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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Dec 28. 2020

이게 내 손 맞아?

살면서 자주 갖게 되는 주관적 착각

어렸을 적 피아노 학원에 가면 항상 선생님은 연필을 들고 내 손등을 치며 이야기했다.

"손가락 모양, 손가락 모양 제대로 해야지."

그럼 나는 손 모양을 동그랗게 하고 손 끝부분으로 피아노를 쳤다.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던 손 모양이었다.

손바닥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지 말고 손가락 끝 부분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


나의 피아노 레슨은 초등학교 6년간 지속됐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갈 때  학원을 그만뒀다. 체르니 40번을 치고 있을 때였고 교회에서도 더듬더듬 반주를 시작할 때였다.

나는 피아노가 좋았고 계속 혼자 피아노를 쳤다.

그래서인지 이곳 인도에 와서도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피아노를 처음 접해보는 인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손 모양이었다.


"손가락 모양을 동그랗게 하고 손 끝으로 쳐야 돼. 손목은 움직이지 않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지는 벌써 30년이 넘었고 인도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8년이 되었다.

피아노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나는 인도에서 적어도 우리 지역에서는 인정받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최근 피아노를 좀 더 배우고 싶어서 인도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영상으로 레슨을 받는 것이라 레슨 받기 바로 전날은 꼭 내가 연습하는 영상을 비디오로 찍어서 보내야 했다.

첫날 큰 아이의 도움을 받아 멋지게 피아노 치는 모습을 찍어서 선생님에게 보냈다. 좋은 카메라로 찍었고 내 피아노 실력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 속의 나는 이상했다. 뭔가 부족했다.

내 손이 까맣게 타서 이상한 게 아니었다. 손 모양이 이상했다. 내 손은 동그랗게 말려 들어가는 듯 각 지게 피아노를 치는 손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항상 지적하는 좋지 않은 손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게 내 손 맞아?

 

30년간 피아노를 쳐온 나였건만 가장 기본 되는 손 모양 조차 지키지 않고 있었다.

물론 다음날 온라인 레슨에서도 손가락 모양에 대해 지적을 받았다.

"손 끝으로 치셔야 해요. 그리고 손목 움직이지 마시고. 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야 해요."

나는 머쓱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저는  이제까지 제가 이런 손 모양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줄 몰랐어요. 저한테 피아노 배우러 오는 애들한테 매일 손가락 모양을 가르치는데 정작 제 손가락이 제대로 안되고 있었네요."


그날부터 나는 피아노의 제일 기초인 손가락 모양을 체크하고 또 체크했다.

평생 피아노를 치면서 내 손 모양 한번 체크하지 않았다니.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내게 말했다.

"당신...... 손 모양... 원래 그랬어."

"뭐야~ 그럼 나한테 말을 했었어야지."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나 자신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많은 부분에서 내가 아는 사실만을 믿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들은 것이 다인 마냥 사람들에게 그 사실만을 주장하고,

나 스스로를 충분히 안다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한마디로 내게 유리한 주관적 착각을 안고 살고 있을 때가 많았다. 삼십 년 동안 내 피아노 자세가 최고라고 착각하고 살아온 것처럼.


가끔이라도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겠다.

가끔이라도 한 발짝 떨어져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삼십 년 만에서야 피아노 위의 내 손가락 모양을 제대로 바라보는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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