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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Nov 14. 2024

여보, 책은 왜 읽어?

음... 우아해 보이려고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새로 개업한 미용실을 방문했다. 남편의 터벅해진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마을에 있는 미용실 중에서는 가장 현대적인 미용실이었다. 미용사들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손님 한 명 한 명의 머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남편과 앉아서 기다리는데 나는 습관처럼 핸드폰에 있는 전자책을 읽고 있었다. 남편도 내 옆에서 한참 인터넷 뉴스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보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보, 당신은 책을 왜 읽어?"

갑자기 훅~ 하고 들어오는 남편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순간 당황 했지만 나는 솔직히 말했다.

"나? 우아해 보이려고."

남편은 나의 대답에 나보다 더 당황한 듯했다. '엥'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길래 다시 말했다.

"요즘 젊은 애들이 아이돌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책을 읽는 걸 보고 뭔가 과시하려고 읽는다고 하잖아요. 나도 처음은 그랬어요. 우아해 보이고 싶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하나 더 이유가 있어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책을 읽으면 책의 이야기 속에 내가 들어가잖아. 그럼 나는 현실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거지. 그래서 나는 책을 읽어요."

남편은 그제야 나의 말이 이해가 간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책 읽기 시작은 그랬다. 고등학교 때부터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 나오는 여 주인공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라던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던가.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지식을 알아가는 삶, 책을 읽는 삶, 뭔가 우아해 보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책을 읽는 척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책을 사고서 몇 장 읽다 보면 어느새 책장에 고이 모셔두곤 했다. (지금도 읽지 않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나는 서점 가는 것은 진심으로 좋아했다. 책을 잘 읽지는 못하지만 책에 대한 로망은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나의 갈망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결혼 초기에 육아에 힘들 때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대형 서점에 가서 몇 시간 책을 읽고 온 적도 있었다.(하지만 이때 까지도 아주 가끔만 책을 읽었지 진짜 독서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지는 법. 서점을 사랑하고 책의 냄새를 사랑하고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책을 읽는 모임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윳돈이 조금만 생기면 서점 앱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책들을 사곤 했다. 물론 다 읽지는 못하지만 뭔가 책을 구입하는 것만으로 내가 조금은 책 읽기에 가까워진 느낌이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처음은 고수리 작가님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 가입해 매일 책 읽기를 하고 거기서 뽑은 문장들을 나누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어떠한 규칙 속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독서 모임에 참여한 후 나는 지인들과 함께 책 읽는 그룹을 만들었다. 물론 이 책 읽는 그룹은 나중에 수다그룹으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인들과 함께 매일 또는 일주일에 한 번 책 읽는 것을 인증하면서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갔다.

슬로우 리딩 모임 필사

지금은 선량 작가님과 슬로우 리딩을 세 번째 하고 있다. 매주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고 책에서 뽑은 글을 필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금 읽는 글은 '소피의 세계'라는 책인데 생각보다 어려운 책이었다. 철학 입문서라고 알려져 있기도 한 꽤나 딱딱한 책이었다. 에세이나 자기 개발서 위주로 읽던 내게 소피의 세계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제 거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나는 나의 독서가 또 다른 한 단계로 발전한 것을 느낀다.

쉽게 말하자면 어려운 철학 책을 골똘히 앉아서 읽으며 필사를 하다 보니 전에는 어렵다고 느끼고 지루하다고 느꼈던 다른 책들이 무척이나 쉽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시간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느라 바쁜 일반적인 사람이다.

대신 화장실을 가거나 누구를 기다릴 때 잠깐의 여유가 있을 때 핸드폰에 있는 전자책을 편다.(해외 있다 보니 전자책으로 책을 거의 읽는다.)

최근에는 고수리 작가님의 ‘까멜리아 싸롱’을 하루에 걸쳐 다 읽었다. 일요일 하루 종일 집안일은 최대한 내버려 두고 책상에 앉아 까멜리아 싸롱을 읽었다. 얼마나 재미나던지.

즐거운 독서 여행

요즘은 김신지 작가님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와 김혜자 님의 “생에 감사해” 그리고 중간중간 류시화 작가님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읽는다.

참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또 있는데 바로 류시화 작가님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이다.

예전에는 하나의 책을 들면 재미있던지 재미없던지 무조건 끝을 봐야 했었는데 이제는 독서법을 바꿨다. 여러 책을 즐겁게 기분 내키는 대로 읽기로.

나는 여전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짧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자유롭게 읽는다. 꼭 주머니에 캐러멜 몇 개를 두고 필요할 때마다 입에 쏙쏙 집어넣듯이. 그리고 그때 발견한 달콤한 문장들은 공책에 적어둔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그날의 감동적인 문장이나 시들을 나누기도 한다.

오랜 기간 책 읽는 척만 했던 내가 이제 진짜 책을 읽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는 적어도 우리 가족들에게는 책 읽는 아내, 책 읽는 엄마로 통한다. 무척 뿌듯한 부분이다.


서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가? 책을 구입만 하는데 제대로 끝낸 적은 없는가? 아니면 나처럼 책을 들고 다니는 이유가 우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인가?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지 몇 년이 지나고 있다고 해도 괜찮다. 그만큼의 흥미가 계속되다 보면은 언젠가 진짜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을 보게 될 것이니까.

여러분의 독서 취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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