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부모의 불안이었을까
“우리 애 좀 바꿔주세요.”
상담실에 오는 부모님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고, 그걸 어떻게 고쳐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정말 아이에게 필요한 변화일까, 아니면 부모가 불편해서 바꾸고 싶은 걸까.
비슷한 시기에 만난 두 가정이 있었다.
한 가정의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학업 스트레스와 친구 관계 문제로 우울감을 겪고 있었고, 자살사고도 있었다. 겉으로는 친구와 학업 문제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가족 안에서의 괴리가 더 컸다. 부모는 반듯한 성향으로 확고한 기준을 가진 분들이었다.
아이의 성향과 기질상, 아이 나름 맞추려 애를 써도 부모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이 서로의 차이를 인식 하도록 돕는 데 시간을 들였다. 그렇게 몇 차례의 상담이 이어진 뒤 아이 아버지는 부모와 아이의 성향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수용했다.
“선생님,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습니다.”
그 이후로 아이에게만, 혹은 부모에게만, 때로는 가족 모두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성실함이 특기였던 부모님들은 그 과제들을 참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해왔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과제가 아이에게 또 다른 압박이 되지 않도록 수시로 조정했고,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자주 덧붙였다.
가끔은 아이의 모습이 여전히 부모의 기준에 차지 않는 순간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부모는 아이가 방학 동안 너무 빈둥거린다고 말했다. 아침에 열 시가 다 되어 일어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물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방학에 아침 열 시에 일어나는 게 문제가 될 일일까요?”
부모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러게요, 뭐가 문제일까요”라고 말했다.
상담은 1년 가까이 이어졌고 아이의 불안과 자살사고는 사라졌다. 아이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다른 가정의 아이는 오랫동안 아무 의욕이 없어서 적극적인 성향이 되었으면 좋겠다 했다. 무엇보다 이 아이는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엄마의 불안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된 경우였다.
초반 몇 회기 동안 특별히 아이에게 무언가를 끌어내려 하기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고, 그 속도에 맞춰 그저 옆에 있었다.
아이는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10회기 쯤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드디어 이렇게 말했다.
“진짜 그렇게 해도 될까요?”
늘 심드렁한 아이였고, 직접 무언가를 해도 되냐고 묻는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의 보고로는 그날 아이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대들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시기였고, 엄마는 지금까지 그렇게 키워왔듯이 아이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유로 대안학교를 보내고 싶어 했다. 아이를 특별하게 키우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불안과 통제 욕구가 높은 편이었고, 그래서 그 기준이 아이를 향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부모 자신의 불안을 향하고 있는 건지 자주 되묻곤 했었다.
“내 인생인데, 그냥 내가 다니고 싶은 데 가면 안 돼?”라며 화를 냈다고 했다.
“선생님이 우리 애를 부추겨서 애가 변했어요. 한 번도 저한테 이렇게 말한 적 없던 애인데요.”
적극적으로 바뀌게 해달라고 했던 아이였고 변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 방향이 엄마가 원한 것과는 달랐다. 그래서 엄마는 상담사를 원망했다. 선생님 때문에 아이가 이상해졌다고.
그 뒤로 아이는 상담에 오지 않았다. 엄마만 혼자 와서 몇 차례 진로상담을 이어가다가 종결되었다.
두 가정의 공통점도 있었다. 이건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서도 반복되는 일로 아이의 방 정리를 문제였다. (사실 이건 대부분 부모들이 자주 말하는 불만 중 하나다.)그리고 난 늘 비슷하데 반응한다.
“방이 지저분한 게 거슬리면 조건 없이 치워주시고, 그게 싫으시면 그냥 문을 닫고 보질 마세요.”
방 정리는 인생에서 그렇게 큰 일이 아니다. 습관을 잡아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건 결국 싸움일 때가 많다. 이건 가르쳐서 되는 영역이라기보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부분이다. 부모의 태도나 습관이 내재화되거나, 스스로 필요를 느끼는 순간에 나름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지금 당장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안달복달할 필요는 없다.
많은 경우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모습을 보는 어른의 불편이다. 아이를 바꿔달라는 말은 대개 부모의 신경 쓰임과 통제하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되며, 이미 ‘괜찮은 모습’에 대한 기준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막상 아이에게 시작되는 변화는 부모가 원하는 방향과 다를 때도 있다.
아이에게 변화란 때로는 처음으로 말을 해보는 것이고, 처음으로 거절을 해보는 것이며, 처음으로 자기 삶을 선택해보려는 시도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받아들여졌을 때, 아이는 다음을 시도해볼 용기를 갖게 된다.
아이를 바꾸는 일은 아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가족은 바뀌지 않고, 어떤 가족은 달라진다. 아이를 바꾸려 할 때보다 우리가 바뀌겠다고 말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그 변화가 문제로 보였던 건
아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방향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