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달린다
나는 운동 신경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철봉에 오래 매달려 있는 것도 하지 못했고 중학교 때 높은 장애물을 손을 짚고 뛰어넘는 것을 할 때도 두려움에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피구를 할 때도 나는 공이 날아오는 순간 눈을 감아버리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창 시절 운동 경기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며 응원하는 학생이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 하나 잘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달리기였다. 잘했다기보다는 그래도 100미터에 16초는 나왔으니까 나름 뒤쳐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 친구들이 나보다 커지기 시작하자 그들의 긴 다리를 따라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운동은 내게 아주 멀고 먼 세계로 지내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서 또 30대가 되면서부터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남편과 뛰기를 시작했다.
사실 정확하게 언제부터 뛰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30대 중반 정도이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처음에는 남편과 가끔 아침 달리기를 했는데 달릴 때마다 몸이 아팠다. 거리가 1-2킬로 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대도 내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달렸는데도 남편과 아침 조깅을 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조금씩 몸에 열기가 오르다가 점심때가 되면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심할 때는 토할 것처럼 머리가 아파서 결국 진통제를 먹곤 했다. 그래서 멈추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달려보고 이렇게 몇 해를 지냈다. 아이들은 내가 달린다고 하면 또 아플 건데 왜 달리냐고 이야기할 정도로 달릴 때마다 아팠다.
그렇지만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은 달리기 뿐이었다. 달리기는 운동신경이 좋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하루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는 아프려고 달리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달리기만 하면 아프잖아."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그건 당신 체력이 약해서 그런 거야. 계속 달리다 보면 몸도 조금씩 적응할 거야."
남편의 말에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그리고 몇 해 전 5 킬로 미터 달리기를 도전했고 나중에는 10 킬로 미터도 달릴 수 있었다.
나는 매일 달리지는 못한다. 일주일에 많으면 세 번 적으면 한 번.
그래도 달리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 몸을 유지할 수 있는 운동이 내게는 달리기이기 때문에.
지난 일요일에도 오랜만에 달리기를 했다. 몇 주 바빠서 달리기를 못하다 오랜만에 하려니 두려움이 더 컸다. 40대가 되니 살은 찌고 체중이 늘 수록 달리는 것은 더 힘들었다. 하지만 맘을 잡고 왕복 3 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달렸다. 다행히 이제는 내 몸도 적응이 됐는지 3 킬로 정도는 거뜬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달리기를 할 때 꼭 핸드폰을 작은 가방에 매고 뛴다. 중간중간 보는 인도의 아침을 담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앉아서 짜이를 마시는 모습, 야채를 팔러 바쁘게 달리는 오토바이의 모습, 그리고 나뭇가지로 이빨을 닦는 사람들의 모습 등.
사실 한국에서는 러닝머신을 사용하면 실내에서도 달릴 수 있겠지만 이곳 인도 특히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는 그런 시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야외를 달린다. 하지만 오히려 야외를 달리면서 아침의 인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더없이 상쾌하고 기분 좋은 조깅이 되고 있다.
참, 달리기를 하면서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내가 목표로 한 지점에 도달하면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 것이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서 기록을 남긴다. 내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고 머리는 엉크러져 있지만 뛰는 나의 모습이 자랑스러워서. 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을 남기면서 지인들에게 나는 달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나 스스로도 그 사진에 책임을 지기 위해 더 달리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달리기에 힘을 줄 수 있는 신나는 노래들을 들었고 나중에는 건강 강의나 동기부여 영상을 들으면서 달렸다. 그리고 요즘은 기도를 하면서 뛰기도 한다. 달리는 시간만큼은 오로지 내게 주어진 시간인 것이다. 달릴 수 있는 힘, 달리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무엇이든지 견디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칭찬한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더 열심히 성실하게 달리기를 하자. 10 킬로를 뛰어도 아프지 않을 체력을 가질 그때까지. 그렇게 10 킬로를 뛰다 보면 또 20 킬로 미터를 뛰게 되고 결국 마라톤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마라톤을 뛰지 못한들 어떠랴. 나는 달리고 달리는 내가 자랑스러우면 되는 것 아닌가.
혹시 나는 운동에는 영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독자가 있는가? 괜찮다. 달리기는 운동 신경도 필요 없다. 그저 달리기만 하면 된다. 빨리 달릴 필요도 없다. 오래 달릴 필요도 없다. 천천히 아주 짧은 거리부터 시작해도 괜찮다. 누구와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의 페이스를 지키며 달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달리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