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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주 Sep 07. 2023

이제, 내가 엄마 할게요

80대 엄마와 50대 딸의 역할 바꾸기

나는 공주, 너는 시녀. 어릴 때 별다른 장난감이 없어도 이런 역할 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곤 했다. 물론 내가 한 번 공주 역할을 했으면 다음엔 시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친구와 다투지 않고 오래 갈 수 있었다. 엄마가 많이 편찮으시고 인지능력과 기력이 확 떨어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엄마가 공주가 될 차례구나. 지금까지는 내가 공주 역할이었으니 말이다.     


엄마가 다니실 병원을 새로 알아보고 결정하는 문제로 아빠와 큰 소리로 다툰 날이 있었다. 이사 올 당시에 엄마는 잠에 취한 것처럼 깨어있을 때도 흐릿한 상태를 보였고, 요리나 청소같은 일상 살림은 전혀 할 수 없이 기력이 없었다. 대전에서 새롭게 병원을 다니다 보니 기존에 받았던 약이 엄마와 맞지 않는다고 판명되었고, 그동안 이런 상황에서 전적으로 혼자 결정해왔던 아빠는 자책하는 동시에 역할을 뺏겼다는 느낌을 받으신 것 같다. 아빠는 나에게 불손하다고 소리를 지르시고, 나도 지지 않고 아빠에게 이젠 자식들도 다 컸으니 옛날에 하던 것처럼 마음에 안 든다고 소리 지르지 마시라고 대꾸했다.     


나이 들어 쇠약해진 부모, 고집은 늙지 않은 부모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지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까운 대학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방금 전에 있었던 다툼과 내 마음을 토로하니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경험했던 후배가 많이 공감해주고 위로해준다. 그 가운데 내 귀에 꽂힌 말이 있다.     

“생각해보면 언니 부모님이나 내 부모님은 지금 우리 나이보다 일찍 자신들의 부모님을 여의었잖아. 그래서 70, 80대인 지금의 자신들이 어떻게 부모 역할을 해야 자식들이 편안한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아.”  

그렇다. 아빠도 엄마도 나이 든 부모를 모시는 장년의 자녀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부모로서 역할을 해 온 시간이 더 길었던 까닭에 과거에 하던 대로 본인의 주장을 고집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식들의 도움을 고마워하는 것에 그친다면 서로 얼마나 편안할까.

엄마 아빠는 이제 우리들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아시면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져 간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해하신다. 특히 아빠는 우울과 짜증으로 감정이 확장되는 것 같아 걱정되면서도 화를 참을 수 없다.     


모녀 관계란 세월이 흐르면서 부모 자식 관계가 바뀌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모든 모녀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고, 부모가 그 돌봄을 받는 순간이죠. 결국엔 이런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그런 순간이 너무 일찍 올 때도 있습니다. 그건 비극이죠. (중략)’¹⁾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 글에서 이 문장을 읽고 너무도 공감했다.      

이런 당연한 순간이 내가 어릴 때 왔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지금보다 나이 들어 기운이 없을 때 왔다면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너무 일찍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너무 늦게 오지 않아서 안심이다. 이제, 나는 내 순서가 된 ‘돌보는 자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          


¹⁾ 월간 <채널예스> 2023년 1월호 이민진 작가 인터뷰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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