할머니가 준비했다던 크로아티아 웨딩.


할머니와 엄마의 솜씨가 가득 담긴 지역의 디저트와 집 음식을 꼭 챙기는 인도 웨딩,

정말 디저트로 배를 채울 만큼 신부 신랑 가족 측에서 만든 디저트를 준비하는 크로아티안 웨딩,

끊임없이 모든 접시가 비워지고 채워져서 돌아오는 이탈리안 웨딩,

하객들도 화려하고 떠들썩한 중국 웨딩,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나가는 중동국가의 웨딩 등등.


각 나라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교과서로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일하면서 고객들의 다양한 문화를 눈으로 보고 몸소 체험을 할 때마다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나 다른 인종이나 배경을 가진 커플이 결혼할 때는 각 나라의 전통을 살리는 무언가를 하나쯤은 커플 양쪽이 준비해서 또 다른 새로운 손길이 닿은 웨딩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으나, 한 결혼식에서는 그 나라에서 귀하게 여기는 나무로 만들어 하객들의 이름을 새긴 이름표를 자리에 하나씩 두고, 결혼식 선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던 

결혼식이 있어서 참 의미있는 결혼식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탈리아 신부 쪽에서 준비했다던 이탈리아 까놀리.

아마 기계적으로 그저 행사에 맞게 매년 수십 개의 웨딩을 준비하다 보면, 지치거나 싫증 날 수도 있습니다.그래도 저는 다행히 일하면서 여러 나라의 음악, 춤, 복장 그리고 전통 디저트까지 맘껏 보다 보니, 그 재미가 쏠쏠하게 있어서 저는 종종 늦게 까지 남아서 웨딩케이크를 커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보통 웨딩케이크는 디저트까지 모든 음식이 나가고 나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 나가게 됩니다.) 종종 신랑 신부 가족들이 주방에서 고생한다면서 스탭들이 먹을 디저트를 준비해온다던가 손님들에게 나가고 남은 디저트를 주기도 해서 그 맛보는 재미가 저에게는 큰 공부가 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도는 신랑 신부의 지역마다 그 색다른 디저트를 준비하곤 해서 그 지역에 가서야 제 맛을 보는 디저트를 그렇게 운 좋게 먹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머리끝까지 달달함이 전달되면서 기름냄새가 고소하게나는 맛있는 디저트는 몇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또, 그렇게 웨딩케이크가 나갈 쯤이면 하객들이 꽤 흥과 술과 노래에 취해있어서 그 나라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나가다가 마주치는 흥겨움은 잠시 피로를 잊게 해주기도 합니다.


진짜 급하게 신부 신랑 쪽에서 요청받아 준비되었던 금칠한 마카롱....



참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일하는 모든 시간이, 또 모든 결혼식에서 일하는 상황이 항상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갑작스레 신랑 신부 쪽에서 조금은 예기치 못한 요청이 들어오거나 알러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들은 정말이지 주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식은땀을 흘리게 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오후 6-7시쯤 시작했으나, 새벽 2시-3시가 넘어가도록 피로연이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퇴근이 정말 늦어지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매년 즐거움과 고통을 오가면서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일하는 요령도 생기고, 얼마나 다양한 나라에 다양한 가족의 문화가 존재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퇴근길에 우연히 들리는 결혼식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내 직업이 누군가의 기쁜 날을 더 기쁘게 할 수 있는 직업이어서 참 다행이다'라고요. 그래서 정말 날 좋은 날, 나들이도 바깥공기도 쐬고 싶은 날 주말 주일에 웨딩을 준비하러 출근하는 날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정말 결혼하기 좋은 날이다. 오늘 결혼하는 커플이 참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느 날 좋은 주말 정말 바빴던 그 날, 출근길에 찍은 봄날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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