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엔 역시 딸이 있어야지. 방송 드라마에서도 현실 속 카페 옆자리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싫다. 남자도 여자도 나이 든 사람도 젊은 사람도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여느 때처럼 엄마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내가 요양보호사가 아니라 딸인 것을 알게 되자마자 60대로 보이는 택시 운전사는 대뜸 ‘딸 예찬’을 시작했다.
“나도 아들이지만 나이 들면 아들은 아무 소용없어요. 살갑기를 하나, 얘기를 들어주길 하나. 아들, 딸이 하나씩 있는데 딸이 이사 가면 나도 항상 그쪽으로 이사 가요. 같이 동네에서 살려고요. 나이 들수록 딸이 옆에 있어야겠더라고요.”
아마도 칭찬이었을 것이다. 걸음이 불편한 두 분을 위해 집 앞까지 비용이 더 높은 콜택시를 부르고, 차에 오르고 내릴 때 세심하게 살펴 문을 닫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리라.
면전에서 이런 류의 칭찬을 듣는 것은 참 당황스럽다. 노년의 부모님에겐 딸 밖에 의지할 데가 없으니 더 잘하라는 뜻인지 싶다. 내가 너무 꼬인 걸까?
아들들은 이 말에 숨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자식 역할을 조금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이것도 내가 너무 꼬인 걸까?
내가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고 싶어서 가까운 곳으로 오시도록 했지만, 딸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물론 남자보다 여자가 더 공감 지수가 높다든지 세심하다든지 하는 평가가 일반적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반화에 기대어 이런 말이 툭툭 던져지는 게 싫다. 부당하다고까지 느낀다.
그저 인사치레에 불과한 말로 여길 수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격하게 반발심이 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 때문이었다. 며칠 전 내 의견을 무시하는 아빠와 입씨름을 했었다. 딸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나는 내내 냉랭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딸이 최고라며 택시기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으니 가식처럼 느껴져서 무척 거슬렸던 것이다. 지나고 나니 내 옹졸한 마음이 부끄러웠다.
<딸은 좋다> 사진 출처 예스24
40대와 50대 여자들이 주축인 도서관 모임에서 이 일화를 말했더니 모두가 마뜩잖아했다. 각자 부모님과의 애착 정도도 다르고, 부모님의 성향도 다르니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말들을 들어봤기 때문이리라.
지인 중에는 홀로 되신 친정엄마를 같은 아파트 단지로 모셔서 자매가 번갈아 찾아뵙는 분도 계신다. 무척 부럽다가도 아, 이것도 나이 들면 딸이 있어야 한다는 감정인가 싶어서 흠칫 놀라게 된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치매 노인을 주로 돌보는 사람은 딸(43.5%) > 며느리(16.8%) > 아들(15.2%) > 기타(13.6%) > 배우자(12%) 순이었다.¹⁾ 즉, 돌보는 사람의 10명 중 8명이 딸·며느리 등 여성이라는 것이다. 연령은 50대 이상(36.8%)이 가장 많게 조사되었다.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데는 노후 돌봄에 대한 기대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절친한 후배와 늙으신 부모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나도 공감했다.
“언니, 나는 혼자 되신 우리 엄마가 나한테 정서적으로 너무 의지하려고 해서 부담이 되거든. 그런데 요즘 나도 자식들에게 잘 보이려고 할 때가 있어서 놀라기도 해. 잘 보여야 그 애들이 내 노후를 맡아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있나 봐.”
요즘 사회 전반에 걸쳐 ‘돌봄’이 화두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백일부터 돌 무렵까지 시골에서 키워주신 덕분에 10년 직장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은혜를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때때로 마음이 뾰족해졌다. 아직 우리가 서로의 뒤바뀐 돌봄 역할이 낯설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부모님은 자식의 도움이 없이는 꼼짝하기 어려운 상황이 불안했고, 나는 부모님을 살피느라 내 일상과 에너지를 예상보다 더 써야 할지 몰랐다. 그런 당혹감이 갈등을 만들었다. 미디어를 장악한 독박육아니 K-장녀니 대리효도니 하는 말들을 들으면 마음이 무겁고 아득해진다. 부모 자식 간에도 도움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요청할 수 있고, 도움을 줘야 할 때 생색내지 않고 부드럽게 해줄 수 있는 관계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도움을 당연히 여기지 않으면서 서로 돌봐주면서 사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