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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Mar 17. 2022

엄마와 2박~3일

무려 2주 전에 잡은 약속이었다. 엄마가 약속을 잊을까 봐 자주 전화를 걸어 확인도 했고 내 계획은 완벽했다.

그런데 약속 하루 전날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딸 엄마 생일 때 보자"

부가적인 설명도 없이 그냥 통보였다. 나는 당당한 엄마의 태도에 화가 났고 내가 귀중한 존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속상했다. 그런데 사실 마음 한 켠에는 엄마가 올라오지 않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엄마를 만나면 즐거운 마음도 있지만 나는 내가 긴장해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잘됐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건 엄마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첫 번째 진실만 말해줬다. 엄마는 피부 상태가 나빠져서 못 간다고 한 건데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부분은 미안하다고 했다. 다행히 저녁에 상태가 좋아지셨고 다음 날 용인으로 올라오셨다. 엄마는 나를 만나고 알 수 없는 이상한 질문을 계속했다.

"보석이랑은 이야기 많이 하고 서로 할 말 다하지?"

"친구들이랑은 재잘재잘 거리지?"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었지만 내 행동들은 턱 없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맛집에 가서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빵을 샀지만 맛이 없다고 하셨고 내가 끓인 된장찌개는 짜다고 하셨다. 엄마가 올라온 지 둘쨋 날, 에버랜드를 가기로 했고 김밥을 미리 사서 가기로 했다. 그전에 산 속이라 추울까 봐 목도리, 핫팩, 뜨거운 물까지 챙겼는데 날씨는 갑자기 너무 따뜻했다. 김밥만큼은 엄마 마음에 들 자신 있었다. 좋은 재료로 만들고 맛도 있다고 김밥 집이었고 무엇보다 오빠랑 내가 자주 사 먹는 곳이었다. 엄마는 김이 참 질기다고 하셨고 나는 거기서 마저 점수를 따지 못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해주기로 했다. 그건 바로 사진 예쁘게 찍히기다. 요즘 유행하는 인생 네 컷에서 사진을 찍었고, 에버랜드의 대표 포토존들을 들러 사진을 찍어드렸다. 그런데 엄마는 네 번째 방문이라 이전보다 흥이 오르진 않는다고 하셨다. 공연을 보여드렸지만 아이들이 오면  좋아하겠다고 말씀하셨고 에버랜드의 대표 명물인 사파리 월드를 구경시켜드리기로 했다. 사파리 월드는 한 번도 간 적이 없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지셨고 나는 사파리 월드 안 가면 에버랜드 왔다고 하면 안 된다고 허풍을 크게 떨었다. 40분을 기다려가며 입장한 사파리 월드는 사자, 호랑이, 마지막 곰마저... 모두 낮잠을 자고 있었다. 용인 올라와도 재미가 없다고 하셨다. 나도 아이디어가 고갈되었고 이제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마침 오빠로부터 연락이 왔고 일이 일찍 끝나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오빠는 안부차 엄마에게 여러 이야기를 건넸다.

"어머니 ~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딸 만났는데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뭐가 제일 즐거웠어요?"

엄마는 사진을 많이 남겨서 좋았다고 대답했다.

"아쉬운 점은 없었어요?"

엄마는 딸이 종알종알 말을 했으면 좋겠는데 어제 그러지 않아서 아쉬웠다고 했다.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엄마와 내 생각은 정말 달랐다. 임신과 일 사이의 간극, 오빠와 어떻게 육아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뿐 아니라 요즘 내가 가진 고민들을 모두 털어놓았는데 엄마는 왜 대화가 부족하다고 서운함을 표현했을까? 엄마 마음속 공허함은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한이 찾아왔고 나는 단순히 신경을 많이 쓰고 긴장해서 몸이 좋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벽에 열이 38 넘는 고열상태가 지속되었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해열제를 하나 먹고 나니 열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몸은 말해주고 있었다.

'당신!! 코로나에 걸렸어요.'

오늘 병원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놀랍지 않았다. 코로나 판정보다 이 소식을 들은 엄마가 나를 비난할까 봐 엄마의 반응이 불안했다. 다행히 비난은 하지 않으셨지만 과연 엄마는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실까? 시간을 함께 보내며 효도를 해드리고 싶었는데 딸의 코로나 확진 소식이라는 최악의 선물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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