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댈 향한 나의 마음도 바람처럼 스쳐 가."
그래. 딱 이맘때였다.
벌써 계절이 네 번 돌았고,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변했듯
너와 네 주변 역시 그랬을 것이다.
언제나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고,
헤어진 후에도 나는 당연히 너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는데,
어느덧 네가 새삼 흐릿해져 버렸다.
예전에는 이렇게 흐릿해지는 게 너무 싫었는데,
그래서 방구석에 처박혀서 구질구질하게
너와 주고받은 편지,
너와 함께 찍은 사진과 영상,
너와의 이야기가 쓰인 일기들을 보며
손 안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널 붙잡으려고 애썼었는데...
뭐 지금은 그냥 그렇다.
어쩌다 내 방에, 내 폰에, 내 컴퓨터에 자리한
과거의 우리와 덜컥 마주쳐도
뭐 나는 그냥 그렇다.
딱히 '에에에잇!'하고 그 흔적들을 날릴 생각은 없지만
언제까지고 이걸 가지고 있을 생각도 없다.
언젠간 내 주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내 딴에는 단호하고 냉정해지기까지
4년 하고도 2개월 16일이 흘렀다.
그럼에도 완전히 괜찮아졌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뭐랄까, 과도기 같은 거다.
어떤 것을 '당연하게' 느끼는지에 대한 건
계속 변해가는 것 같다.
단순한 취향의 변화, 생각해보니 좀 아닌 것 같아서 등등
이유는 제각기 다르겠으나 그것은 한순간에 변하기도,
자기도 모르는 새에 천천히 변하기도 할 것이다.
너를 당연하게 느끼게 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걸 알게 되는 날이 오긴 할까?
또다시 다른 누군가를 당연하게 여길 수 있을까?
상냥한 바람 귓가를 스치면
아 드디어 봄이 왔구나
거치른 빗방울들 하늘을 씻어 내리면
여름의 향기도 내려와
매서운 공기 머리를 울리면
아 낙엽이 지고 있구나
눈앞을 흩트리는 하얀 꽃송이 어지럽게 휘날리며
고요한 세상을 울리고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이라 아무렇지 않은 듯 항상
당연하게만 느끼는지
꽃피는 계절의 가슴 벅찬 일들도 너무 흔해 보여
그대 차가운 마음속에 갇혀버린 것만 같은데
우 당연한 바람이 불어와 어떤 감동도 없이
우 그댈 향한 나의 마음도 바람처럼 스쳐 가
계절의 순환도 나의 사랑도 모두 그대에게
당연한 이야기
한 번쯤 당연한 모든 걸 전부 지워버리면 그대 곁에
내가 다시 소중해질까
눈 내린 겨울의 새하얀 온 세상도 너무 흔해 보여
그대 차가운 마음속에 얼어버린 것만 같은데
우 당연한 바람이 불어와 어떤 감동도 없이
우 그댈 향한 나의 마음도 바람처럼 스쳐 가
계절의 순환도 나의 사랑도 특별할 것 없는
지루한 줄거리 뻔한 당연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