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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Mar 05. 2022

틀에서 벗어나는 건

어른이 되면 자신이 정한 계획, 규칙, 바운더리를 벗어나는 게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며칠 전 호주의 아티스트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그림을 우연히 접하게 됐는데 보자마자 정말 우리 집에 전시해두고 싶었다. 처음으로 그림이 주는 감정의 변화를 느껴봤기 때문에 화가님의 작품에 꽂혀버렸다. 온라인 샵이 운영된다는 걸 알고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미알못인 나는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알았어도 화폐적 가치는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한 금액에 0이 하나 더 붙은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 후덜덜거리는 내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빠르게 온라인샵 닫기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마침 화가님의 그림이 내일까지 코엑스 호텔에서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오빠와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인생은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약속 당일날 갑자기 오빠가 발가락 티눈에 통증이 생겨서 병원을 다녀오겠다고 했고 시간이 지연돼서 결국 점심시간 넘어서 집에 돌아왔다. 작품을 꼭 보고 싶은 욕심에 오빠가 집에 오자마자 바로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도착 예정시간을 살펴보니 우리의 저녁 일정을 고려했을 때 너무 빠듯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지만 마음속 목적지는 상실한 상황에서 우리의 차는 경로를 이탈하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장소, 백화점이라도 가자고 얘기했고 우리는 급방향을 선회했다. 계획이 틀어져서 너무 속상했지만 오히려 계획에서 틀어졌을 때 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최신 전자제품들의 기능을 구경하다 보니 너무 신기했고 어느새 속상함은 날아갔다. 그 와중에 나의 30대를 대표하는 옷이 될 것 같은 노란 원피스도 발견했다. 계획에서 벗어났지만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이런 긍정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계획에서 틀어질 때 지금보다는 슬픈 감정이 덜 찾아올 것 같은 확신도 들었다.


내가 치료하고 있는 아동의 대부분은 자폐(ASD) 성향이 있는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은 선호도가 명확하고 자신이 정한 규칙에서 어긋나는 걸을 매우 싫어한다. 나는 계획, 규칙에서 벗어날 때 불안도가 확 올라가는데 그렇기 때문에 백 퍼센트는 아니더라도 그 친구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지금 맡고 있는 아동 중에 jason(가명)이라는 아동이 떠오르는데 그 친구는 어류 장난감을 정말 좋아해서 고래, 상어의 종류들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안다. 그런데 늘 어류 분류와 명칭 말하기, 딱 거기에만 관심을 두고 놀이가 화장되지 않다가 그 친구가 선호하는 어류를 활용하여 틀을 조금씩 깨 주었더니 대근육, 인지 등 모든 영역에서 발달이 급격하게 올라왔고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니 이전에 비해 관심사도 확장되었다. 


자신만의 틀에서 벗어나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자제품, 노란 원피스가 그랬고 jason에게는 어류 장난감이 그렇듯이 그 틀에서 벗어나 motivation을 이끌 수 있는 강화물을 찾는다면 조금 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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