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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Dec 06. 2022

장갑

손만 가리면 다 장갑인 거지!

장갑? 

장갑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 인도 역시 겨울이 있지만 장갑을 낄 정도로 춥지 않았고 그렇다고 한국에 있을 때 장갑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장갑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떠오르는 한 가지 기억이 있었다. 


올해 초 가족들과 함께 터키 여행을 할 때였다. 우리는 터키의 유명한 유적지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카파도키아 마을의 러브 밸리(사랑 계곡)라는 곳을 방문했을 때였다. 울퉁불퉁 버섯처럼 솟아 있는 동굴들 주위에서 이런저런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사진 뒤 아주 먼 곳에 있는 설산에 눈이 멈췄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그 산에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의견을 듣기도 전에 렌트한 차에 타 무작정 그 높은 산을 향해 달렸다. 큰 아이는 구글 지도에서 그 산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고 둘째는 눈을 볼 생각에 이미 흥분한 상태였다.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며 자동차를 운전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렸을까. 정말 눈앞에 설산이 보였다. 높은 산봉우리 위로 자욱이 쌓여있는 눈. 아이들은 몇 년 만에 보는 눈에 흥분을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눈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남편과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했듯이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 밑의 날씨는 봄 날씨였으므로 우리의 복장은 이 갑작스러운 추위에 견디기 힘들었다. 특별히 장갑도 없이 눈놀이를 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무장갑이라도 들고 다닐 걸.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5월의 터키에 흰 눈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눈을 우리가 직접 만질 수 있을 줄이야. 

그때 남편이 말했다. “얘들아. 양말 벗어봐. 양말을 벗어서 손에다 끼워”

“에잉?”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남편은 진심이었다. 몇 해 만에 눈 구경을 한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방법을 구한 것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아이들은 양말 장갑을 끼고 눈싸움을 했다. 그리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하얀 눈이 모이고 모여 작은 공이 됐다. 그 공은 다시 모여 중간 눈사람이 되었다가 큰 눈사람이 되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손에 끼고 있는 양말 장갑에도 젖은 기운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7년 만에 본 눈이 너무 소중해서. 양말 장갑 안에 스며든 눈까지 소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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