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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Aug 24. 2017

홍수 속의 축제

행복과 불행은 백지 한 장의 차이

비가 왔다.

비는 오고 또 와서 집 옆에 있는 강을 넘치게 했고 강 옆의 길에까지 물이 넘쳤다.

그리고 우리 집 주위도 허벅지까지 물이 차서 걸을 때마다 무거운 물살을 헤치며 걸어야 했다. 땅속과 밖에 살던 곤충들도 홍수가 나자 집 벽이 까맣게 될 정도로 모여들었다.

개미와 달팽이들이 나뭇잎에 몸을 의지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도 보였다. 조금만 비가 더 오면 집 안으로 비가 들어올 지경이었다. 이미 우리가 지내는 곳은 호수가 되었고 우리 집은 그 호수 속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와 같았다.

상황은 급박해 보였고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저씨들이 그물을 들고 우리 집 근처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이 물난리에 물고기를 잡는 거야?

낚시터가 된 우리 집으로 오는 아저씨들

많은 사람들이 1999년 이후로 이런 홍수는 처음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부탄 댐의 물 수위가 높아져 물을 내보낸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물고기를 잡을 생각을 하다니.     

동네 아저씨들은 큰 그물을 들고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강물이 불어나면서 그 안에 살던 물고기들도 함께 흘러온 것이었다. 손바닥 만 한 물고기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 아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잠자리채를 들고 집 앞에서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 난 아이들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밤늦게 까지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

점심을 먹고 나자 빗줄기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집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직전에 비가 멈추는 것을 보고 안도하고 있는데 성민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빨리 와 봐요. 저기 엄청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어요. 현민이랑 나랑도 잡고 있는데 엄마도 와야 한다니까요. 진짜 물고기들이 엄청 많아요.”     

나는 성민이의 성화에 못 이겨 집 옆 강가 쪽에 있는 밭으로 갔다.


밭쪽은 터가 조금 높았던지 물이 발목 정도까지 밖에 안차 있었다. 또 많은 물이 다시 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 전 옥수수 수확이 끝난 그 밭은 낮이면 소들이나 염소들이 풀을 뜯어먹으러 오는 공터였다. 하지만 그 밭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할아버지부터 꼬마들까지 큰 그물을 들고 또는 집에서 우산으로 만든 창살을 들고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듯했다.

물이 흘러내리는 곳에 그물을 펴 놓고 기다리는 사람들, 팔짝팔짝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따라다니는 아이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아무도 바로 옆에 흐르는 강을 인식하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이제는 비가 멈췄기 때문에 강물이 줄어들고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집이 물에 잠긴 슬픔보다는 오늘 먹을 물고기를 잡는다는 기쁨이 더 커 보였다.


강원도 평창에서 매년 열리는 송어잡이 축제가 이런 모습일까?     

그들은 분명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삶의 행복과 불행은 어쩌면 백지 한 장 차이가 아닐까?

강이 범람하고 거 곳곳에 물이 고여 침수가 된 불행과 강물과 함께 떠내려 온 물고기를 잡는 행복 사이에서 단순하게 행복을 선택한 이곳 사람들처럼.

내 삶에 들어오는 수많은 불행 속에도 분명 단순히 즐길 수 있는 행복이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퍼덕거리는 땅을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내가 서있었다.

어느새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들이 모여 축제의 배경음악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팔라카타의 자연산 물고기 잡기 축제를 즐기는 참가자들이 되어 있었고 나는 그 즐거움을 담는 기자가 되어 연거푸 사진을 찍어댔다.      

두둑이 잡은 물고기들을 보며 기뻐하는 그들의 얼굴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내가 행복과 불행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나도 차라리 불행 속에 숨어 있는 작은 행복을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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