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이향
끼고 있던 반지를 벗었다
희미한 자국이
조금 슬픈 듯 자유로워 보였다 처음,
반지를 끼던 날이 생각났다
당신 때문이라고 밀어붙이지만
내 스스로 테두리를 만들었다는 걸
빠져나와 보면 너도 알겠지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저 강기슭 너머까지 우리를 옭아매던 그때도
꼭 나쁘지만은 않았지
반지는 반지대로 손가락은 손가락인 채로
가끔은 공유했던 외로움을 서로에게 끼우며
반지는
테두리를 더 고집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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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에게 반지는 구속력을 가집니다. ‘나 연인이 있어요’라는 사실을 남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죠. 또 스스로도 반지를 끼면서 바람을 경계합니다. 수갑 채우는 대신 반지를 채운다는 말도 있죠. 그만큼 반지의 의미는 서로에 대한 종속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만 구속에는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 구속은 당신 때문인 것 같지만, 내가 동의했기에 결국 나 스스로 테두리를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반지를 뺀다는 행위는 결국 이별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요. 돌이켜보면 옭아매고 얽매였지만 누가 먼저 시작했고 누가 더 옭아맸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반지를 빼면서, 이별 후 돌아본 시간들은 ‘조금은’ 슬픕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고 꼭 나쁘지만은 않았죠.
‘조금 슬픈듯 자유로워 보이는 희미한 자국’은 반지 자국이지만 화자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반지자국은 희미합니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나 문신이 아니며,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집니다. 절실하게 옭아매고 살았던 기억들은 결국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희미해지고 잊히겠죠. 그래서 조금은 슬프고 뭔가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