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미 Nov 07. 2024

42세 여인의 바이올린 독학 이야기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그러나 멈추지 않고

내가 처음 바이올린을 접하게 된 것은 거의 12년 전이다.

인도에 음악 봉사하러 오셨던 한국 가족이 있었는데 그 가족의 초등학교 아들이 쓰던 바이올린을 두고 간 것이었다. 바이올린은 여러 가지 크기가 있는데 그분들이 놓고 가신 바이올린은 3/4로 조금 작은 것이었다. 작은 것이면 어떠랴. 새로운 악기를 배울 수 있다는데. 바이올린의 '바' 자도 모르던 내게 온 바이올린은 음악을 사랑하는 나에게 운명과 같은 일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음악을 조금 아는 사람인데도 바이올린은 피아노 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적어도 피아노는 건반을 눌렀을 때 정확한 음이 나오는데 바이올린은 정확한 건반이 아닌 아주 미세한 위치 변화로 음이 달라졌다. 또 매번 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튜닝을 해야 하니 내가 느끼기에 바이올린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악기 같았다. 게다가 악기를 어깨에 올려놓고 잡는 자세는 또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그때쯤 우리 집을 방문한 인도 친구가 바이올린을 좀 켤 수 있다고 해서 그 친구에게 기본자세를 배웠다.

그렇게 나의 바이올린 독학이 시작되었다.

자꾸 피아노와 비교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피아노는 그래도 기본 연습도 들어줄 만 한데 바이올린 초보자의 연습은 말 그대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고문과도 같았다. 카페에서 나오는 바이올린 연주 소리는 감미롭기만 한데 나의 바이올린 소리는 듣기 힘들 정도의 깽깽깽 소리였다. 게다가 선생님이 없다 보니 이게 내가 제대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바이올린을 시작하다 말고 시작하다 말고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취미 부자의 실패담을 읽으려고 이 글을 읽고 있는 거야?" 아니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글을 마저 읽기를 바란다. ^^

10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바이올린의 바이엘과 같은 스즈키 1권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몇 달 연습하다가 포기하고 또 시작했다 포기하고.

그러던 중 나보다도 더 바이올린을 모르는 그러나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인도 친구들을 만났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 바이올린 연습팀을 만들었다. 매주 일요일 9시 때로는 오후 4시에 만나서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그래도 십 년 동안(실제 연습한 기간은 일 년도 채 안 되겠지만) 스즈키 1권을 붙잡고 있었다고 내가 리더가 되었다.

바이올린 자세와 활을 잡는 법, 유튜브를 통해서 배운 것들, 아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서 들은 것 등등 내가 아는 것은 모든 엑기스를 공유했다.

그렇게 인도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나의 깽깽거리던 바이올린 소리는 다른 멤버들의 깽깽 거리는 바이올린 소리와 합해져 기가 막힌 소리가 났다. 하지만 우리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초보 바이올린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라도 모여 연습하는 우리가 너무 자랑스러웠으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더 좋은 소리가 날 것이라고 믿으니까.

올해 들어서는 바이올린 연습 멤버들끼리 왓츠앱 그룹을 만들었다. (왓츠앱은 카카오톡과 비슷한 메신저다.)

그리고 가능하면 매일 5분씩 연습을 하고 연습한 것을 왓츠앱에 인증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학교를 보내고 사무실 가기 바로 전 10분 정도를 연습한다. 5분만 연습하기로 약속하고 나니 5분이 10분이 되고 20분이 되기 시작했다. 멤버들도 그랬다. 때로는 20분 때로는 30분. 시작이 어려웠지 시작만 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하지 않을 때 다른 멤버들의 연습 인증을 보고 동기를 얻곤 했다. 지난달 나는 10년 동안 계속 끝내지 못했던 스즈키 1권을 마쳤다. 꺅~~

비록 스즈키 1권은 초등학생도 쉽게 배우는 기초 책이지만 긴 시간 동안 붙들고 있던 책을 끝냈다는 그 자체로 너무 기뻤다.

며칠 전에는 10년 넘게 바이올린을 들었다 놨다 하는 나에게 한 번도 잘한다는 칭찬이 없었던 남편이 바이올린 소리가 좋아졌다며 칭찬을 해줬다.

‘그래. 이런 거지. 그냥 하는 거지.  꾸준히 하다 보면 거북이처럼 늦게 가더라도 조금씩은 실력이 늘겠지.’

나의 목표는 바이올린 연주할 때 비브라토까지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들을만한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조금씩 바이올린 이라는 산을 올라갈 것이다. 우리 인도 친구들과 함께.






이전 01화 나는 취미 부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