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려고 해야 보이는 것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았지?"
대학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가끔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막상 와보니까 어떠냐고 물으면,
생각보다 바쁘고 할 일은 많고,
예전에는 누가 정해주던 것들을 이제는 다 알아서 선택해야 하는 게 어렵다고.
무엇보다 공부가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더 어렵고, 훨씬 더 정교해졌다고.
"지금 꿈은 뭐야?"
좋은 데 취업하는 것,
‘좋은 데’는 또 어딜까.
삼성, 하이닉스, 항공우주 특성화 대학답게 대한항공을 비롯한 항공사들.
원하는 곳에 취업만 하면 세상을 다 이룰 것처럼 말한다.
소원처럼 말하던 대한항공에 들어간 아이들도 있다.
처음에는 정말 다 이룬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세 달쯤 지나
"일은 재미있어?" 라는 질문에 반응은 달라진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퇴사하고 싶어요."
입사가 꿈이었는데 결국 퇴사가, 또 다른 꿈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해피엔딩일까.
막상 결혼 생활은 끝이 아니라 사사건건 부딪히고,
끝없이 이해해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렇게 동경하던 장면들도 막상 일상이 되는 순간
그 자체로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걸.
사실 사는 것 자체가 그렇게 행복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염세주의자가 아니지만 일상 자체는 늘 고단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걸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꽤 달라진다.
요즘은 아침 식사를 차리는 시간이 좋다.
예전에는 귀찮고 하기 싫은 숙제 같은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아침이라도 영양가 있는 밥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부엌에 선다.
잠깐이지만 아이들 얼굴을 보는 시간도 좋다.
대단한 대화가 오가는 것도 아니고,
각자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이에 스쳐 지나가는 순간인데,
그게 또 나쁘지 않다.
화분에 물 주는 것도 좋아한다.
며칠만 늦게 물을 주면 금방 시들어버리는데,
물을 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난다.
노력을 했는데 죽어버리는 애들도 있고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늘 생생한 아이들도 있다.
그 단순한 변화들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상담을 준비하는 시간도 대부분 재밌다.
상담일지를 쓰면서 흐름을 정리하고,
대상의 말과 표정을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
그 반응과 표현은 무슨 의미였을까를 고민하는 시간.
기획을 할 때는 ‘이 장면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까’
혼자 상상하며 신나하기도 하고
조금 더 임팩트 있는 소품이나 매체를 찾는 일도 생각보다 즐겁다.
아침 산책도 좋아하는 시간이다.
계절마다 공기가 다르고, 어제 없던 소리가 오늘 들리기도 한다.
새들도 바뀌고, 냄새도 달라진다.
신경전을 벌이는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보거나
매일 보이던 어르신이 어느 날 안 보이시다 다시 나오시던 날
그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
항공대에 다닐 때는 친한 선생님이랑 길냥이 간식을 챙겨주던 시간도 있었다.
해가 너무 쨍해 덥거나, 춥고 귀찮은 날도 있었다.
실제로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무서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좋았다.
서자방에 온 이후로는 날이 좋든 좋지 않든 산책을 즐긴다.
시간이 짧아 남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본 적도 없다.
멀리도 못 나가고 근처 골목만 맴돌다 오지만
그 삐뚤빼뚤하고 허름한 풍경들을 구경하는 게 이상하게 재미있다.
이런 것들은 사실 대단한 행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귀찮기도 하고, 시간이 없어 대충 지나칠 때도 많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다.
크게 웃을 일은 없어도, 완전히 무너진 날도 아니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하루를 하나씩 건져내고 있는 느낌.
그리고 이런 순간들을 알아보는 게
어쩌면 오늘도 살아지는 일상의 기적 아닐까.
어느 날, CCM ‘은혜’를 듣다가 울컥한 적이 있다.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는 것.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도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이 순간들도
어쩌면 기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