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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혁 I Brown Mar 27. 2019

굿바이, 삼성.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긴 터널같은 스타트업으로.


참고로 이 글의 배경인 제 퇴사는 2016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4년여간 다니면서 미운정고운정 다 들었던 삼성SDS(이하 스드스)을 퇴사한날 올린 페이스북 포스팅은 아이러니하게 내 인생 가장 좋아요를 많이 받은 포스팅이되었다.
심지어 입사소식보다도 더 많았던것을 보면.. 사람들은 입사보다 퇴사를 더 부러워하는 것일까


인턴으로 시작된 푸른피와의 인연은 선임(대리) 에서 끝이 났습니다. 4년만에 인턴 사원 대리 라는 빠른 변화가 있었고 그 안에서 수많은 프로젝트와 만남과 헤어짐들이 있었습니다.


친했던 동기들과 존경하던 선배들

감사하게도 저를 아껴주시던 랩장님과 팀장님들

그분들과의 이별이 가장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작은회사에선 경험해보기 어려운 다양한 선후배들과의 인터랙션이랄까요.


퇴사를 결심했을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던 질문은 why? 였습니다. 좋은 직장 왜 그만두고 떠나는 것인지. 그리고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 같은게 있는지.  저도 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리스크 테이커가 될 수 있는지 늘 존경스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다른분들이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는것이 신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엄청 거창한 이유나 소명의식이 있어서 퇴사하는건 아니었으니까요.


이유와 계기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나는 즐겁게 일 하고 싶다.

2. 나는 자유롭게 일 하고 싶다.

3. 나는 어떤 형태이든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싶다.

4. 나는 약간의 리스크로 큰 성공을 이뤄보고 싶기도 하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5. 나는 내 업무의 강력한 책임감이 주어져도 충분히 이겨내고 해낼 수 있다.

6. 나는 세간의 시선이나 남들의 걱정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7. 나는 더욱 빨리 성장하고 싶다.

8. 삼성맨이 아니어서 소개팅이 안들어와도 견딜수 있다(?) -> 실제로 이 얘기를 하면서 말린 동료도 있었..


위의 조건들을 다 이루기 위해선 에서는 어렵다고 결론을 짓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전 직장의 나쁜점을 구구절절 다 얘기할 수 는 없고, 또 반면에 그걸 웃도는 장점도 있기 때문에 굳이 상세히 얘기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뭔가 결정적으로 여기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중 하나를 얘기하자면,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이럴 때 현타가 온다고 하는데) 바로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상사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훗날 저자리까지 가도 그리 즐거울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 였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상무님을 지척에서 바라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지금은 매우 즐겁게 일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드라마 <미생>을 보면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명대사가 나오는데 그 비유를 빌리자면,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전쟁터보다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지옥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위의 모든 조건들을 저는 통과할수 있다면 이직해도 후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일본에는 이키가이라는 말이 있는데, 위 그림처럼 좋아하고 잘하면서 돈도 되고 의미 있는 일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저마다 누구에겐 돈이, 누구에겐 세상을 위한 대의가, 누구에겐 재미가 중요하겠죠. 제겐 좋아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좋아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다 보면 돈도 되지 않을까 (세상에 필요하게 되는건 너무 대단한 범주인듯하고) 라고 생각하고, 제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을것 같고, 성공하면 돈도 벌 수 있을것 같은 스타트업 업계에 뛰어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기업에는 대기업에 맞는

스타트업에는 스타트업에 맞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더 잘나고 못난것 없이.

저는 일 자체에서 어떤 행복과 성취를 취하길 원하는 열정맨들에게는 스타트업을 권하고

일과 삶을 분리한뒤, 열심히 일해서 생긴 금전적 여유로 내 삶을 즐겁게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대기업을 권합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는 분리법은 아니겠지만요.

각자의 삶에 맞는 방식이 다를뿐인거죠.


저는 잠 자는 시간을 빼면, 깨어있는 시간중의 3분의 2를 써야하는 일하는 시간을 그저 돈버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가치관이겠지요. 게다가 용의 몸통 보다는 뱀의 머리를 해보고 싶었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역할인지 모르는 초대형선박이 아니라 비바람 함께 맞으면서 노도 젓고, 키도 잡는 작은 범선을 몰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뱀은 이무기정도로 키워보고 싶고, 범선을 타고 태평양 정도는 건너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를 붙잡아주신 랩장님과 몇번의 면담끝에 퇴사를 확정지을 수 있었습니다. 늘 반대가 없으시던 부모님마져도 이번엔 조금 강하게 반대하셨지만 이미 결심도 서고 새로 옮기게 될 둥지에도 말을 해놓은 부분이 있어서 더 이상 미룰수는 없게되었죠.




남은 서류를 작성하고 퇴직금등을 정산하고 제 책상을 치우고 나니 지난 4년여간의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걸 배우게 해준 회사였습니다.

R&D 인턴시절부터 53기 preStc동기들과의 멋모르던 기억들, 쏘엔 교육 시절, 개미지옥이라 불리던 심평원차세대프로젝트와 그때 밤새 일한다고 잠시 살았던 코딱지 만한 고시원,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 하계수련대회, 연구소로 복귀 후 만나 지금까지 좋은 인연이 되 준 많은 알고리즘 연구팀원들. 그리고 여전히 자주 만나면서 절 응원해주는 같은 팀 동료들까지...


결국 가장 남는 것은 사람인가봅니다.


사원증은 차마 반납하지 못하고 추억으로 챙겨나왔습니다(퇴직금에서 3만원 까인다네요ㅎㄷㄷ)

신입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 있어준 고마운 형과 동료들이 회사입구까지 따라나와 제 마지막을  배웅하고 사진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서 만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힘든 일이 많았던 4년간 버틸 수 있었던 건 다 제 주변사람들 덕분인듯합니다.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만날수 있기를.

잘있어요 여러분.
고마웠어요 스드스.



스드스에서의 마지막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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