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엄마와 50대 딸의 역할 바꾸기
왜 하필 지금. 코로나라는 의사 선생님의 얘기에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2년 넘게 잘 피하고 있었는데 첫 코로나 확진이 엔데믹 시대라니 생각도 못 한 전개였다. 더구나 지금은 아픈 엄마가 가까이 있는데 말이다.
확진 후 7일이 지났다. 과연 수많은 후기 대로 아프고 괴로웠다. 바로 전날까지 만났던 엄마에게 옮겼을까 그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엄마는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겠다는 얘기에 녹두죽을 끓여 오셔서 현관문 앞에 두고 가셨다. 자식이 아프다니 엄마도 힘을 짜내어 만드셨을 것이다.
격리 기간 동안 아빠와 엄마의 신경과, 안과 방문이 예약되어 있었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 택시를 잡기도 어려울 것 같아 방에 누워서도 걱정이 되었다. 늘 내가 콜택시를 불러 집 앞에서 타실 수 있도록 했는데 두 분이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택시 정류장까지 가실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내 걱정을 짐작하셨다는 듯 두 분은 잘 다녀왔다고 연락을 주셨다.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 분이 이 동네에서 택시 타는 길을 익히신 듯해서 안심되기도 했다. 그만큼 내 역할이 조금 줄어도 된다는 의미였으니까.
코로나 완치 확인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을 때, 아픈 노모를 찾아봬야 한다는 얘기에 의사 선생님이 노모의 안전을 위해 며칠 더 있다가 만날 것을 권유했다. 이제나저제나 내 건강을 염려하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서 지난주 내내 식사를 어찌하셨는지 물어보았다. 역시나 자식 마음이 먼저인 엄마는 냉동실에 있는 저장식품으로 풍성하게 차려 먹었노라는 믿지 못할 말씀을 하신다. 거짓말인 것을 알지만 엄마의 건강과 안심을 위해 나는 며칠 더 있다가 방문하기로 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건강한 거리가 필요하다. 코로나 격리 기간 동안 내 마음속에 맴돌던 생각이었다. 지난 몇 달을 되돌아보니 나는 부모님이 가까이 ‘안심되는 거리’에 계시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아빠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화가 나고, 예전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에게 실망도 하고, 부모님 얼굴에 섭섭함이 보일 때는 또 미안해지고. 이러한 일들을 겪고 나니 서로의 마음을 지킬 ‘안심거리’도 무척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새 순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심어야 서로 잘 자란다.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도 중요하다. 가지들이 얽혀 있으면 자랄 수 없다. 농작물을 키울 때 필요한 이 원칙들은 사람 사이에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천륜'이라는 말에 의지하여 관계를 방치한다면 제대로 된 성장할 수 없다는 걸 배우고 있다.
서로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지나치게 의지하지도 말고, 모든 걸 다 떠안으려고 하지 말아야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정을 깔끔하게 전달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걱정되는 마음을 화로 표현하지 말아야겠다. 아픈 와중에 죽을 끓여주신 고마운 마음에 짜증으로 돌려드리지 말아야겠다. 그래야 가까이 오시라고 한 내 진심이 제대로 피어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