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말은 없었는데, 숨이 막혔다
최근 인스타에서 자녀에게 남기는 포스트잇 메모를 사진으로 올리는 엄마 계정이 자주 보였다.
표현은 다정하고, 말투는 친절하다.
아이의 상태를 꼼꼼하게 해석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정리되어 있다.
처음엔 “이런 엄마도 있구나” 싶었다.
어느 날 동료도 그 계정을 보내왔다.
“이 엄마는 말을 참 예쁘게 한다”
“아이들이 잘 자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가끔 보던 계정이라 괜히 반가운 마음에 계정 전체를 살펴봤다.
그런데 보다 보니 숨이 막혔다.
말은 부드러운데 아이에게 남아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어 보였다.
아빠 생신날 건넨 농담은 ‘존중이 부족한 표현’이 되었고,
사랑은 ‘이렇게 표현해야 하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의 말과 행동은 매번 해석되고, 정리되고, 다시 방향이 정해졌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사실 내가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한 건 아이 방을 치워주지 않는
이유조차 여러 개의 피드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며면서 였다.
옷을 정리해주지 않는 이유, 쓰레기를 버려주지 않는 이유, 책상을 정리해주지 않는 이유.
그 이유들이 정리되지 않는 옷장에, 쓰레기통에, 책상에 붙어있었다.
하나하나 모두 맞는 말이었지만 그만큼 더 답답했다.
좋게 말하면 이건 잔소리가 아닌 걸까.
부드럽게 말하면 통제가 아니게 되는 걸까.
나는 아이 방을 굳이 먼저 치워주지 않는다.
그 공간은 아이의 것이고, 불편하면 스스로 정리하거나
정말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할 거라 생각한다.
모든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아이에게 선택할 여지를 남겨두는 쪽을 택한다.
솔직히 내 방도 잘 못 치우는 편이다.
문득 예전에 상담했던 중2 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도 같이 화내고 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드러운 표정으로 맞는 말만 하는 거, 진짜 미칠 것 같아요.”
그 아이의 엄마는 늘 차분하게 설명했고, 아이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감정도, 표현도, 심지어 사소한 행동까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좋게, 다정하게 말하면 참견과 간섭이 아닌 걸까.
설명이 많을수록 대상의 자율은 조금씩 좁아지는 건 아닐까.
아이의 삶을 어디까지 부모의 메시지로 조율하는 게 맞는건지,
나는 가끔 그 경계가 궁금해진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고 이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묻게 된다.
아이에게 가장 숨 막히는 건
혼나는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니라
늘 이해당하고,
늘 설명당하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늘 차분하게 설명했고,
아이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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