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닫은 문, 반항이 아니었다.

사랑하지만 어긋나는 순간들

by 공재의방

‘쾅’ 닫은 문, 반항하려는 건 아니었다

‘지난 한 주는 어떻게 지냈어?’


상담 오는 모든 대상자에게 늘 하는 질문이다.
그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마음에 걸리는 일은 없는지,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나 상황 속에서 느낀 감정들은 있었는지 묻는다.


그 날 아이는 말했다.

“사실 엄마랑 좀 싸웠어요.”

이야기의 시작은 단순했다.
학원 문제로 말다툼을 하던 중이었고,
아이 말로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는데 문이 쾅 닫혔다고 했다.


“바람 때문에 닫혔는데 소리가 너무 컸어요.
움찔하긴 했는데 그냥 있었죠.”

아이도 그 순간 조금 당황했다고 했다.
다시 나가서 설명하기도 애매했고, 그래서 그냥 방 안에 있었다고 했다.

그때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문이 쾅 닫히는 순간, 엄마에게는 다른 감정이 올라온다.
대화가 끊어진 느낌, 나와의 단절을 선택한 것 같은 느낌.
무엇보다 나를 무시하는 느낌.


그래서 따라 들어간다.

막상 방에 들어가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씩 거슬리기 시작한다.
방 구석의 물건들, 정리되지 않은 것들, 책상 위 풀지 않은 채 펼쳐진 문제집.


그러다 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길어지고 거칠어진다.

방 정리부터 시작해서 공부 이야기, 케케묵은 예전 일까지 들추어진다.

그 사이 아이의 마음도 바뀐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그 마음은 사라지고 대신 다른 감정이 올라온다.

억울함과 반발심.




답답해서, 바람을 너무 쐬고 싶어서 그냥 나가버렸다고 했다.

자전거를 탔다고,
자전거를 타면 좀 풀린다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다 보면 생각이 조금 정리된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도 다시 올라오고, 집에 가면 방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하기 싫어져요.”

사춘기 아이들은 종종 이런 상태에 있다.


안 하려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려다가도 하기 싫어지는 상태.

몸은 내 몸이지만, 내 말을 잘 듣지 않는 상태의 내 몸.




아이를 보낸 뒤, 엄마도 비슷한 시간을 보낸다.

화가 가라앉으면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괜히 너무 화를 냈나 싶고, 아직 추운데 어딜 갔을까 걱정도 된다.

그래서 아이가 돌아오면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도 준비한다.


“밥 먹어”라고 좋게 말했는데,
막상 아이는 “안 먹어”라고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 사실 아이는 나름 다이어트 중이었다고 했다 —


그 순간 엄마는 다시 감정이 올라온다.

‘뭘 잘했다고 밥도 안 먹고 화를 내는데?’
혹은
‘먹기 싫으면 먹지 말던가, 저건 잘해줄 필요가 없어.’

실제 마음보다 더 거친 표현들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또 싸운다.




둘 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후회를 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감정이 겹겹이 쌓이고,
미처 하지 못한 표현들이 안으로만 맴돌고,
그 위에 또 쌓이면서 어긋나는 것이다.


상담실에서는 누가 맞고 틀린지를 따지지 않는다.

대신 가끔은 이렇게 서로의 시간을 풀어본다.


엄마에게는 엄마의 시간이 있었고,
아이에게는 아이의 시간이 있었다는 걸.

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나는 그 사이에서 대부분 질문만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는, 대개 그들이 스스로 풀어간다.


다행스럽게도 그 날은 오해가 조금 풀렸다.

그렇다고 모든 감정이 다 정리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그렇게,
다 풀지 못한 마음을 조금씩 안고
또 다음 날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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